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강촌 유선대 암장 - 2022년 3월 9일(수)

빌레이 2022. 3. 10. 10:54

20대 대통령 선거일이다. 지난 주 금요일에 사전투표를 마쳤으니 오늘은 홀가분하게 쉴 수 있는 온전한 공휴일이다. 일교차가 크기는 해도 햇살 좋은 날씨에 오후엔 영상 15도까지 오를 거라는 예보를 보고 올해 처음으로 강촌의 유선대 암장에 가기로 한다. 강촌 유원지 일대는 춘천시 남산면에 속한다. 이름부터 '봄내'를 의미하는 춘천은 봄을 기다리게 되는 이맘 때면 자주 찾고 싶은 곳이다. '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추억의 영상도 대학시절에 개나리꽃이 활짝 피어난 공지천변을 지금의 아내와 함께 거닐던 장면이다. 유난히 추웠던 지난 겨울의 그림자가 짙은 까닭인지 작년보다는 봄꽃이 더디 피는 듯하지만 오늘은 왠지 봄꽃을 볼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안고 아침 7시 반에 서울을 출발하여 유선대 암장으로 향했다.

 

우리팀 외에 하루종일 아무도 없었던 암장에서 조용히 우리들만의 등반을 즐길 수 있었다. 양지바른 암벽에 아낌없이 쏟아지는 봄볕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오전엔 좌벽의 7개 루트에서 꾸준히 쉬지 않고 등반했다. 이미 등반해본 적이 있는 루트들이었지만 오랜만에 다시 붙어보니 새롭고 즐거웠다. 점심 후에는 우벽과 중앙벽에서 놀았다. 아직 새로운 루트에 도전하기엔 이른 시기라는 판단 하에 이미 등반해 본 적이 있는 루트들만 복습하듯 올랐다. 쌀쌀한 기운이 감돌던 아침 나절엔 아주 작았던 생강나무의 꽃망울이 늦은 오후 시간엔 금방이라도 꽃망울을 터트릴 것처럼 탐스러워졌다. 산벚꽃이 만발할 때에 다시 찾아올 것을 기약하면서 유선대 암장을 돌아서는 발걸음 속에 오늘 등반의 만족감과 다음 등반에 대한 기대감이 공존했다.         

 

▲ 춘천의 아침 최저 기온이 영하 1도였지만 햇살 좋고 바람이 거의 없어서 등반하기엔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 좌벽에서 '벚꽃 피는 날' 루트를 등반 중이다. 오랜만에 오른 루트라서 그런지 낯설게 느껴졌다.
▲ 정겨운 산새 소리만 들리는 아주 조용한 암장에서 구호 소리를 외치는 게 미안할 정도여서 수신호로 '등반 완료'를 알렸다.
▲ 바로 옆의 '참나무' 루트는 톱로핑 방식으로 올랐다.
▲ 두 번째로 오른 '참나무' 루트가 '벚꽃 피는 날'보다 오히려 더 쉽게 느껴졌다.
▲ 크랙을 따라 이어지는 '시월이 가기 전에' 루트를 오르고 있다.
▲ '시월이 가기 전에'는 좌벽에서 가장 까다로운 루트지만 오늘은 군더더기 없이 만족스럽게 완등했다.
▲ '시월이 가기 전에'의 크럭스는 두 곳이다. 두 번째 크럭스 직전에서 숨을 고르고 있는 중이다.
▲ '오르락' 루트 출발점이다. "오름짓의 즐거움"이란 의미의 루트 명칭이 맘에 들었다.
▲ '오르락' 루트는 '시월이 가기 전에' 좌측에서 나란히 갈라진 크랙을 따라 이어진 등반선이 자연스럽다.
▲ '오르락' 루트도 '시월이 가기 전에'만큼 오르는 동작들이 재미 있었다.
▲ '작은 언덕' 루트는 톱로핑 방식으로 올랐다.
▲ '작은 언덕' 루트는 상단부의 오버행 턱을 넘어서는 구간이 크럭스다.
▲ 좌벽에서 맨 좌측의 페이스에 있는 '수류화개' 루트를 오르고 있다.
▲ 물이 흐르고 꽃이 핀다는 뜻의 '수류화개' 루트는 다양한 동작을 취하면서 홀드를 찾아 나가는 재미가 좋았다.
▲ '수류화개'는 다른 루트에서 맛보기 힘든 초반부의 페이스 구간이 특징이다.
▲ 오전 등반의 마지막 루트로 좌벽 맨 우측의 '바다리' 루트를 등반 중이다. 눈에 보이는 좌벽의 7개 루트를 모두 오르고 점심 시간을 가졌다. 개념도 상에는 '상그리라 가는 길'이 맨 좌측에 숨어 있다고 하는데, 다음엔 꼭 찾아서 올라봐야겠다는 생각이다.  
▲ 오후엔 우벽의 '그리움' 루트부터 올랐다. 두 번째 오버행 턱을 넘어서기 직전이다.
▲ '그리움' 루트 첫 피치는 등반거리 30미터에 세 곳의 크럭스가 버티고 있다. 두 번째 크럭스를 넘어서고 있다.
▲ '그리움' 루트의 마지막 크럭스 구간을 통과 중이다. 예전엔 이 곳에 고정 슬링이 걸려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졌다. 우측 칸테에 있는 발홀드를 잘 써서 돌파하는 재미가 있었다.
▲ 커피타임 후에 마무리 세션으로 베이스캠프 바로 앞의 중앙벽에서 등반했다. '101동' 루트를 오르고 있다.
▲ 오를 때마다 밸런스 잡기에 애를 먹었던 '102동' 루트를 오르고 있다.
▲ 체력이 소진된 까닭인지 단번에 완등하지 못하고 톱로핑으로 동작을 찾은 것에 만족해야 했다.
▲ 마지막으로 '시동' 루트를 톱로핑으로 올랐다. 작년에 프로젝트 삼아 올랐을 때, 톱앵커 직전의 크럭스에서 언더 홀드를 잡고 오른발 아웃사이드로 일어서는 동작이 생각났다.
▲ 암장 주변의 생강나무는 오후 들어서 금방이라도 노오란 꽃망울을 터트릴 기세였다.
▲ 강선사로 내려오는 길에 산벚꽃 만발할 따스한 봄날에 유선대 암장에 다시 올 것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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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촌 유선대 암장 개념도

 

 

좌벽

샹그리라 가는길 : 샹그리라(=숨겨진 이상향)를 찾아가는 어느 등반가의 모습.

수류화개 : 물이 흐르고 꽃이 핀다 = 삼라만상 본연의 모습.

작은 언덕 : 고빗사위 구간에 작은 턱을 넘어서야 한다.

오르락 : 오름짓의 즐거움.

시월이 가기전에 : 을미년(2015) 10월의 마지막 날에 마무리하다.

참나무 : 코스가 끝나는 곳에 참나무가 있다.

벚꽃 피는 날 : 벚꽃이 활짝 핀날 이곳에 올라 아래 세상의 정취를 느끼다.

바다리 : 맹렬하게 달려드는 바다리벌과 정열적인 등반 초심자의 모습이 닮았다.

 

작은 벽

초심 : 암벽등반 입문 시절의 겸손함을 잊지말자.

101 : 백의 첫번째 코스.

시동 : 개척작업에 시동을 걸다(개척시작).

102 : 백의 두번째 코스.

 

큰벽

201 : 101동을 오르고 좀 아쉽다면 올라보라. 작은벽 2층에 있는 첫번째.

202 : 102동이 짧아 연속하여 오르는 재미를 더했다. 작은벽 2층에 있는 두번째.

코난발가락 : 엄지발가락에 힘을 꽉 줘야 산다(만화영화 “코난”에 나오는 장면).

EMPTY : 천공작업중 오일이 바닥나 내려왔다 다시 올라가야만 했다.

그리움 : 지난날 등반하던 추억들과 사람들의 모습이 그리움으로 피어 올랐다.

프리텐션(Pre-tention) : 미리 긴장을 가하다.

HANBIT : 크고 넓은 마음으로 하나되어 순수하고 참된 산악인을 상징한다.

하늘문 : 하늘에 닿을 듯 정상으로 향하다.

 

우벽

통천문 : 하늘과 통하는 문(오를수록 하늘이 넓게 펼쳐진다).

잔트가르 : 몽골어로 “최강의 사내”를 의미한다.

챙이올 : 내가 그랬듯이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처음 시작할 당시를 잊지 말자).

선녀문 : 달밤에 보면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 올 듯 신비스럽다.

바람개비 : 시원한 바람이 불면 하염없이 돌아가는 바람개비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