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설교벽과 인수릿지 - 2024년 5월 4일(토)

빌레이 2024. 5. 5. 11:32

온 천지가 푸르고 싱그러운 5월의 첫 주말, 어린이날과 대체휴일이 포함된 3일 연휴가 시작되는 날 아침이 밝았다. 화창한 날씨가 3일 동안 지속된다면 좋으련만, 많은 이들의 기대와는 달리 오늘 하루만 맑음이고 어린이날인 내일부터는 제법 많은 봄비가 3일 내내 이어질 거라는 일기예보이다. 욕심 같아선 연휴 내내 바위에 붙어서 등반하고 싶지만 하늘이 허락하지 않으니 어쩌겠는가? 오늘 하루만이라도 화창한 것에 감사하면서 내심 최대한 길게 아름다운 산의 품에 안겨 놀아보리라는 다짐을 하고, 올해 처음으로 나서는 인수봉 등반 코스로 접근 거리와 등반 길이가 모두 긴 설교벽과 인수릿지를 잇는 등반 궤적을 뇌리에 그려본다.

 

아침 7시에 다섯 명의 악우들이 우이동에서 만나 어프로치를 시작했다. 휴일이면 항상 붐비는 인수봉 바윗길에서 그나마 한적할 듯한 코스를 선택하기 위해 인수봉 북동쪽 사면 숲속의 희미한 오솔길을 따라 설교벽을 찾아가는 여정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구조대길 초입까지는 별 어려움 없이 잘 찾았는데, 그 이후로는 밀림처럼 녹음이 짙어진 숲속에서 희미해진 등산로를 찾아내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울창해진 숲이 시야를 방해하여 주변 산세를 가늠하기가 힘들었던 까닭이다. 산길을 잘 안다고 자부하던 자존심에 상처가 날 만큼 근래에 경험하지 못한 알바를 하고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설교벽 아래는 그 어느 때보다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오늘의 등반 리더로서 제대로 길을 찾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괜스레 팀원들을 고생시켰다는 미안한 마음이 교차했던 복잡한 내 심사를 차분히 가라앉혀 주는 듯한 평화로움이 설교벽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설교벽 루트 6피치를 오르는 동안 우리팀 주변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인수봉 북벽 너머의 동벽 루트를 오르는 등반대의 구호 소리만이 지저귀는 산새소리 사이로 간간히 들려올 뿐이었다. 평소의 주말과는 달리 인수릿지에 올라선 후에도 바윗길은 오롯이 우리들 차지였다. 실크랙 아래의 공터에서 다소 늦은 점심을 먹고 있을 때, 세 명으로 구성된 팀이 우리 뒤를 따라 붙기는 했으나 등반에 큰 불편함을 초래하지는 않았다. 우리팀의 막내인 준수씨에게는 오늘 등반이 처음으로 인수봉 정상을 밟게 된 뜻깊은 순간으로 남았다. 모든 일에서 첫 경험은 가슴 설레임이나 벅찬 감동을 동반하는 특별한 개인사로 남게 마련이다. 준수씨의 첫 인수봉 등정을 축하해주면서 나 역시 처음으로 인수봉 정상을 밟던 그 순간의 감흥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 하루재를 지나 조망터에서 올려다본 오늘의 인수봉. 귀바위 아래로 길게 뻗어내린 인수릿지와 설교벽이 선명하게 보였다.
▲ 구조대길 출발점. 여기까지는 잘 찾았다.
▲ 구조대길 초입에서 횡단하듯이 길을 찾아나섰어야 했는데, 너덜지대를 따라 올라가는 바람에 절벽을 만나 예정에 없던 등반을 하게 되었다. 사진 속의 침니를 넘어 능선에 올라서니 설교벽 중간이 보였고, 가파른 숲지대를 로프로 30 미터 하강하여 설교벽 초입으로 내려설 수 있었다.
▲ 설교벽 아래에서 암벽화로 갈아신고 본격적인 등반을 준비 중이다. 우리팀 외에는 아무도 없는 설교벽이 더없이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 설교벽 1피치는 비교적 완만한 슬랩이다. 내가 선등하고, 성배, 준수, 소영, 은경 순으로 올랐다. 선등자인 나와 라스트를 맡은 은경이가 무전기로 소통했는데, 간간히 다른 팀 무전기와 혼선이 일어난 것을 제외하면 효과는 만점이었다.
▲ 설교벽 2피치는 손가락이 잘 들어가지 않은 크랙을 잡고 일어서야 하는 초반부가 살짝 까다롭다. 중간 확보점으로 녹슨 하켄이 두 개 박혀있다.
▲ 설교벽 3피치는 그리 어렵지 않은 슬랩 구간으로 확보점은 소나무 좌측에 있다.
▲ 4피치부터는 크랙 등반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구간이 이어진다.
▲ 사진은 5피치 초반부이고, 설교벽 루트 전체에서 크럭스는 5피치 후반부의 직상크랙 구간이다.
▲ 소영씨가 5피치 후반부의 크럭스 구간인 벙어리성 크랙 구간을 넘어서고 있다. 선등자인 내게는 블다 4호 캠이 심정적으로 큰 위안을 준 구간이다.
▲ 설교벽 루트의 마지막 6피치 확보점에서 후등자 확보 중이다. 페츨 마이크로트랙션 장비를 실전에서 처음으로 사용했는데, 후등자 확보용으로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오늘따라 유난히 발이 아파서 암벽화를 자주 벗어야 했다. 다년 간 신어서 익숙해진 TC프로 대신 아직은 발이 아픈 마에스트로 암벽화를 가져온 게 후회스러웠다.
▲ 설교벽 6피치 등반을 마치고 마지막 확보점에서 5명이 모두 모였다. 동굴 같은 침니 사이로 등반해서 인수릿지에 붙어볼까 잠시 생각했으나 팀원들의 의견에 따라서 가지 않은 게 천만 다행이었다. 인수릿지에서 침니를 건너갈 때 확인해 보니 등반이 불가할 듯했다.
▲ 설교벽에서 짧은 책바위를 올라서면 인수릿지 3피치와 만나게 된다.
▲ 인수릿지 3피치는 혹부리바위(일명 꼭지바위)에 올라서서 날등에 붙는 구간이다.
▲ 혹부리바위를 올라설 때 확보자는 앉은 자세로 안정적인 확보를 해주어야 한다.
▲ 혹부리바위에서 날등에 붙을 때는 건너 뛰지 말고 최대한 밀착해서 팔을 뻗으면 든든한 손홀드가 잡힌다.
▲ 날등 정상엔 튼튼한 쌍볼트 확보점이 구축되어 있어서 안전하다.
▲ 침니를 내려설 때는 톱로핑 하강하듯이 내려선 다음에 건너편 슬링을 잡으면 된다.
▲ 슬링을 잡은 후에는 완만한 슬랩이 이어진다. 바깥쪽으로 나가면 더 편리하다.
▲ 침니로 내려서는 톱로핑 하강 방식에서 라스트를 맡은 은경이가 앞 순서의 등반자 4명의 하강 빌레이를 맡았다. 이때 확보자는 사진에서와 같이 반드시 하강하는 사람과 같은 방향에 서야 한다. 즉, 로프가 앵커에 안정적으로 고정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 인수릿지 4피치 실크랙은 오를 때마다 크랙등반의 묘미가 느껴지는 구간이다. 사선으로 멋지게 뻗어내린 크랙이 좀 더 길었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바램이다.
▲ 크랙에서는 손째밍과 발째밍을 확실히 하면 오히려 힘이 덜 들어간다.
▲ 이어지는 5피치는 등반거리가 35미터에 이른다. 우리팀은 70미터 로프 두 동으로 5명이 등반했기에 딱 맞아 떨어졌다.
▲ 인수릿지 5피치는 크랙이 크고 확실해서 등반이 즐거운 구간이다.
▲ 인수릿지는 5피치 등반을 마치면 크게 난해한 구간은 없다.
▲ 6피치부터 인수봉 정상까지는 70미터 로프 한 동으로 5명이 20미터 내외 간격을 두고 로프를 묶는 안자일렌( Anseilen) 상태로 진행했다.
▲ 안자일렌( Anseilen)에 익숙치 않은 팀원들이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리더로서 인지하지 못한 건 나의 불찰이었다.
▲ 귀바위에서 인공등반을 즐기는 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우리팀의 막내인 준수씨가 처음으로 인수봉 정상을 딛는 뜻깊은 순간이다.
▲ 인수봉 정상에 처음 올라와서 아내와 통화하는 준수씨의 상기된 목소리가 들렸다.
▲ 제법 긴 피치를 등반해서 오른 올해의 첫 인수봉 정상에서의 망중한이 달콤했다.
▲ 인수봉 첫 등정을 마친 준수씨가 60미터 하강까지 안전하게 완료한 순간이다.
▲ 내가 평소와 다른 하산길을 택해 비둘기샘에 들러오느라 팀원들과 길이 어긋나는 바람에 하루재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다른 팀원들은 마당바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시원한 산바람이 불어주는 하루재에서의 그 휴식시간이 꿀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