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국내등반여행

[남도 등반여행 1 : 용서폭암장] - 2022년 2월 18일(금)

빌레이 2022. 2. 21. 09:46

클라이밍과 휴식을 겸할 수 있는 여행을 다녀온다면 무미건조한 삶에 활력이 생길 것이다. 해외등반을 떠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직은 주변 여건이 만만치 않다. 올해엔 국내에서라도 가고 싶은 암벽을 찾아 훌쩍 떠나는 등반여행을 가능하면 자주 추진해 볼 생각이다. 이렇다 할 여행이나 출장이 없었던 겨울방학이 끝나가는 것에 대한 보상심리가 발동했다. 새로운 보직을 맡게 될 새학기가 예전보다 바빠질 건 뻔하기 때문에 이 참에 마음 속에 품고 있던 따뜻한 남도로의 등반여행을 행동에 옮기기로 했다. 지리산 노고단과 섬진강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한 용서폭암장과 순천만에 지어진 아시아 최대 규모의 실내스포츠클라이밍센터인 몬타렉스에서 클라이밍을 즐겨보자는 것이 이번 2박 3일 등반여행의 주된 목적이다. 자투리 시간엔 구례와 순천의 여행지를 둘러보기로 했다.   

   

금요일 새벽 5시에 서울을 출발해서 출근길 교통정체를 피할 수 있었다. 호남고속도로에서 이어진 순천완주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구례화엄사 나들목으로 나오니 아침 9시를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다음 나들목인 황전 나들목에서 지척인 용서폭암장으로 곧장 가기엔 이른 시간이라는 판단 하에 구례 사성암을 먼저 둘러보면서 따뜻해지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즉흥적으로 계획을 변경한 것이다. 아무리 포근한 남도라 해도 영하 8도의 추위에 아침부터 바위를 만지기는 싫었던 것이다. 구례에 첫 발을 들여 놓은 신고식 장소로 오산의 사성암을 선택한 건 더없이 좋은 결정이었다. 오산 정상에서 눈 앞으로 펼쳐진 섬진강 물줄기와 구례읍내, 지리산의 장대한 산줄기는 내가 서울이라는 대도시를 떠나 자연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지역으로 단 몇 시간만에 순간 이동했다는 사실을 각인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거칠 것 없이 시원스런 풍광과 신선한 공기는 이른 아침 먼 길을 달려온 나그네의 가슴을 뻥 뚤어주기에 부족함 없는 선물이었다.

 

용서폭포는 행정구역 상 전남 순천시 황전면에 속한다. 하지만 폭포 아랫동네인 용서마을에서 구례읍내가 자동차로 10분 거리일 정도로 실제 생활권역은 구례군 지역이라 할 수 있다. 사성암에서 내려와 용서마을 뒷산 중턱에 자리한 암장에 10시 반 즈음에 도착했다. 절벽 전체로 따사로운 햇살이 서서히 퍼지고 있는 시간이었다. 기온은 낮은데도 등반하는 데엔 별 지장이 없었다. 클라이머들의 천국 같다던 어느 블로거의 표현은 과장이 아니었다. 용서폭암장은 모든 것이 내 마음에 쏙 들었다. 하루종일 우리팀 외에는 아무도 없었던 암장에서 오후 5시 무렵까지 그야말로 한가롭고 즐거운 우리만의 등반을 즐길 수 있었다.

 

처음엔 지난 주에 당한 허리 부상 탓에 쉬운 루트에서만 조심스레 매달렸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몸이 풀려서 등반에 집중할 수 있었다. 바윗길 하나 하나가 특색있고 재미난 동작을 요해서 지루할 새가 없었다. 집에서 가깝다면 매일 출근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시간에 철수해야 하는 것이 못내 아쉬울 정도였다. 지리산 화엄사 계곡 옆의 숙소에서 저녁 식후 산책으로 다녀온 화엄사 경내의 국보 문화재인 석등과 사사자삼층석탑은 중학생 시절 수학여행 때 친구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남겼던 30여 년 전의 아련한 추억을 되살려 주었다.       

 

▲ 구례 사성암은 오산 정상부의 절벽에 자리하고 있다.
▲ 사성암 바로 아래까지 자동차로 오를 수 있어서 접근이 용이하다.
▲ 사성암에서는 섬진강과 지리산 주변의 산줄기가 잘 보인다.
▲ 구례 여행의 첫 관문으로는 사성암이 으뜸이다. 사성암 바로 위의 오산 정상부에서는 구례읍내와 섬진강, 지리산 노고단이 한눈에 들어온다.
▲ 용서마을에서 5분 거리에 자리한 용서폭포는 수량은 적지만 높이와 주변의 절벽미는 대단하다.
▲ 폭포와 연못이 얼어 있었지만 햇살을 받은 후부터는 추위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안온한 분위기였다.
▲ 허리 상태를 믿을 수 없었지만 조심하면서 용서폭암장에서의 첫 등반에 나서보기로 했다.
▲ 용바위 하단의 맨 좌측 루트인 '강아지(5.9, 22m)'부터 올랐다.
▲ '강아지'는 오버행 구간인 첫 볼트를 넘어서니 무난하게 완등할 수 있었다.
▲ 용서폭에서의 첫 등반이어서 긴장감이 높았으나 완등 후의 만족감이 있었다.
▲ 여유를 가지고 톱로핑으로 다시 올라본 '강아지'는 사선으로 진행하는 코스로 몸풀기에 적당했다.
▲ 용바위 전체에 햇살이 비춘 후로 베이스캠프는 더없이 좋은 햇볕바라기 아지트가 되었다.
▲ 크랙을 따라 자연스럽게 진행하는 등반선이 마음에 들었던 '줄리엣(5.10a, 22m)' 루트를 오르고 있다.
▲ '줄리엣'은 크랙을 따라 가며 스태밍 동작을 요하는 구간이 많았다.
▲ '줄리엣'의 크럭스 구간 직전에서 루트를 살펴보고 있다.
▲ '줄리엣'의 크럭스 부분을 온사이트로 돌파하지는 못하고 톱로핑으로 동작을 풀었다는 데에 만족해야 했다.
▲ 등반하는 동안에 폭포의 얼음이 녹아서 떨어지는 소리에 움찔거리며 놀라곤 했다.
▲ 시간이 지날수록 폭포의 고드름은 떨어지고 물 떨어지는 소리로 변했다.
▲ '줄리엣' 바로 우측의 '로미오(5.10b, 22m)' 루트를 오르고 있다.
▲ '로미오'는 홀드와 동작을 찾는 재미가 남다른 루트였다. 다음에 또 온다해도 꼭 다시 등반하고 싶은 루트이다.
▲ '로미오'는 아래에서 보면 홀드가 없을 듯한데 올라가면서 작은 홀드를 찾는 재미가 있었다.
▲ 적극적인 몸놀림을 하지 못해서 '로미오' 루트의 온사이트 완등은 놓쳤지만 한 차례의 행도깅 후에 톱앵커에 도착한 순간의 만족감이 있었다.
▲ 톱로핑으로 다시 올라보아도 즐거웠던 '로미오' 루트다.
▲ '명수는 다 돼(5.10a)' 루트를 오르고 있다.
▲ '명수는 다 돼' 루트는 초반과 중반부까지 홀드와 동작을 찾는 재미가 있었다.
▲ '명수는 다 돼' 루트의 크럭스 구간을 돌파하고 있다.
▲ 등반을 마칠 시간엔 폭포 상단부의 얼음은 거의 다 사라졌다.
▲ 남도의 산답게 겨울에도 산죽이 푸르다.
▲ 악동벽 앞의 산길은 도보산행 코스로도 이용되는 모양이다.
▲ 저녁식사 후에는 화엄사에 다녀왔다.
▲ 국보인 이 거대한 석등에서 중학생 시절의 수학여행 때 남긴 기념사진이 생각났다. 그 이후로 화엄사는 처음이다.
▲ 화엄사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국보 사사자삼층석탑도 30여 년 전의 아련한 추억을 소환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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