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바위를 제대로 만져본 기억이 아득하기만 하다. 6월 초에 다녀온 포항 내연산 이후로 이렇다 할 암벽등반을 하지 못하고 올 여름 시즌은 훅 지나가 버렸다. 클라이밍 관점에서 보자면 올해 농사는 이미 망친 격이다. 망막 수술의 여파로 봄 시즌을 날려 버리고, 7월엔 크로아티아 출장, 8월엔 스위스 알프스 트레킹을 다녀오느라 클라이밍은 신경 쓸 여유도 없었다. 지난 6월 하순에 불의의 갈비뼈 골절상을 당한 기범씨는 두 차례나 큰 수술을 감당하느라 그동안 클라이밍은 고사하고 일상생활도 힘들었을 것이다. 오늘 함께 등반한 은경이와 은숙씨도 복잡다단한 집안 사정 탓에 녹록치 않은 나날들을 견뎌 오느라 일상에서 등반은 한켠으로 제쳐둔 모양새였다.
네 사람 모두가 자신의 등반 능력을 반신반의 하면서 가까운 암장에서 시험 삼아 바위에 붙어보기로 마음을 다잡고 찾은 곳이 파주의 웅담리 암장이다. 그러나 큰 부담 없이 한가롭게 등반하면서 기분전환이나 하고 오겠다던 환상은 여지 없이 박살나고 말았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클라이머들로 붐볐던 암장에서 여유 있는 마음을 갖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기범씨는 타고난 클라이머답게 두 달 전에 수술 받은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회복력으로 고난도 루트를 간단히 해치웠고, 나머지 세 명도 오랜만에 매달린 것 치고는 괜찮은 등반력으로 그런대로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모든 일에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법이다. 인생은 이 단순한 원리로 움직인다. 나흘 전인 처서를 기점으로 선선해지기 시작한 공기처럼 우리들의 클라이밍도 다시 부활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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