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악산은 양주시 방향에서 접근했을 때 산의 풍모를 제대로 맛볼 수 있는 듯하다. 멀리서도 눈에 띄게 도드라진 암봉인 임꺽정봉에서 정상을 지나 병풍바위까지 이어지는 정상부의 하늘금을 선명하게 마주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감악산둘레길 순환코스와 숲길코스를 모두 걸어본 경험치를 바탕으로 내린 나의 결론이다. 감악산 출렁다리가 있는 파주시 지역에서 시작하는 주등산로를 통해 정상에 오르는 많은 주말 산행객들을 피할 수 있어서 호젓한 산행을 즐길 수 있다는 것 또한 큰 장점이다. 양주시에 속하는 감악산 등산로 중 신암저수지에서 출발해서 하늘데크길을 통해 임꺽정봉에 오르는 코스는 이미 밟아 보았다.
오늘은 동광정사를 들머리로 하여 남선굴과 병풍바위를 거쳐 정상을 찍고 임꺽정봉으로 이동해서 하산하는 경로를 염두에 두고 산행에 나섰다. 같은 산이라도 처음 밟아보는 산길로 진행하니 감악산이 전혀 느낌이 다른 새로운 산으로 다가왔다. 동광정사 옆을 흐르는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등로 주변엔 민들레, 산괴불주머니, 피나물꽃, 현호색, 노랑제비꽃, 흰제비꽃, 보라빛 제비꽃, 보라색과 노랑꽃잎의 각시붓꽃 등등의 야생화들이 만발해 있었다. 앙증맞은 들꽃들이 모두 나를 보고 해맑게 웃고 있는 그 천진난만한 모습을 차마 외면할 수 없어서 촬영을 하느라 쉬엄쉬엄 올라갈 수 밖에 없었다. 가파른 오르막길에서도 전혀 숨이 차지 않았던 이유이다.
남선굴의 이색적인 모습을 구경하고 병풍바위에 올라서니 시원한 풍광이 눈앞에 펼쳐졌다. 양주시 지역에 속하는 감악산 골짜기들 끝자락에 들어앉은 봉암저수지, 원당저수지, 신암저수지가 차례로 보였다. 작년 삼일절날에 세 저수지들을 모두 둘러볼 수 있는 감악산 숲길코스를 걸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병풍바위 지척에 있는 성모상 앞의 테라스에서 한가로운 점심시간을 보냈다. 그러고 보니 내일이 부활주일이다. 테라스에서 바라본 풍광은 장쾌했다. 깍아지른 임꺽정봉의 암벽이 근경이라면, 연초록으로 물들기 시작한 숲과 양주시 벌판이 중경, 그리고 불곡산 너머의 수락산, 도봉산, 북한산의 산줄기가 희미한 원경을 장식하고 있었다.
정상에 올라 바라본 임진강의 굽이치는 물줄기 또한 반가웠다. 임꺽정봉을 찍고 하늘데크길로 하산하려는 계획은 수정해야만 했다. 4월 30일까지 데크길을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임꺽정봉 언저리를 돌아서 구름재와 사리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로 하산해야 했다. 그런데 암벽 아래를 휘돌아서 하늘데크길 출발점으로 이어진 이 산길의 풍광이 으뜸이었다. 야생 금낭화가 만발해 있었고 깍아지른 암벽 사이사이에 피어난 진달래꽃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능선길 중간에서 동광정사로 가는 이정표를 만나서 감악산둘레길 순환코스로 접어들었다. 둘레길 또한 산벚꽃 천지여서 산행 후반부의 피곤함을 느낄 겨를일랑 없었다.
아침에 출발했던 동광정사 아래의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찾아온 충만감은 각별한 것이었다. 황방리의 조소앙기념관으로 이동하여 주변을 산책하면서 오늘의 산행을 되새겨 보는 시간이 행복했다. 매사에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던 안과수술 이후로 정상을 밟은 첫 산행이기에 더욱 뜻깊은 행차였다. 수술 후 18일이 지난 어젯밤에서야 비로소 자유로운 자세로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체액이 모두 차올라서 유리체 내부에 주입된 공기가 모두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부활절을 하루 앞 둔 오늘은 봄숲이 새생명의 부활을 보여주듯 우리 몸의 기본 단위인 세포의 부활이야말로 치유의 근본임을 깨달은 소중한 시간이었다. 모든 게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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