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트레킹

지장산 습설 산행 - 2021년 2월 6일(토)

빌레이 2021. 2. 7. 04:00

근래 들어 가장 힘겨운 산행이었다. 3일 전에 많은 눈이 내린 이후로 아무도 걸어간 흔적이 없는 등산로를 더듬어 길을 찾아가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물기 잔뜩 머금은 습설은 아이젠을 찬 발바닥에 떡처럼 들러붙어서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이 고역이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축구하듯 발을 앞으로 차고 눈을 털어 내면서 걷다보니 체력 소모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산행을 계획했을 때만 해도 15km 남짓의 지장산 등산로가 아무리 험해도 7시간이면 넉넉하겠지 싶었다. 그런데 아침 9시 전에 첫 발걸음을 뗀 오늘의 산행은 주위가 어두워질 무렵인 6시 반 경에야 끝낼 수 있었다. 자그마치 9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 것이다. 겨울산은 많은 변수가 생길 수 있음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던 교훈적인 산행이었다.

 

중리저수지를 출발하여 사기막 고개를 통해 종자산에서 지장산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에 올라섰다. 향로봉, 삼형제봉, 화인봉, 지장봉 등을 잇는 마루금은 눈길이어서 그런지 예상보다 험난했다. 나름대로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봉우리 하나 하나를 오르내리는 것이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가장 험했던 삼형제 바위를 넘어서기까지의 등로는 신설이 쌓인 후로 들짐승이나 새들의 발자국 외에는 사람의 흔적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습설이 등산화 바닥에 달라 붙어서 불편해도 아이젠을 차고 매우 신중하게 길을 탐색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는 형국이었다. 그나마 절터를 통해 올라온 다른 산객들의 발자국으로 등로의 눈이 다져진 후로는 길 찾을 필요가 없어지면서 아이젠을 벗고 걸을 수 있으니 한결 편했다. 그다지 추운 날은 아니었지만 한적한 오지의 지장산에서 동계산행에서만 맛볼 수 있는 모험을 제대로 체험했다는 뿌듯함과 만족감이 가슴 한 구석에 남았다. 두 다리에 남은 오랜만의 뻐근함 또한 기분 나쁘지 않은 통증이었다. 여러모로 나의 뇌리에 오래 저장될 뜻깊은 지장산 겨울산행이었다.       

 

▲ 삼형제 바위 주변의 암벽을 타고 올라가는 나무 뿌리가 예술작품처럼 보였다. 왼쪽의 바위는 그 위용이 마터호른을 닮은 듯했다.
▲ 중리저수지 위의 주차장에 주차하고 사기막고개로 향하는 등로 초입을 찾는 데 애를 좀 먹었다.
▲ 주차장에서 나와 저수지 위 마을 앞의 다리를 건너서 좌측으로 오면 보이는 이 철문을 통과해서 가야 한다. 멧돼지로부터 농작물을 보호하고 아프리카 돼지열병을 막기 위해 설치한 철망이니 통과 후에 다시 문을 닫아 놓아야 한다. 관청에서 설치해준 이 시설을 사유지 보호 명목으로 전용하여 출입금지 푯말을 덕지덕지 붙여놓는 건 좀 아니지 싶다. 
▲ 철문을 통과한 후에야 이러한 이정표가 보인다. 여기에 표시된 정상은 종자산이니 이리로 가면 안 된다. 임도를 따라서 쭉 올라가면 된다.
▲ 사기막고개로 향하는 임도는 잣나무와 낙엽송 숲을 지나게 된다.
▲ 저 위에 사기막고개가 보인다.
▲ 사기막고개는 종자산과 지장산을 가르는 경계라 할 수 있다.
▲ 지장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또다시 철문을 통과해야 한다. 이 철문도 통과 후 닫아두면 된다.
▲ 사기막고개에서 향로봉 올라가는 길부터는 눈 내린 이후로 사람의 흔적이 없었다. 
▲ 향로봉 아래의 바위에 있는 동굴도 보이고...
▲ 오늘 날씨는 잔뜩 흐리다. 종자산으로의 조망이 트이는 곳일텐데 주위가 구름 속에 잠겼다.
▲ 드디어 오늘의 첫번째 봉우리인 향로봉 정상이다.
▲ 올 겨울 들어서 처음 착용한 아이젠에 습설이 들러 붙어서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 눈이 많이 쌓여서 길을 찾기 힘든 곳에서는 산악회의 리본이 좋은 이정표가 돼 주었다.
▲ 다음 봉우리인 삼형제 바위의 우람한 자태가 눈앞에 펼쳐진다.
▲ 여기서부터 삼형제 바위를 올라가는 등로는 갑자기 된비알로 바뀐다. 
▲ 급경사의 오르막에서도 멋진 암벽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 암벽등반에 가까운 급경사의 등로엔 고정 밧줄이 있어서 오를 수 있었다. 
▲ 힘들어도 암벽을 구경하는 재미에 천천히 오르는 맛이 좋았다.
▲ 삼형제바위 조망터에서 내려다본 그림이다. 산비탈에 쌓인 눈이 동심원을 이룬 듯했다.
▲ 삼형제바위 조망터에서 바라본 삼형제봉의 절벽미 또한 예술적이었다.
▲ 삼형제바위의 암벽은 클라이머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어프로치 짧은 암장만 찾아다닐 게 아니라는 생각이 꿈틀댄다.
▲ 시간만 허락된다면 삼형제바위 주변을 더욱 더 세심하게 관찰하고 싶을만큼 절경이었다.
▲ 고정 밧줄이 없었다면 올리오기 어려웠을만큼 급경사의 등로였다.
▲ 삼형제봉의 암벽을 가까이에서 보니 더욱 좋은 암벽루트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 습설이 또르르 굴러내려서 자연적으로 뭉쳐진 눈덩어리가 장미꽃처럼 보였다.
▲ 삼형제봉을 지나면 포천시와 연천군에서 세운 이정표가 동시에 보이기 시작한다.
▲ 삼형제봉을 지나 헬기장에서 점심을 먹고, 조금 더 오니 처음으로 반가운 사람 발자국이 보였다.
▲ 사기막고개로 오르는 초입을 막아둔 탓에 대부분의 산객들은 절터를 통해서 지장산에 오르는 듯하다. 여기서부터는 아이젠을 벗을 수 있었다.
▲ 진행방향의 우측 아래로 하산길인 지장계곡의 임도가 아스라히 보인다.  
▲ 이곳을 내려오는 길이 무척 미끄러웠다.
▲ 화인봉 정상에 있는 등산 안내도. 오늘 내가 걸었던 경로를 정확히 표시해 주고 있다. 입구(주차장)를 기점으로 하여 시계방향으로 진행, 노란선으로 올라서 분홍선으로 하산.
▲ 화인봉도 멀리서 보면 우뚝 서 있는 멋진 봉우리다. 지장산 주릉이 포천시와 연천군의 경계선인 듯하다.
▲ 화인봉에서는 지장산 정상이 코앞에 보인다.
▲ 연천군과 포천시에서 설치한 이정표가 있는데, 거리 표시에 약간 차이가 난다. 뭘 믿어야 할지...
▲ 화인봉에서 내려오는 길에 설치된 디귿자형 쐐기가 오늘 같이 등로가 미끄러운 날에는 매우 유용했다.
▲ 지장봉 아래의 절벽은 마이산에서 본 것과 유사한 형태의 암질이다.
▲ 지장봉 밑에는 돌집의 흔적이 남아있다.
▲ 돌집 안이 생각보다 아늑했다. 이런 곳에 운치 있는 무인 대피소가 하나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 눈이 많이 쌓여 있는 이곳을 지나면 마지막 된비알이 기다리고 있다. 
▲ 드디어 지장산 정상석이 눈앞에 보인다. 지난 번 종자산에 이어 지장산 정상에 오름으로써 이제 포천, 연천, 철원의 주변 산세가 확실해졌다.
▲ 연천군에서는 지장산 정상을 보개산 지장봉이라고 부른다. 연천군의 최고봉인 모양이다.
▲ 연천군 방향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이다.
▲ 연천군 방향에서 바라본 고대산과 지장산의 종주 안내도가 정상에 있다. 
▲ 잘루맥이고개로 하산하려는데, 같은 표지판에 다른 표기가 있다. 잘루맥이, 잘루백이 뭐가 맞는지 모르겠다.ㅎ
▲ 잘루맥이고개에서 사진 우측의 관인봉 방향으로 다시 맞은편 능선에 오를 수도 있다. 해가 길다면 도전해보고 싶은 코스다.
▲ 잘루맥이고개에서 출발점인 중리저수지까지는 4.7km의 임도를 따라서 내려가야 한다.
▲ 여름철이면 피서지로 유명한 지장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길에도 삼형제봉의 자태가 눈길을 끌었다. 맨 앞의 뾰족한 바위는 눈 쌓인 모습을 가까이에서 봤을 때 마터호른을 닮아 있었다.
▲ 지장산계곡 입구를 벗어나는 것으로 오늘의 기나긴 산행을 종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