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강촌 유선대 암장 - 2024년 1월 27일(토)

빌레이 2024. 1. 28. 11:05

주초부터 목요일까지는 아침 기온이 영하 10도를 밑도는 한파가 기승을 부렸다. 내심 주말에 악우들에게 예고했던 야외 암벽등반 계획을 접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망설임이 있었다. 햇볕이 없거나 낮기온이 영상으로 올라오지 않는다면 실내 인공암벽을 찾기로 하고 우선은 강촌의 유선대 암장으로 등반지를 결정하여 공지했다. 유선대 암장의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를 대비한 플랜 B로는 예전에 둘러본 적이 있는 춘천 봄내체육관의 인공암벽장에서 운동하는 것을 염두에 두기로 했다. 다행히 금요일 오후부터는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왔고, 토요일에도 춘천지역의 일기예보는 맑음이었다. 겨울 햇살을 받아 환하게 반짝이고 있을 유선대 암벽에서 악우들과 함께 등반할 수 있는 희망이 부풀어 오른 것이다.

 

아침 8시에 서울을 출발하여 9시 40분 즈음에 강선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영하 5도의 기온이지만 그리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길지 않은 어프로치 후에 아늑한 베이스캠프에서 여유로운 커피타임을 갖고, 10시 40분부터 중앙벽에서 등반을 시작할 수 있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암벽은 차갑지 않았다. 여분의 초크백에 핫팩을 담아 간간히 손을 데우면서 등반하는 맛이 각별했다. 오늘 유선대 암장에는 우리팀 외에 하루종일 아무도 오지 않았고 바람도 잔잔했다. 그 덕택에 5명의 악우들이 '독수리 오형제'처럼 오손도손 챙겨주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등반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세 마디의 '그리움길' 루트를 통해 아직까지 북사면에 잔설이 하얗게 쌓여 있는 유선대 정상을 밟은 순간이 특별했다. 동계 시즌에 처음으로 도전해 본 멀티피치 등반이라서 더욱 소중하고 뜻깊은 등반이었다.       

 

▲ 강선사 주차장에서 어프로치를 시작하기 전에... 두터운 겨울옷과 등반장비들로 인해 다들 배낭 무게들이 만만치 않다.
▲ 10시 40분 즈음부터 벽에 붙기 시작했는데... 햇살을 받고 있는 바위가 그리 차갑지 않았다.
▲ 처음엔 초크백을 두 개 착용하고 올랐다. 여분의 초크백에 핫팩을 담아서 간간히 손을 데울 수 있으니 편리했다.
▲ 등반 초반엔 아직 쌀쌀하고 몸도 덜 풀린 탓에 모두들 조심스러워 하는 눈치였다.
▲ 평소엔 거뜬히 완등하던 크랙 루트가 쉽지 않았다. 햇볕에 노출된 직벽보다는 음지인 크랙 속이 차가워서 상당히 미끌렸다.
▲ 벽에 쏟아지는 햇살이 따사로워 점점 컨디션이 좋아지는 듯했다. 어느 순간 햇볕을 받은 등에는 난로를 쬐는 듯한 따스함이 전해졌다.
▲ 추위에 굴하지 않고 열심히 등반에 집중하고 있는 악우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 전반적으로 홀드의 상태가 봄이나 가을 시즌보다 훨씬 더 어렵게 느껴진 루트에서 모두들 열심히 매달렸다.
▲ 생각했던 것보다 등반 여건이 좋아서 정상에 다녀오기로 하고 총 3피치인 '그리움길' 루트에 붙었다. 유선대 암장이 처음인 성배씨와 준수씨에게 정상뷰를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내가 선등하고 은경, 소영, 준수, 성배 순으로 올랐다.
▲ '그리움길' 1피치는 5.10c 난이도에 등반 거리가 30미터에 이르는 등반성 좋고 다양한 재미가 있는 참 괜찮은 루트이다.
▲ 겨울철엔 '그리움길'에서 제일 쉬운 구간인 2피치를 가장 조심해야 한다. 무엇보다 낙엽과 낙석에 유의해야 한다. 위 사진 상의 소나무를 지날 때 나도 하마터면 솔잎에 미끄러질 뻔 했다. 다행히 소나무에 슬링으로 중간 확보점을 구축해 두었기 때문에 안전할 수 있었다. 자연암벽에서는 곳곳에 예기치 않은 위험요소가 상존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은 순간이었다.
▲ '그리움길' 2피치 확보점은 직벽 아래의 소나무에 슬링으로 적절히 구축해야 한다. 두껍게 쌓인 낙엽 밑이 얼어 있기 때문에 암벽화로 딛을 때엔 각별히 유의하고, 가능하면 바위를 밟고 일어서는 게 좋다. 홀드가 여의치 않을 땐 근처의 낙엽을 치우면 적절한 홀드가 반드시 나타난다. 암벽에서 낙엽이나 눈이 쌓여 있다는 것은 그 부분이 기울기가 완만하고 오목한 부분이라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 2피치 확보점엔 큰 소나무 몇 그루가 있는 음지이다. 찬바람이 지나는 길목이기도 하여 머무는 동안 갑자기 한기가 느껴졌다. 이 곳을 가능하면 빨리 탈출해야 했다. 등반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 3피치는 60미터 로프 두 동으로 내가 선등하여, 거의 동시에 두 사람씩 등반하는 시스템을 구사했다. 악우들이 등반시스템을 잘 이해해서 안전하고 빠르게 정상에 닿을 수 있었다.
▲ '그리움길' 3피치 초반부는 음지여서 바위가 얼음처럼 차가웠다. 홀드를 잡는 손끝 감각이 순간적으로 마비된 듯했다.
▲ 3피치 초반부의 오버행 턱을 넘어서는 순간 음지에서 양지로 바뀐 암벽이 천국 같았다. 동계 암벽에서는 햇살의 유무가 등반 난이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 유선대 정상의 북사면엔 잔설이 하얗게 남아 있었다.
▲ 동계 시즌에 유선대 정상을 밟은 건 나도 이번이 처음이다. 어떤 일이든 처음은 가슴 설레임이 있고,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일 게다.
▲ 오늘 하루 '독수리 오형제'처럼 원팀(one team)으로 즐겁게 등반했던 악우들이 정상에 모여 기념사진을 남겼다.
▲ 정상에서 하강 포인트로 이동하는 중...
▲ 60미터 로프 2동으로 '그리움길' 1피치 확보점까지 1차 하강한 후, 마지막 1피치는 60미터 자일 1동으로 30미터를 하강했다.
▲ 정상에서 하강한 후에도 한 차례씩 더 매달려서 남은 에너지를 모두 쏟아 부은 후에 오늘 등반을 마무리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