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트레킹

[2023 스위스 알프스 #2] 랑플루(Längfluh, 2870m) - 8월 7일(월)

빌레이 2023. 8. 20. 20:42

어제 저녁 때 사스페에 도착해서 하룻밤이 지났다. 오늘은 처음으로 트레킹에 나서는 날이다. 새벽에 잠이 깨어 창문 밖을 열어보니 벌써부터 스키를 둘러메고 숙소를 나서는 한 무리의 스키어들이 보인다. 7시 30분부터 제공되는 조식 시간에 앞서 숙소 근처의 사스페 거리를 잠시 둘러 보았다. 만년설에서 스키를 즐기려는 스키어들과 알파인 등반에 나서는 복장의 클라이머들이 아침 댓바람부터 활기찬 발걸음으로 분주하게 골목길을 오가는 모습이 조금은 낯설어 보였다. 다른 한편으론 알프스의 고봉들에 둘러싸인 깊은 산골마을에서는 여명이 밝아올 무렵부터 부지런히 하루를 시작할 수 밖에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누구보다 부지런한 농부였던 부모님께서 늘 그랬던 것처럼. 인간들이 약속한 출퇴근 시간이 지정되어 있는 도시와 달리 이러한 산골에서는 대자연의 순리를 따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장시간의 비행과 시차로 인한 여독이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해발고도 2870 미터인 랑플루(Längfluh)까지 오르는 길은 그리 쉽지 않았다. 중간 케이블카역이 있는 스피엘보덴(Spielboden, 2448m) 산장까지는 거의 임도처럼 넓은 길을 따라 올랐다. 겨울이면 스키 슬로프였을 그 비탈길이 제법 가팔랐으나 스피엘보덴 산장까지는 그런대로 오를만 했다. 그 이후가 문제였다. 평소에 산행을 거의 하지 않는 아내가 가벼운 고소 증세를 보이는 듯했다. 막바지 빙하 옆으로 오르는 구간에서는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한 발, 두 발 내딛는 발걸음이 무척이나 버거워 보였다. 그래도 맨 뒤에서 내가 함께 하면서 천천히 오르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하여 여유로운 점심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설산 아래의 알파인 호수와 빙하를 둘러보는 점심 이후의 시간은 고생 끝에 맞이한 행복 가득한 순간들이었다. 하산길에 대한 부담감 전혀 없이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는 길까지 즐거움 가득이었다. 시차 적응에도 성공하여 아내와 함께 첫 트레킹을 무사히 잘 마쳤다는 안도감이 무엇보다 큰 하루였다.   

  

▲ 창문 밖으로 새벽 6시 즈음부터 스키 장비를 둘러메고 숙소를 나서고 있는 스키어들이 눈에 들어왔다.
▲ 높은 봉우리부터 햇살을 받고 있는 모습에서 맑은 하루를 예감했다.
▲ 조식 시간 전에 숙소 주변 거리를 둘러 보았다. 아침 댓바람부터 등반지를 향해 출발하고 있는 클라이머들이 보였다.
▲ 트레킹에 나서는 이들도 아침 일찍부터 움직이고 있었다.
▲ 아직은 조용한 거리 안쪽을 둘러보는 재미가 있었다.
▲ 9시에 숙소를 출발하여 사스페 중앙 거리를 관통했다. 사스페 시내엔 전기자동차만 다닐 수 있어서 쾌적했다.
▲ 사스페 시내를 벗어나 허선생님으로부터 오늘의 산행 코스에 대한 설명을 듣고...
▲ 스포츠센터를 지나 산으로 올라간다.
▲ 하얀 설산이 기다리고 있는 높은 곳을 향해 오른다. 내려올 때는 앞에 보이는 케이블카역에서 내렸다.
▲ 임도를 따라 오르는 내내 햇살을 듬뿍 받아서 빛나고 있는 설산이 눈앞에 펼쳐졌다.
▲ 겨울철엔 스키 슬로프였을 비탈길이 제법 가팔랐다.
▲ 아내는 힘겨워 하면서도 초반엔 그런대로 잘 오르고 있었다. 이때까지는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고...
▲ 중간 쉼터인 스피엘보덴(Spielboden) 산장까지는 오를만 했다.
▲ 스피엘보덴 산장을 뒤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고행길이 시작 되었다.
▲ 빙하가 녹아서 흘러내리는 폭포수가 장관을 이루는 풍경을 감상하면서...
▲ 알프스의 산길을 다시 밟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기분이 좋아서 별로 힘들 줄을 몰랐다.
▲ 이 너덜지대를 오를 때 즈음부터 아내는 진행이 느리고 힘겨워 하기 시작했다.
▲ 빙하 옆을 지날 때엔 호흡이 거칠어지고 한 발, 두 발 내딛는 발걸음이 둔해지는 약간의 고소 증세가 나타나는 듯했다.
▲ 힘겨워 하는 아내와는 대조적으로 현지의 한 여성은 평지를 걷는 듯한 가벼운 발걸음으로 우리를 순식간에 추월해 버렸다.
▲ 이렇게 멋진 빙하의 풍경도 아내 눈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고...
▲ 길은 유한하니 내가 멈추지 않으면 언젠가는 끝날 거란 생각으로... 가다보면 목적지는 가까워지 마련이다.
▲ 빙하 바로 옆의 쉼터에서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모습이 여유로워 보일 즈음...
▲ 마침내 우리도 한가한 점심시간을 가질 때가 되었다.
▲ 점심 이후는 고생 끝에 맞이한 즐거움 가득한 시간. 모든 알파인 호수는 하트 모양을 품고 있다는 엉뚱한 생각도 해 보면서...
▲ 이제는 관광객 모드로 전환하여 호수 배경의 인증 사진도 남겨보고...
▲ 빙하도 밟아 보면서...
▲ 빙하 한가운데서 빙벽등반을 하고 있는 클라이머들을 부러운 마음에 한참을 구경하고...
▲ 하산길의 부담감 전혀 없이 케이블카로 내려가는 길은 룰루랄라...
▲ 케이블카에서 내려 숙소로 가는 길은 평화롭기 그지 없는 목가적인 풍경. 아내는 이게 자기가 생각하는 스위스라고... ㅎㅎ.
▲ 저녁 산책 때 둘러 본 사스페 동쪽 언덕. 독일어로 'abenteuer wald'는 '모험숲(adventure forest)'을 뜻한다. 이곳엔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트리클라이밍(tree climbing) 등 어린이들도 숲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레크레이션 시설이 있다.
▲ 모험숲 입구엔 사스페 주변의 케이블카 운영 현황을 알려주는 안내판이 있다. 허선생님의 원래 계획은 오늘 사스페 서쪽의 한니그(Hannig, 2336m) 언덕에 오르는 것이었다. 현황판에 빨간색 불이 켜진 것처럼 케이블카가 공사중으로 운영하지 않아서 랑플루로 변경한 것이라고.
▲ 사스페 인근의 지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지도에 오늘 다녀온 랑플루를 표시해 보았다.
▲ 숙소에 비치되어 있는 책에서 사스페의 지리적 위치를 한눈에 알 수 있는 지도를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