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인수봉 '의대'길 - 2020년 9월 19일(토)

빌레이 2020. 9. 21. 04:05

아침 저녁으로 쌀쌀함이 느껴지는 요즘이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서 어느새 완전한 가을이 되었다. 인수봉 동면의 '심우'길을 시작으로 올해 봄부터 차례차례 이어오고 있는 캐리(CARI, Climbing of All Routes in Insu-peak)의 오늘 순서는 '의대'길이다. 별점 네 개로 인기가 높은 바윗길인 이 루트를 정체 없이 등반하기 위하여 평소보다 30분 빠른 7시 반 경에 우이동을 출발한다. 기범씨의 차로 5명의 악우들이 도선사주차장에 도착하여 주차공간을 찾던 중 때마침 바로 앞에서 빠지는 차가 있어서 운 좋게 주차를 할 수 있었다. 올해는 인수봉에 올 때마다 주차운이 제법 좋은 듯하다.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가을날의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어프로치를 끝내고, '취나드B'길 출발점 우측의 '양지'길 루트를 따라서 재빠르게 오아시스에 올라서서 베이스캠프를 차린다. 눈앞으로 운해가 펼쳐지는 가을날 아침의 대기가 신선하다.  

 

조금 일찍 서두른 덕에 우리가 오늘 '의대'길의 첫 손님이다. 오아시스 우측에서 시작하여 귀바위 정상까지 뻗어 올라가는 날등을 따라 이어지는 등반선이 '의대'길이다. 멀리서도 쉽게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도드라져 보이는 '의대'길의 우람한 버트레스(buttress)는 주말이면 거의 빈 시간이 없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개념도 상에는 전체 6피치로 나타나 있는 이 바윗길을 우리는 세 마디로 끊어서 올랐다. 80미터와 60미터 로프 두 동을 달고 선등한 기범씨는 첫 세 피치를 단숨에 올라버렸다. 선등자 확보를 보고 있는데, 60미터 로프가 아슬아슬하게 꽉 차는 거리였다. 내가 쎄컨으로 오르고, 대섭, 은경, 동혁씨 순서로 등반했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4피치와 5피치 사이의 확보점도 건너 뛰어서 한 마디로 끊었다. 오아시스로부터 귀바위 밑의 테라스까지를 단 두 마디로 오른 셈이다. 이 곳에서 우리팀 5명 모두가 모여서 간식을 먹은 후, 마지막 남은 한 피치를 등반하여 귀바위 정상에 닿았다. 오랜만에 와보는 귀바위 정상에서의 시야는 걷힐 것이 없었다. 고양시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세차서 잠시 한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오아시스로 귀환하여 점심을 먹은 후에 캐리의 다음 차례인 '궁형'길을 등반할 계획이었으나, 이미 붙어 있는 등반자들이 많아서 오늘은 포기하기로 한다. 대신 남은 시간 동안 남벽에서 하드프리 등반연습에 매진하기로 결정한다. 기범씨가 80미터 로프로 티롤리안 브릿지처럼 튼튼하게 설치한 줄을 따라 오아시스에서 남동면의 '인수B'길 확보점이 있는 테라스까지 안전하게 트래버스했다. 여기에서 다시 60미터를 하강하여 '크로니'길 출발점으로 내려선 후, '여정'길 앞의 공터에 두 번째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나는 '여정'길 첫 피치만 두 차례 오르내렸다. 아무 생각 없이 붙은 첫 번째 오름은 스스로에게 실망할 정도로 엉망이었으나, 중간에서의 가스통 동작과 인사이드 엣징을 이용한 스테밍 동작을 생각하면서 오른 두 번째 연습은 그런대로 만족스러웠다. 몸으로 하는 등반이지만 머리로 생각하면서 오를 때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짧게나마 체득한 순간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짬뽕'길과 '청맥'길에서도 매달리는 열정을 보여주었다. 하산 후 덕성여대 앞의 중국음식점에서 가진 뒷풀이 시간엔 기범씨의 조촐한 생일파티가 있었다. 맛깔난 중국음식과 어우러진 고량주의 맛이 일품이었다. 정말 쾌적한 가을날을 암벽등반의 성지인 인수봉에서 우정이 넘치는 악우들과 함께 열클하며 알차게 보냈다는 뿌듯함이 밀려온 하루였다.   

 

1. 귀바위 정상으로 향하는 '의대'길 6피치를 등반 중이다.
2. 오아시스에 올라서 돌아보니 청명한 날씨를 예고하듯 기분 좋은 운해가 펼쳐졌다.
3. 붐비는 '취나드B'길 출발점을 피하여 우측의 '양지'길 루트를 통해서 오아시스에 올랐다.
4. 오아시스에 올라서서 도봉산 방향으로 바라본 풍광이다.
5. 오아시스 앞의 억새 뒤로 펼쳐지는 운해가 아름다웠다.
6. '의대'길 3피치를 단숨에 올라선 기범씨를 확보하는 중이다. 로프가 짧을까봐 걱정했으나 다행히 60미터로 충분했다.
7. '의대'길 3피치에서 후등자 확보 중인 기범씨가 아득하게 보인다.
8. 내가 두 번째로 등반하여 3피치 볼트따기 구간을 통과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9. 나는 후등자 확보 중이고, 기범씨는 2피치 크럭스 구간에서 등반 중인 대섭이에게 원포인트 레슨 중이다.
10. 이어지는 4피치와 5피치를 묶어서 단 번에 올랐다.
11. 나와 대섭이가 거의 동시에 4피치를 오르고 있는 모습이다.
12. 귀바위 밑의 테라스 좌측에서 출발하여 정상으로 향하는 6피치를 등반하고 있다.
13. 오랜만에 올라온 귀바위 정상이기에 인증사진을 남기지 않을 수 없다.
14. 귀바위 정상에서 하강하여 오아시스로 귀환한다.
15. 동혁씨가 '짬봉'길에 줄을 걸고 있는 모습이다.
16. '여정'길로 하강하는 팀이 있어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17. 대섭이가 '짬뽕'길을 등반 중이다.
18. 동혁씨는 가족모임 때문에 일찍 하산한다면서 쉬지 않고 연습하는 열정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