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인 어제는 오후에 번개와 천둥이 치는 요란스런 비가 내렸다. 북한산 만경대에서 낙뢰로 인한 사망 사고도 있었다고 한다. 산에 다니는 사람으로서 남의 일 같지 않은 사고를 당한 고인의 명복을 비는 바이다.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있으니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지만 항상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자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악우들을 만나기로 한 아침 8시 무렵에 우이동 경전철 입구를 빠져 나오면 눈앞에 보이던 인수봉이 보이지 않는다. 산 중턱까지 내려앉은 구름 속으로 인수봉 일대가 잠긴 것이다. 안개구름 속에서 어프로치를 끝내고 인수봉 '비원'길 출발점에 도착할 때까지도 주변 시야는 열리지 않았다. 얼굴에 흐르는 땀을 식히기 위해 아들녀석이 챙겨준 휴대용 선풍기를 가동시킨 순간 거짓말처럼 서서히 안개가 걷히고 영봉과 도봉산의 봉우리들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한다. 휴대용 선풍기가 안개구름을 날려버렸다는 농담을 주고 받으며 장비를 착용하는 순간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오늘의 캐리(CARI, Climbing of All Route in Insu-peak) 코스는 '비원'길이다. 기범씨가 선등으로 줄을 걸고, 은경, 정길, 동혁 순서로 오르고 내가 라스트를 맡는다. 지난 일주일간의 설악산 등반에 따른 피로감과 여운을 이기지 못한 탓인지 난이도 높은 슬랩과 페이스에서는 굼뜬 동작을 어쩔 수 없다. 전체 6피치의 '비원'길은 3피치 이후에 '취나드B', '양지', '의대'길과 차례로 겹치게 되는 루트이다. 다른 바윗길과 교차하는 동선이 매끄럽지 못하고, 리볼팅 작업 이후에 '비원'길의 특성이 많이 사라졌다는 기범씨의 평가다. 어쨌든 '비원'길을 5명 모두가 완등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둘 수 있는 등반이었다. 점심 이후엔 '심우'길과 '벗'길에서 등반 연습을 하고 오후 6시가 넘어서야 하산을 시작했다. 물먹은 솜처럼 무거운 몸으로 등반 의욕은 별로 없었지만 인수봉에서 오랜만에 악우들과 함께 열심히 등반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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