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들어 가장 힘겨운 산행이었다. 3일 전에 많은 눈이 내린 이후로 아무도 걸어간 흔적이 없는 등산로를 더듬어 길을 찾아가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물기 잔뜩 머금은 습설은 아이젠을 찬 발바닥에 떡처럼 들러붙어서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이 고역이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축구하듯 발을 앞으로 차고 눈을 털어 내면서 걷다보니 체력 소모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산행을 계획했을 때만 해도 15km 남짓의 지장산 등산로가 아무리 험해도 7시간이면 넉넉하겠지 싶었다. 그런데 아침 9시 전에 첫 발걸음을 뗀 오늘의 산행은 주위가 어두워질 무렵인 6시 반 경에야 끝낼 수 있었다. 자그마치 9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 것이다. 겨울산은 많은 변수가 생길 수 있음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던 교훈적인 산행이었다.
중리저수지를 출발하여 사기막 고개를 통해 종자산에서 지장산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에 올라섰다. 향로봉, 삼형제봉, 화인봉, 지장봉 등을 잇는 마루금은 눈길이어서 그런지 예상보다 험난했다. 나름대로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봉우리 하나 하나를 오르내리는 것이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가장 험했던 삼형제 바위를 넘어서기까지의 등로는 신설이 쌓인 후로 들짐승이나 새들의 발자국 외에는 사람의 흔적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습설이 등산화 바닥에 달라 붙어서 불편해도 아이젠을 차고 매우 신중하게 길을 탐색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는 형국이었다. 그나마 절터를 통해 올라온 다른 산객들의 발자국으로 등로의 눈이 다져진 후로는 길 찾을 필요가 없어지면서 아이젠을 벗고 걸을 수 있으니 한결 편했다. 그다지 추운 날은 아니었지만 한적한 오지의 지장산에서 동계산행에서만 맛볼 수 있는 모험을 제대로 체험했다는 뿌듯함과 만족감이 가슴 한 구석에 남았다. 두 다리에 남은 오랜만의 뻐근함 또한 기분 나쁘지 않은 통증이었다. 여러모로 나의 뇌리에 오래 저장될 뜻깊은 지장산 겨울산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