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천지가 푸르고 싱그러운 5월의 첫 주말, 어린이날과 대체휴일이 포함된 3일 연휴가 시작되는 날 아침이 밝았다. 화창한 날씨가 3일 동안 지속된다면 좋으련만, 많은 이들의 기대와는 달리 오늘 하루만 맑음이고 어린이날인 내일부터는 제법 많은 봄비가 3일 내내 이어질 거라는 일기예보이다. 욕심 같아선 연휴 내내 바위에 붙어서 등반하고 싶지만 하늘이 허락하지 않으니 어쩌겠는가? 오늘 하루만이라도 화창한 것에 감사하면서 내심 최대한 길게 아름다운 산의 품에 안겨 놀아보리라는 다짐을 하고, 올해 처음으로 나서는 인수봉 등반 코스로 접근 거리와 등반 길이가 모두 긴 설교벽과 인수릿지를 잇는 등반 궤적을 뇌리에 그려본다.
아침 7시에 다섯 명의 악우들이 우이동에서 만나 어프로치를 시작했다. 휴일이면 항상 붐비는 인수봉 바윗길에서 그나마 한적할 듯한 코스를 선택하기 위해 인수봉 북동쪽 사면 숲속의 희미한 오솔길을 따라 설교벽을 찾아가는 여정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구조대길 초입까지는 별 어려움 없이 잘 찾았는데, 그 이후로는 밀림처럼 녹음이 짙어진 숲속에서 희미해진 등산로를 찾아내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울창해진 숲이 시야를 방해하여 주변 산세를 가늠하기가 힘들었던 까닭이다. 산길을 잘 안다고 자부하던 자존심에 상처가 날 만큼 근래에 경험하지 못한 알바를 하고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설교벽 아래는 그 어느 때보다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오늘의 등반 리더로서 제대로 길을 찾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괜스레팀원들을 고생시켰다는 미안한 마음이 교차했던 복잡한 내 심사를 차분히 가라앉혀 주는 듯한 평화로움이 설교벽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설교벽 루트 6피치를 오르는 동안 우리팀 주변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인수봉 북벽 너머의 동벽 루트를 오르는 등반대의 구호 소리만이 지저귀는 산새소리 사이로 간간히 들려올 뿐이었다. 평소의 주말과는 달리 인수릿지에 올라선 후에도 바윗길은 오롯이 우리들 차지였다. 실크랙 아래의 공터에서 다소 늦은 점심을 먹고 있을 때, 세 명으로 구성된 팀이 우리 뒤를 따라 붙기는 했으나 등반에 큰 불편함을 초래하지는 않았다. 우리팀의 막내인 준수씨에게는 오늘 등반이 처음으로 인수봉 정상을 밟게 된 뜻깊은 순간으로 남았다. 모든 일에서 첫 경험은 가슴 설레임이나 벅찬 감동을 동반하는 특별한 개인사로 남게 마련이다. 준수씨의 첫 인수봉 등정을 축하해주면서 나 역시 처음으로 인수봉 정상을 밟던 그 순간의 감흥이 되살아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