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첫 주말이다. 애초엔 운악산 산행을 계획했었다. 하지만 어제 오후부터 갑자기 왼쪽 다리가 불편했다. 걸음을 내딛기 위해 다리를 올릴 때마다 왼쪽 가랑이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성배씨가 운악산 산행에 동참하고 싶어 했으나, 아무래도 내 다리 상태를 믿을 수가 없었다. 자고 난 후에도 다리가 여전히 불편하면 나는 이번 주말 산행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일단은 가까운 도봉산으로 산행지를 변경하여 공지를 했다. 다행스럽게도 아침에 일어나 보니 경미한 통증은 남아 있으나 그런대로 걸을만 하다는 판단 하에 나도 산행에 참석하겠다는 메시지를 날렸다.
광륜사 삼거리에서 9시 정각에 일행들을 만났다. 평소 실내암장에서 함께 운동하는 4명의 악우들이다. 은경, 성배, 준수, 나, 이렇게 넷이서 오붓하게 다락능선 방향으로 길을 잡고 산에 들었다. 은석암까지 이어지는 능선길은 봄날처럼 따스했다. 어제까지 자욱했던 미세먼지도 말끔히 걷혔다. 가시거리는 충분히 멀었고 조망은 걷힐 것이 없었다. 수락산과 불암산이 코앞에 펼쳐져 있고 그 너머로 남양주시를 지나는 천마지맥과 저 멀리 용문산에서 백운봉으로 이어지는 양평의 산줄기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청명한 겨울 하늘 아래에서 등 뒤로 쏟아지는 햇볕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다락능선에 올라서자마자 등로는 빙판길로 변해 있었다. 오랜만에 아이젠을 착용하고 안전하게 눈길을 걷는 재미가 쏠쏠했다. 내딛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선인봉, 만장봉, 자운봉, 포대능선의 아름다움은 다락능선에서 조망했을 때가 으뜸이란 사실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포대능선 정상 데크로 이어지는 가파른 암릉길에 설치된 철기둥과 쇠줄을 잡고 오르는 구간은 알프스의 비아페라타(Via Ferrata) 루트 같았다. 암릉에 눈이 쌓여 위험도가 높아진 이 구간을 와이어를 붙잡고 오를 땐 지난 여름 스위스알프스 트레킹을 하면서 눈으로만 지켜봐야 했던 비아페라타 등반을 잠시나마 체험하고 있는 듯한 즐거움이 있었다.
포대능선 정상 아래의 양지바른 테라스에서 한가로운 점심시간을 가졌다. 산행 에티켓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조선족 무리들 탓에 번잡스러운 상태에서 위험 구간인 Y계곡을 통과해야만 했다. 오늘 산행 중 옥의 티가 아닐 수 없는 대목이었다. 신년 산행인지라 줄서서 인증사진을 찍고 있는 신선대 정상에도 잠시 다녀왔다. 내 다리 상태는 산에 들어선 이후로 호전되었는데, 신선대 아래에서 은경이의 다리에 경미한 쥐가 났다. 더이상 무리하지 않기로 하고 우이암을 거쳐 내려가려던 계획을 바꾸어 도봉주능선을 걷다가 주봉을 지나 하산길로 접어들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다락능선을 통해 도봉산 정상까지 다녀온 오늘의 산행이 정말 즐거웠다. 무엇보다 대화가 잘 통하는 악우들이 함께 해서 더욱 뜻깊었던 신년 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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