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트레킹

불암산-수락산 여름산행 - 2023년 6월 24일(토)

빌레이 2023. 6. 25. 11:23

세상 사는 일이 참 쉽지 않다. 내 계획대로 내 입맛에 맞게 일이 술술 잘 풀리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세상이 돌아간다면 그것 또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세상은 결코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유유히 흘러갈 뿐이라는 진리를 항상 마음에 새기면서 일상을 헤쳐 나아가야 한다. 머리 속으로는 이러한 삶의 태도를 잘 알고 있지만, 막상 내게 닥친 현실을 지혜롭게 극복해내는 것은 그리 녹록치 않은 일이다. 

 

지난 월요일까지 성적처리를 마치고 모처럼 학기말의 홀가분한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하지만 개운해진 마음도 잠시 실내암장에서 운동을 시작한 저녁 무렵부터 오른쪽 어깨가 아프기 시작했다. 그간 온몸에 누적된 피로가 어깨 통증이라는 증상으로 나타난 것일 게다. 이제 기다리던 여름방학도 되었으니 본격적으로 클라이밍을 열심히 해서 한 등급이라도 발전해야지 하는 다짐을 내심 품고 있던 참이었다. 하지만 그 다짐은  출발부터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몸이 온전치 않으니 초장부터 기가 꺽이고 만 셈이다. 세상 참 어렵다.

 

처음엔 가벼운 근육통이겠거니 생각하고 화요일에 한의원에서 침치료를 받았으나, 상태는 호전되지 않고 더욱 심해졌다. 하는 수 없이 다음 날 정형외과에서 엑스레이와 초음파 장비를 통한 진료를 받았다. 우측 어깨 회전근계의 힘줄이 부분적으로 파열되었다는 의사선생님의 진단이었다. 힘줄이 전면 파열된다면 수술을 고려해야 한다고도 했다. 망막수술 이후로 정말이지 전신마취를 해야 하는 수술은 더이상 받고 싶지 않은 심정이다. 근육주사와 석회제거, 물리치료 등을 통해 지금은 통증이 많이 완화된 상태이지만 선뜻 클라이밍에 나설 수 있는 상태는 아니다. 

 

몸이 아프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가 없는 법이다. 건강하다면 한창 바위에 붙어서 암벽등반을 즐겨야 하는 주말이지만 오늘은 어쩔 수 없이 도보산행에 만족해야 한다. 복잡한 마음과 아픈 몸을 다스리기 위해 편안히 숲길을 걷는 산행만큼 좋은 치료제도 드물지 싶다. 무더운 여름날이지만 피톤치드 가득한 그늘진 숲길은 걷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간간히 불어주는 산바람은 시원하기 그지 없었다. 당고개역에서 불암산 철쭉동산을 들머리로 하여 서울둘레길을 걷는 것으로 산에 들었다. 불암산에서 덕릉고개를 지나 수락산 도솔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타고 올랐다. 불암산이 한눈에 마주보이는 테라스에 도착한 순간, 휴대용 의자를 불암산 철쭉동산에 빠트리고 온 것을 발견했다. 하는 수 없이 원점회귀 코스로 산행 경로를 바꾸기로 했다. 의자에 대한 미련이 전혀 남지 않을 정도로 테라스에서의 휴식은 달콤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산바람이 더없이 좋아서 신선놀음 하듯 한참을 쉬었다. 

 

도솔봉에서 곰바위 능선을 타고 하산하는 길 중간에 새롭게 개척된 암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암장은 클라이밍 전용 볼트로 루트를 셋팅한 게 아니었다. 공업용 O형 볼트를 사용한 루트들이 대부분이었다. 등반해보고 싶은 생각이 전혀 동하지 않았다. 안전을 생각하지 않은 무분별한 암장 개척은 결국 클라이머들에게나 자연에게나 모두 이롭지 않은 행위가 될 것이란 생각에 무척이나 아쉬웠다. 능선길에서 도안사와 송암사를 거쳐 동막골로 내려선 후에 다시금 덕릉고개를 통과했다. 이번엔 수락산에서 불암산 방면으로 넘었다. 둘레길을 따라 아침에 출발했던 철쭉공원의 벤치에 도착해 보니 내 의자가 그대로 있었다. 반신반의 했지만 잃어버린 내 물건을 다시 찾은 기분은 후련했다. 조금 더 걷다가 상계역에서 오늘의 산행을 마무리 지었다. 힘들이지 않고 산길을 천천히 걷고나니 몸과 마음에 조금은 활기가 차오르는 듯했다.     

 

▲ 도솔봉에서 내려오는 곰바위 능선 상에 개척되어 있는 암장. 클라이밍 전용 볼트를 사용한 루트가 드물었다.
▲ 칸테 루트에도 공업용 O형 볼트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O형 볼트는 추락 시 하중을 받게되는 수직방향으로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 고압선 철탑 사이에 암장이 위치해 있고, 그 뒤로 탱크바위와 도솔봉이 보인다.
▲ 곰바위 능선으로 하산하면서 바라본 불암산 전경.
▲ 처음으로 도안사 경내를 구경했다.
▲ 도안사는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 도안사 경내에 만개한 수국이 탐스러웠다.
▲ 도안사의 범종각은 곰바위 능선으로 하산하면서부터 선명하게 보였다.
▲ 도안사 입구의 이정표와 연꽃모양의 조각품이 이채로웠다.
▲ 도안사 아래에는 송암사가 자리한다.
▲ 동막골로 내려오는 길가에서 산수국이 반겨주었다.
▲ 아침에 걸었던 불암산 둘레길로 돌아가는 중이다.
▲ 불암산 둘레길에서 올려다 볼 수 있는 바위로 개척만 잘 한다면 재미 있는 볼더링 루트들이 많을 듯한 볼더이다.
▲ 철쭉동산에 도착해서 아침에 커피 마시던 쉼터에 두고온 의자를 찾으러 갔다.
▲ 모닝커피 마시고 산행을 출발하면서 빠트렸던 의자를 다시 찾을 수 있어서 기뻤다.
▲ 오늘 걸었던 산행코스가 나와 있는 지도로 오늘 두 차례 건넜던 덕릉고개에서 찍은 컷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