암빙벽등반

도봉산 '배추흰나비의 추억' - 2024년 5월 18일(토)

빌레이 2024. 5. 19. 09:12

이른 아침 7시부터 도봉산 광륜사 삼거리에서 악우들을 만나 어프로치를 시작한다. 만월암을 거쳐 '배추흰나비의 추억' 루트 출발점 아래의 공터에 도착한 시간은 8시 반 무렵이다. 우리들 외에는 아무도 없는 고요한 숲 속에서 산새 소리 들으며 느긋하게 장비를 착용한다. 오늘은 우리팀이 '배추흰나비의 추억' 루트를 독차지 한 듯하여 3피치부터 등반하려던 당초의 계획을 바꾸어 첫 피치부터 차근차근 올라보기로 한다. 내가 선등하고 은경, 성배 순으로 오른다. 비교적 쉬운 1, 2피치를 재빨리 끝내고 3피치로 옮겨간다. 내심 3피치 후반부의 크럭스인 직상 세로 크랙을 자유등반 방식으로 돌파하고 싶었으나, 선등의 압박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인공등반 방식으로 오른 것이 못내 아쉽다.

 

'배추흰나비의 추억' 루트 하일라이트 구간이라 할 수 있는 4피치도 후반부의 크럭스를 돌파하는 데 예상보다 많은 힘을 쏟는다. 비교적 쉬운 5피치를 올라서서 행동식과 음료를 섭취하면서 눈앞의 6피치는 만족스런 자세로 올라보리라 마음을 다잡아보지만 첫 볼트를 넘어서는 것부터 힘겨워 한다. 크랙 구간 다음에 나타나는 45 미터에 이르는 긴 슬랩 구간이 다소 부담스럽게 다가왔던 모양이다. 그래도 7피치까지 모든 구간을 안전하게 등반하고 악우들과 함께 연기봉 정상에서 맞이한 충만감은 예상보다 크다. 두 번의 하강으로 '요세미티 가는 길' 5피치 출발점 앞의 테라스로 내려와 늦은 점심을 먹은 후, 다른 악우들도 더이상 등반의욕이 발동하지 않은 듯하여 하산을 결정한다. 언젠가는 '요세미티 가는 길' 루트도 즐겁게 오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마음 속으로 기약한다.     

 

원정등반을 위한 체력이 내 생각만큼 쉽게 올라오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 몸이 노쇠해진 까닭일까? 4년 전 봄의 리볼팅 작업에 참가했고, 3년 전 여름날에 아주 상쾌하고 만족스런 등반을 감행했던 뜻깊은 경험들을 간직하고 있는 '배추흰나비의 추억' 루트이기에 등반을 준비하면서 별다른 걱정은 하지 않았었다. 등반성 높은 피치만을 골라먹자는 생각으로 '배추흰나비의 추억'을 3피치부터 올라 정상을 찍은 후, '요세미티 가는 길' 루트를 몇 피치만이라도 붙어보자는 것이 애초의 계획이었다. 6월 말에 떠날 요세미티 원정 등반을 염두에 두고 있기에 당연히 아직까지 맛보지 못한 '요세미티 가는 길' 루트에 관한 정보를 더 많이 찾아보았다.

 

내 체력을 감안하지 않은 출발 전의 의욕적인 등반계획은 절반의 성공에 만족해야 했다. '배추흰나비의 추억' 전 루트 등반을 완료하고 나니 더이상 새로운 루트에 붙을 염사나 기운이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생각해보니 3일 전의 4만보 가까운 우중산행 후의 피로감도 여전히 남아 있는 듯했다. 악우의 말을 빌리자면 지난 번 등반 때보다 내 몸이 적어도 3년은 더 늙었다는 걸 간과한 탓이다. 서럽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다. 이제부터는 내 몸상태의 현주소를 냉정하게 파악하여 체력을 끌어올릴 때의 준비 기간이나 피로로부터 회복하는 시간을 좀 더 넉넉히 잡는 것이 지혜로운 행동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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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 '배추흰나비의 추억' - 2021년 8월 14일(토)

기록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동시에 내 기억의 불확실성을 인정해야 했다. '배추흰나비의 추억'길 리볼팅 작업을 했던 때가 언제였던가 정확히 가늠할 수가 없었다. 블로그를 펼쳐보니 작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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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봉산 입구에서 만월암을 거쳐 '배추흰나비의 추억' 초입에 이르기까지는 적어도 1시간 30분이 걸린다.
▲ 만월암 아래의 등로에서 보이는 선인봉. 이른 시각인지라 아직은 바위에 붙어 있는 클라이머들이 보이지 않았다.
▲ 바위를 지붕삼아 자리한 만월암이 보이면 어프로치는 막바지에 이른다. 하산길에 스님께서 주신 따뜻한 "무병장수차"의 구수한 맛이 기억난다.
▲ 만월암 바로 위의 전망 좋은 마당바위는 쉬어가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 바위에 드러누워 하늘을 보는 맛이 여간 좋은 게 아니다. 김기섭 시인의 시 <배추흰나비의 추억> 첫 행에 등장하는 장소이다.
▲ '배추흰나비의 추억' 바윗길 초입 아래의 넓은 공터에서 등반 준비 중. 배낭은 데포시켜 놓고 등반용 소형 배낭만 착용했다.
▲ 오늘 쎄컨을 맡은 은경이가 첫 피치를 출발하고 있다. 1피치는 40미터 가까운 길이에 초반부가 홀드 양호한 직벽이다. 선등자에겐 안전을 위해 적절한 캠 설치가 요구되는 구간이다. BD 4호와 1호 캠을 설치하고 올랐던 것 같다.
▲ 라스트를 맡은 성배씨가 1피치 후반부를 올라서고 있다.
▲ 2피치는 첫 볼트만 넘어서면 쉬운 구간이다.
▲ 2피치 확보점 너머로 '낭만길'의 오똑한 바위가 보인다.
▲ 성배씨가 2피치 후반부를 올라서고 있다.
▲ 2피치 봉우리에서는 '배추흰나비의 추억' 3피치 이후의 전 구간이 한눈에 들어온다. 좌측으로 나란히 이어지는 '요세미티 가는 길' 루트도 잘 보인다.
▲ 2피치에서 짧은 하강 후, 침니를 건너 뛰면 3피치 출발점이 나온다.
▲ 3피치부터는 본격적으로 크랙등반의 묘미를 맛볼 수 있는 구간이 이어진다.
▲ 손째밍과 발째밍이 잘 먹혀서 즐겁게 올랐으나, 예전에 슬링이 걸려 있던 마지막 구간의 직상크랙에서 자유등반 방식을 포기하고 말았다. 나의 담력과 체력이 부족하다는 방증이다.
▲ 라스트로 오른 성배씨가 3피치 마지막 직상크랙 구간을 통과하고 있다.
▲ 사진 속의 성배씨처럼 왼손과 왼발을 깊숙히 째밍하고 조금씩 진행하면 자유등반이 가능한 구간이다. 나는 선등의 부담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볼트따기로 올랐다.
▲ 4피치는 '배추흰나비의 추억' 전체 루트에서 하일라이트이자 가장 힘든 구간이다.
▲ 4피치 중에서도 활처럼 휘어지는 후반부의 크랙 구간이 가장 까다로웠다.
▲ 4피치는 3피치 확보점에서 침니로 내려선 후에 다시 올라야 한다. 은경이가 4피치 초반부를 등반 중이다.
▲ 4피치 확보점에서 내려다 본 그림.
▲ 성배씨가 4피치 후반부를 오르고 있다.
▲ 5피치를 등반 중이다. 5피치를 올라서면 쉴 수 있는 넓은 테라스가 나온다.
▲ 5피치 확보점에서 후등자 확보 중인 모습.
▲ 6피치는 등반거리 45미터에 이르는 긴 구간이다. 3, 4피치의 짭짤한 크랙 구간 직후에 나타난 만만치 않은 경사의 슬랩이 부담스러웠다. 초반부의 볼트 두 개를 올라설 때는 밸런스를 잘 잡아야 했다.
▲ 긴 거리의 쉽지 않은 슬랩이 이어지니 중간에 쉬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 부담스런 6피치를 올라선 후 확보점에서 맛본 안도감과 시원함이야말로 등반의 크나큰 매력이다.
▲ 6피치 확보점에서 내려다 본 장면.
▲ 6피치 확보점 우측의 크랙을 넘어서면 연기봉 정상이다.
▲ 연기봉 정상에서 만장봉을 사이에 두고 성배씨와 기념사진 한 컷.
▲ 하강은 자운봉과 연기봉 사이로 하게 되어 있다.
▲ 연기봉 정상에서 본 만장봉.
▲ 연기봉 정상에서는 포대능선과 Y계곡의 산객들이 개미처럼 보인다.
▲ 연기봉에서 자운봉 방향으로 1차 하강하면, 또 하나의 쌍볼트 하강링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30미터를 하강하면 모든 등반이 끝난다.
▲ 공터로 돌아와 장비를 정리하면서 올려다 보니 늠름한 소나무 세 그루가 인상적으로 보였다. 활엽수들 틈에서 잘 자라기를 기원했다. 사진에는 담지 못했지만 눈앞에서 날아다니는 하얀나비 한 마리도 만났다. 그녀석이 배추흰나비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으나 특별히 반가웠다.
▲ 석간수로 흐르는 계곡물에 탁족하니 발이 시릴 정도로 차가워 금세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었다.
▲ '배추흰나비의 추억' 바윗길을 개척하신 김기섭 시인의 시집 <달빛 등반>.
▲ 내가 소장 중인 시집 <달빛 등반> 속의 시 '배추흰나비의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