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아침이다. 위대한 한글 덕택에 우리나라가 현재의 정보통신과 컴퓨터 문명 사회의 강국이 되었다는 것에 항상 자부심을 느낀다. 문맹율 제로의 현대 문화 사회를 가능케 해주신 세종대왕을 비롯한 한글 창제의 주역들께 감사한 마음을 새기면서 인수봉으로 향한다. 하루재를 넘어서 인수봉 동면으로 오르는 등로엔 벌써 단풍이 선명하다. 서울의 클라이머들에게 인수봉은 우리 한국인들에게 한글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라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한글이 우리들에게 마음 속의 생각과 지혜를 글로 풀어내어 서로 소통하게 해주는 훌륭한 표현의 도구이듯, 인수봉은 클라이머들의 열정을 온전히 표출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기 위해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더없이 고마운 존재인 것이다.
캐리(CARI, Climbing of All Route in Insu-peak)의 오늘 순서는 '궁형'과 '인덕'길이다. 바빠진 업무 탓에 야근까지 해야하는 빡빡한 주중 일정을 감당해내느라 몸상태에 자신이 없었다. 더욱이 완력을 요하면서도 까다롭기로 소문난 '궁형'길과 '인덕'길을 하루에 끝낸다는 일정을 감안하니 부담감은 더해졌다. 2주만에 성원이 된 5명의 악우들이 오아시스까지 재빨리 오른 뒤에 곧바로 '궁형'길에 붙었다. 2피치까지 60미터 거리를 단번에 오른 뒤에 3피치와 4피치의 부담스런 크럭스 구간까지 생각보다는 잘 통과했다. 우려했던 나의 몸상태도 그리 나쁘지는 않아서 등반이 즐거웠다. 예상보다 이른 시간에 '궁형'길 등반을 마치고, 오아시스로 하강하여 점심을 먹는 순간이 개운했다.
점심 후에는 쉬는 시간 없이 '인덕'길에 붙었다. '궁형'길 좌측으로 나란히 진행하는 '인덕'길은 지난 6월 초에 기범씨와 둘이서 처음 오를 때, 3피치의 크랙 구간에서 낭떨어지로 떨어질 듯한 공포심을 이겨내기 힘들어서 몹시 긴장했던 기억이 있는 곳이다. 오늘은 오후의 그늘진 동면에 제법 세찬 바람까지 더해져서 한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3피치 출발점인 확보점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오히려 힘들고 마음까지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막상 라스트로 오른 '인덕'길 3피치는 지난 번보다 훨씬 가뿐하게 등반했다. 무엇보다 크랙에서의 마찰력이 좋아서 드런지 예전의 공포감은 별로 없었다. 크랙을 끝내고 슬랩으로 건너뛰는 구간도 긴 슬링을 이용해서 사뿐히 통과할 수 있었다.
오늘 함께 줄을 묶은 기범, 동혁, 은경, 대섭, 나, 이렇게 5명의 호흡이 그 어느 때보다 척척 잘 맞았다. 물 흐르듯 자연스런 등반시스템이 적용된 덕택에 까다로운 루트 2개를 안전하고도 즐겁게 하루만에 해치울 수 있었다. 우리말에서 '나쁘다'라는 말은 '나 뿐이다'에서, '좋다'라는 말은 '조화롭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나 자신만을 위하는 이기심을 버리고 서로 조화롭게 하나의 '모꼬지'를 이루었던 오늘 우리들의 등반은 그런 의미에서 아주 '좋았다.' 그야말로 한글날이어서 더욱 뜻깊었던 '좋은' 등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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