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거인암장 - 2022년 2월 12일(토)

빌레이 2022. 2. 13. 09:46

올해 들어 첫 자연암벽에 붙기로 한 날이다. 예년보다 조금 이르기는 하지만 약간은 설레이는 마음으로 익숙한 거인암장에서 차분하게 초봄 시즌 등반의 기지개를 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3암장 앞의 베이스캠프에서 등반 준비를 하던 중 허리를 삐끗하고 말았다. 허리 근육에 찌릿한 전기가 흐르는 것 같은 극심한 통증이 시작되어 한동안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암벽화 속에 신을 발가락양말로 갈아 신기 위해 무심코 허리를 과도하게 굽혔던 것이 화근이었다. 최근엔 허리상태가 호전됐다는 생각으로 방심했던 모양이다. 미세먼지는 심하지만 낮기온이 섭씨 10도까지 오른다는 일기예보를 믿고 청바지 하나만 걸치고 온 하체에 쌀쌀함을 느꼈던 것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허리통증이 재발한 직후 머리 속이 복잡해졌다. 처음엔 세상에 내 뜻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고개를 들면서 조심성 없는 자신에게 화가 치밀었다. 명절 직후의 과로로 장염에 걸린 후 나름대로는 절제 있게 회복하면서 몸 관리에 신경써 왔다고 여겼다. 실내암장에서의 운동과 체중조절도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 아웃도어 클라이밍을 즐기기 위한 나름대로의 준비도 성실히 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허리 부상을 당하고 나니 레벨업을 꿈꾸면서 노력해 왔던 시간이 한 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듯한 허망함이 밀려왔다. 섣불리 비할 바는 아니지만 요즘 한창 진행 중인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서 환상적인 레이스를 펼치고도 편파판정으로 인해 무력감을 느꼈을 쇼트트랙 황대헌 선수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듯했다. 

 

얼마 동안 천천히 움직이면서 허리 상태를 체크해 보았다. 척추관협착증 진단을 처음 받을 때 당했던 당시의 부상보다는 경미한 수준이었다. 허리를 앞으로 굽히는 각도가 커질수록 통증이 심해지기 때문에 구부리는 동작을 조심하면 그런대로 괜찮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악우가 걸어준 줄에 의지하여 쉬운 루트에서 톱로핑 방식으로 서너 차례 오르며 몸을 점검해 보았으나 당장은 여의치가 않았다. 아무래도 무리하면 안 될 듯하여 점심 직후에 일찍 접고 집으로 귀환하기로 결정했다. 재발한 허리 부상을 침착하게 잘 다스리고 유리몸처럼 약해진 신체를 단련하여 다시금 클라이밍을 즐길 수 있도록 단단한 몸을 만드는 지혜가 필요한 순간이다.    

 

▲ 거인암장의 '자유' 루트를 자유롭지 않게 오르고 있다. 설레이는 맘으로 올해 첫 아웃도어 클라이밍에 나섰으나, 허리부상 재발이라는 악재를 만났다. 화가 치밀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액땜이라 여기고 지혜롭게 대처해 나가야 한다.
▲ 2암장의 '자성' 루트를 톱로핑으로 오르고 있다. 천천히 오르면서 몸을 점검하고 자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 '자성(5.10c)' 루트 정도는 이제 몸풀이로 즐겁게 오를 수 있어야 하는데, 허리가 온전치 않으니 여러모로 조심스러웠다.
▲ 미세먼지는 가득했으나, 등반하기 좋은 온화한 날씨였다. 아직 본격적인 등반 시즌은 멀었으니 조바심 갖지 말고 차분히 허리부상부터 잘 다스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