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트레킹

북한산 봄꽃 산행 - 2023년 3월 31일(금)

빌레이 2023. 3. 31. 18:56

어제는 안과수술을 받은 이후 처음으로 진료를 받는 날이었다. 대부분의 수술이 그렇듯 의사 선생님이 수술을 잘 하는 것 못지 않게 환자가 퇴원 후에 주의사항을 철저히 지켜서 사후관리를 잘 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내가 열흘 전에 받은 망막수술은 수술 자체보다는 수술 직후부터 엎드리는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어제의 진료 결과는 여러모로 내게 희망을 안겨 주었다. 의사 선생님은 수술 후의 회복상태가 좋아서 완전히 드러눕는 자세만 피하면 될 거라고 하셨다. 박리된 망막이 안구내벽에 완전히 붙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2~3주 정도는 소요될 예정이므로 이제부터는 조심스레 산책은 나갈 수 있을 듯했다.

 

열흘 넘게 실내에서 불편한 자세로만 생활하다 보니 병원 가는 길에 차창 밖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풍경이 수술 전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사방에 벚꽃과 목련꽃이 만개해 있었다. 4월 초순에나 피어야 할 목련과 벚꽃의 개화 시기가 예년보다 상당히 빠르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어제 병원에 들어설 때의 긴장감은 어느새 사라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봄꽃 마중을 나가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오늘은  아내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집에서 가까운 북한산의 진달래 능선을 염두에 두고 대문을 나섰다. 수술한 눈의 촛점이 흔들려서 아직은 안대를 하고 한쪽 눈에 의지하여 걷다보니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래도 서서히 적응이 되는 듯하여 느리게나마 꾸준히 걸을 수 있었다. 따스한 봄볕과 화사한 봄꽃들이 더이상 좋을 수가 없었다.

 

경전철 우이신설선 4·19민주묘지역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백화사를 거쳐 진달래 능선에 올랐다. 기대했던 대로 등로 주변에 진달래가 만개해 있었다. 대동문까지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꽃길이었다. 갑자기 올라간 기온 탓에 많은 봄꽃들이 제 순서를 모르고 피어 있었다. 발 아래에선 앙증맞은 제비꽃들이 가능하면 고개를 숙이면서 걸어야 하는 나를 위로해 주었다. 대동문에서 점심을 먹고 보국문으로 가서 정릉계곡 방향으로 하산길을 잡았다. 진달래꽃과 생강나무꽃 등속이 노랑제비꽃 군락과 어우러진 산길 주변은 그야말로 봄봄봄이었다. 정릉탐방안내소 부근의 계곡엔 개나리꽃이 한창이었고, 정릉천변의 벚꽃은 솜사탕처럼 탐스러웠다. 아파트 화단에선 벌써 철쭉꽃이 꽃봉오리를 내밀었고 벚꽃 가로수는 하얀 구름띠를 이루고 있었다. 두서없이 일제히 피어난 봄꽃들을 원없이 볼 수 있었던 오늘 하루가 마냥 감사하고 행복했다. 앞으로 펼쳐질 찬란한 봄풍경을 온전한 시력으로 맞이할 상상을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설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