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인 어제는 하루종일 지리하게 이슬비가 내렸다. 애당초 기상청의 일기예보 상에 비는 없었다. 하지만 금요일 저녁 시간부터 간헐적으로 뿌리기 시작한 비는 토요일 내내 멈출 듯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스마트폰으로 확인해본 일기예보는 시시각각 달라져서 날씨 중계방송으로 변해버렸다. 오전 10시 경에 만난 5명의 악우들이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안고 도선사주차장까지 올라갔으나 비는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계획했던 인수봉 등반은 포기하고, 우이동 카페에서 담소를 나눈 후에 막국수집에서 점심을 먹고 헤어질 수 밖에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둘레길을 조금 걷다가 집으로 돌아왔으나 찝찝한 기분은 가시지 않았다.
하룻밤 사이에 날씨가 확연히 달라졌다. 오늘 아침은 푸른 하늘이 유난히 반갑고 아름다웠다. 새벽녘 하늘에 비친 여명이 불그스름하여 동해의 일출을 연상케 했다. 모처럼 화창한 가을 날씨에 어제 하지 못했던 등반까지 열심히 해보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인수봉 남벽의 '하늘'길 출발점에 도착했다. 원래는 어제의 인수봉에 이어서 오늘은 선인봉 등반을 계획했었다. 하지만 오늘 같이 시야 좋고 화창한 날은 인수봉이 한결 더 나을 거라는 기범씨의 제안으로 새벽에 등반지를 갑자기 변경하기에 이르렀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남벽의 다른 루트엔 거의 등반자들이 없었으나 '하늘'길에는 이미 남자들 3명으로 구성된 팀이 붙어 있었다. 기다리는 시간에 우리는 바로 옆의 한 피치짜리 스포츠클라이밍 루트인 '꾸러기들의 합창'길에 줄을 걸어놓고 간단히 몸을 풀었다.
예상보다 더딘 진행 속도를 보인 앞팀 때문에 한참을 기다린 후 기범씨가 선등으로 '하늘'길을 출발하고, 그 뒤를 나와 은경이 순서로 올랐다. 크랙 등반의 묘미를 한껏 즐길 수 있는 '하늘'길이라지만 오랜만의 남벽 등반이라 그런지 힘에 부친다는 느낌을 받았다. 1피치는 그런대로 올랐으나, 2피치는 후반부에서 한 차례의 로프 테이크를 받아야만 했다. 암장에서 같이 운동하던 윤선씨가 뒤늦게 합류하여 '하늘'길 1피치와 2피치를 단 번에 오른 후, 중요한 약속이 있다면서 곧장 하강했다. 우리 셋은 '하늘'길 등반을 계속하여 3피치의 테라스에 도착했는데, 여러 루트의 확보점들이 모여 있는 이곳은 시장터를 방불케 했다. 여기서부터 우리팀은 정체된 '하늘'길을 고집하지 않고 '동양'길과 비어 있는 루트를 통해서 재빠르게 정상까지 올랐다.
등반 초반의 정체로 인한 기다림 탓에 확보점에 매달린 상태로 많은 시간을 흘려보내야 했으나, '하늘'길의 특색인 크랙 구간을 온전히 경험했다는 만족감이 있었다. 3피치 이후로 이어지는 '하늘'길을 온전히 연결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남지만 너무 많은 등반자들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오늘 같이 하늘 풍광이 좋은 날 인수봉의 '하늘'길을 등반했다는 추억은 오래도록 간직될 것이다. 해숙누님과 동행하신 분들이 설치해놓은 자일을 이용한 덕택에 서면에서의 하강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하늘'길 출발점으로 귀환하여 '우리들의 만남' 루트에서 톱로핑으로 한 차례씩 연습한 후 오늘의 일정을 모두 마무리지었다. 쾌청한 하늘과 함께 가을날의 쾌적함이 온몸을 감싸고 돌아 마음까지 맑고 밝게 해주었던 아름다운 등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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