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트레킹

북한산둘레길 함박눈 산행 'Adieu 2023' - 2023년 12월 30일(토)

빌레이 2023. 12. 31. 08:54

아침부터 눈이 내렸다. 오전 9시에 우이동에서 육모정고개로 향하는 넓은 진입로를 걷는 동안엔 우산을 써야할 정도의 함박눈으로 변했다. 눈발은 하루종일 끊이지 않았다. 서울의 누적 강설량은 12.2cm로 13년 만의 폭설이라고 했다. 영봉에 올라 인수봉을 조망하려던 애초의 계획을 변경하여 우이령 입구에서 내려와 도봉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둘레길을 걷기로 했다. 어차피 사방이 흐린 하늘에 전망은 없을 것이니 둘레길을 걸으면서 차분하게 함박눈을 즐겨보자는 생각이었다.

 

연산군묘 앞의 근린공원엔 어린이들과 주민들이 눈사람을 만들고 있었다. 팔각정에서 잠시 눈을 피하다가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정갈한 원당마을한옥도서관을 구경했다. 도서관 안에서 바라본 중정이 멋졌다. 소복히 쌓이는 하얀 눈이 운치를 더해 주었다. 수령 550년으로 추정되는 은행나무는 나뭇잎을 다 떨궈냈음에도 불구하고 앙상해 보이지 않았다. 대장군처럼 의연하게 버티고 서있는 그 모습이 함박눈 속에서 더욱 돋보였다. 세월의 풍상을 오롯히 견뎌내면서 자잘한 일에 휘둘리지 않고 한 자리를 굳건히 지켜온 노거수의 존재는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다. 

 

정의공주묘역 바로 옆의 쌀국수 음식점에서 창밖으로 내리는 함박눈을 구경하면서 점심을 먹고 방학동길 구간을 걷다가 무수골을 앞두고 올래갈래 마을길로 내려왔다. 도심의 주택가와 도로는 폭설에 엉망진창이었다. 우연히 통과하게 된 방학동 도깨비시장을 구경하고, 따뜻한 카페에서 눈에 젖은 옷을 말리면서 등반 얘기를 나눈 시간이 행복했다. 비록 설악산과 대둔산 암벽등반을 다녀오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아내와 함께 스위스알프스 트레킹을 다녀왔고, 눈 수술과 쇠약해진 몸으로 조금은 힘에 부쳤던 2023년을 그런대로 잘 견뎌낸 것에 대한 감사함이 밀려왔다. 다가오는 2024년 갑진년(甲辰年)은 더욱 값진 한 해로 가꿔 나갈 수 있기를 희망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