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파주 웅담리 암장 - 2023년 8월 27일(일)

빌레이 2023. 8. 28. 13:24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바위를 제대로 만져본 기억이 아득하기만 하다. 6월 초에 다녀온 포항 내연산 이후로 이렇다 할 암벽등반을 하지 못하고 올 여름 시즌은 훅 지나가 버렸다. 클라이밍 관점에서 보자면 올해 농사는 이미 망친 격이다. 망막 수술의 여파로 봄 시즌을 날려 버리고, 7월엔 크로아티아 출장, 8월엔 스위스 알프스 트레킹을 다녀오느라 클라이밍은 신경 쓸 여유도 없었다. 지난 6월 하순에 불의의 갈비뼈 골절상을 당한 기범씨는 두 차례나 큰 수술을 감당하느라 그동안 클라이밍은 고사하고 일상생활도 힘들었을 것이다. 오늘 함께 등반한 은경이와 은숙씨도 복잡다단한 집안 사정 탓에 녹록치 않은 나날들을 견뎌 오느라 일상에서 등반은 한켠으로 제쳐둔 모양새였다.

 

네 사람 모두가 자신의 등반 능력을 반신반의 하면서 가까운 암장에서 시험 삼아 바위에 붙어보기로 마음을 다잡고 찾은 곳이 파주의 웅담리 암장이다. 그러나 큰 부담 없이 한가롭게 등반하면서 기분전환이나 하고 오겠다던 환상은 여지 없이 박살나고 말았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클라이머들로 붐볐던 암장에서 여유 있는 마음을 갖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기범씨는 타고난 클라이머답게 두 달 전에 수술 받은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회복력으로 고난도 루트를 간단히 해치웠고, 나머지 세 명도 오랜만에 매달린 것 치고는 괜찮은 등반력으로 그런대로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모든 일에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법이다. 인생은 이 단순한 원리로 움직인다. 나흘 전인 처서를 기점으로 선선해지기 시작한 공기처럼 우리들의 클라이밍도 다시 부활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오랜만인지라 첫 루트의 긴장감은 높았으나, 전에 올랐던 경험 덕택이었는지 조심스럽게나마 완등할 수 있었다.
▲ 수술 후 첫 암장 나들이를 나온 기범씨는 수술 부위의 통증 탓에 초반엔 아주 조심스러운 몸짓이었으나, 오후엔 타고난 클라이머답게 고난도 루트를 깔끔한 동작으로 완등하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 현저히 떨어진 지구력과 어깨 통증의 우려 탓에 힘들었으나, 그간의 공백기 치고는 그런대로 괜찮은 등반이었다.
▲ 기범씨가 완등했던  고난도 루트는 톱로핑 방식으로도 아직 나에겐 버거웠다.
▲ 현재는 5.10대 초반의 루트만 완등 가능한 수준... 앞으로 꾸준히 몸을 만들어서 만족스런 폼을 찾아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왔다.
▲ 오늘의 웅담리 암장은 1, 2, 3 암장 모두 그 어느 때보다 많은 클라이머들로 붐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