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흰나비의 추억> 바윗길에 대한 리볼팅(rebolting) 작업에 참가했다. 기존의 나사형 볼트에 비해서 보다 안전하고 지속가능하면서 환경 친화적인 것으로도 평가 받는 글루인 앵커(glue-in anchor)를 사용하여 전체 루트를 재정비하는 것이 이번 리볼팅 작업의 핵심이다. 하켄이나 나사형 볼트 같은 전통적인 확보물들이 바위 표면에 물리적으로 고정되어 있는 것이라면, 글루인 볼트는 바위와 확보물이 화학적으로 단단히 결합되어 바위의 일부분처럼 반영구적으로 고착되어 있는 형태라 할 수 있다. 유튜브를 통해서 암벽 선진국인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글루인 볼트로 리볼팅 작업이 행해지는 걸 본 적은 있으나 현장에서 직접 글루인 앵커를 시공하는 장면을 지켜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홍대클라이밍센터를 운영하고 계시는 윤길수 선생님이 주축이 되어 설립된 한국안전등반협회(KSCA)는 그동안 많은 암벽 루트의 리볼팅 작업을 진행해 오고 있다. 2016년의 인수봉 82개 루트 대보수 사업에서 현장 작업을 맡았던 KSCA는 윤 선생님이 직접 개척하신 무의도 하나개 암장, 태안 학암포 해벽, 고창 할매바위 등은 물론 개척자 중의 한 사람인 김기섭 씨의 부탁으로 설악산의 <경원대길>과 <별을 따는 소년들> 릿지길 등을 최근에 리볼팅하여 국내의 안전한 등반 문화 정착에 기여하고 있다. 오늘의 <배추흰나비의 추억> 바윗길 보수 작업도 개척자인 김기섭 씨의 부탁과 후원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토요일 아침 8시가 채 되기 전에 도봉산 입구에서 일행들을 만났다. 각자 할당된 무거운 장비들을 둘러메고 만월암 방향으로의 어프로치를 시작했다. 이번 리볼팅 작업에 참가한 클라이머들은 모두 11명이다. 2주 전에 루트 확인 등반까지 다녀와서 치밀한 준비 작업을 수립하신 윤길수 선생님의 지휘 아래 확보점 마킹, 구멍 뚫기, 글루인 작업, 기존 확보물 철거의 순서로 리볼팅 작업은 안전한 가운데 물 흐르듯 유연하게 잘 이루어졌다. 자운봉과 만장봉 사이의 골짜기를 거슬러 올라가서 매 피치마다 고정 자일을 설치한 후, 하강하면서 작업하는 매우 효율적인 방식을 택한 덕택에 작업 시간을 많이 단축시킬 수 있었다. 여기에 각 작업 분담팀과 지원조의 유기적인 협조가 뒤따랐다.
1차 리볼팅 작업이 예상보다 빨리 완료되어 다음 날 하기로 예정된 갈무리 작업까지 진행하느라 윤 선생님과 희규 선배님을 필두로 한 최종 철거팀은 천둥번개 속에 갑자기 쏟아진 비까지 맞아가면서 어둠을 뚫고 하산해야만 하는 수고를 면치 못하셨다. 일찍 하산한 팀에 속한 나는 마음 한켠에 미안함이 남아 있었으나, 뒷풀이를 위한 식당에서 환하게 웃는 얼굴로 다같이 모여 다시 하나가 되었을 때에는 만족스런 기분이 한층 더 커진 까닭인지 자잘한 감정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멀티피치의 자연암벽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도봉산의 최고봉인 자운봉에 이르는 아름다운 바윗길인 <배추흰나비의 추억>에 대한 리볼팅 작업에 참석하여 미력이나마 보탤 수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감사함이 남는다.
▲ <배추흰나비의 추억>길 첫 피치 앞의 공터를 베이스캠프로 삼고, 리볼팅 작업에 나서고 있는 대원들.
▲ 먼저 만장봉과 자운봉 사이의 제법 가파른 골짜기를 거슬러 올라간다.
▲ <배추흰나비의 추억> 마지막 피치 하강 지점을 등반해서 올라가는 것으로부터 작업은 시작된다.
▲ 윤선생님이 선등으로 올라서 고정자일을 설치하고, 나머지 대원들은 후등으로 합류했다.
최종 철거작업을 위해서 이 고정자일을 회수하지 않았어야 했는데,
기영형과 내가 맡은 1차 철거팀은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 내가 마지막으로 등반해서 철거했던 기존의 하강용 슬링이다.
새로운 하강 포인트는 이곳에서 우측으로 2미터 정도 떨어진 바윗턱에 설치되었다.
▲ 오늘 설치할 글루인 볼트이다. 용접부위가 없는 일체형이라서 안전도가 높다고 한다.
▲ 마지막 7피치 등반 후 하강 포인트 부근의 자운봉과 연기봉 사이의 안부에서 대기 중인 대원들.
▲ 철거한 하강용 슬링 대신에 사용될 쌍볼트를 설치하기 위해 규격에 맞게 뚫려진 구멍 속에 글루(glue)를 삽입 중이다.
▲ 정확한 쌍볼트 확보점 설치를 위해 세심하게 작업 중인 영채씨.
▲ 7피치 등반을 마치면 자일이 설치된 구간을 넘어와서 하강 포인트에 닿게 된다.
▲ 듬직하고 안전하게 잘 설치된 하강포인트의 글루인 쌍볼트.
작업 직후부터 글루의 색깔은 다양하게 변하다가 결국엔 바위 색깔과 비슷하게 된다고...
▲ 7피치 확보점이다. 이제는 이곳에서 최종 하강 포인트까지 5미터 정도의 짧은 구간을 안전하게 로프로 내려갈 수 있다.
▲ 7피치 확보점은 기존 포인트의 좌측면에 설치되어 최종 하강 지점까지의 자일 유통이 보다 자유로울 것이다.
▲ 7피치에서 6피치로 내려서는 구간에서 루트를 살피고 있는 기영형의 모습. 철거조 반장님의 포스가 어째...^^
▲ 기존의 7피치 확보점에 설치되었던 확보물을 1차로 제거한 후의 모습이다.
▲ 새로 설치된 글루인 볼트는 굳어지는 시간이 필요해서 곧바로 사용할 수 없다. 라스트인 나는 근처 소나무에 확보하고 하강했다.
▲ 6피치 확보점 좌측엔 위험해 보이는 죽은 나무와 돌덩어리 2개가 있었다.
등반자의 안전을 위해서 최종 철거팀이 깨끗이 제거하셨다고...
▲ 6피치 중간에서 기영형이 기존 볼트를 제거하고 있다.
▲ 기존의 6피치 확보점에 빨간색 고정자일을 설치해 두고 나머지 자일은 하강 후 회수했다.
▲ 글루인 앵커를 사용한 새로운 6피치 확보점은 기존 확보점에서 3미터 정도 떨어진 우측에 설치되었다.
▲ 기존의 6피치 확보점 우측으로 새로운 확보점을 설치하여 자연스럽게 7피치 등반선을 유도하였다.
<요세미티 가는 길> 등반자와 겹치지 않게 하기 위한 포석이기도 하다.
▲ 기존의 6피치 중간 볼트를 제거 중인 기영형의 애쓰는 모습이 보인다.
▲ 6피치 확보점 좌측으로는 우람한 만장봉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 확보점에서 우측으로 고개를 돌리면 포대능선과 Y계곡이 한눈에 보인다.
▲ 6피치 하단부의 기존 볼트를 제거하기 위해 다시 올라가서 애쓰는 기영형의 모습이다.
▲ 6피치 출발점 아래에 새롭게 설치된 5피치 확보점이다.
기존엔 피치 중간의 나무를 확보점으로 사용했었다. 더이상 나무를 괴롭히지 않아도 된다는...^^
▲ 새로운 4피치 확보점은 기존의 확보점 바로 옆에 설치되었다.
▲ 4피치 확보점에서는 새로운 좌측의 글루인 앵커와 기존의 나사형 쌍볼트를 한눈에 비교할 수 있었다.
글루인 앵커의 하강고리는 세로로 서 있어서 자일과 바위 표면의 마찰을 피할 수 있다.
또한, 새로운 앵커의 체인은 나사로 조여서 마무리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통으로 용접되어 더욱 안전하다.
▲ 4피치의 중간 볼트 위치도 안전을 위해서 조금씩 변화를 주었다.
4피치는 기영형이 철거하고, 나는 곧바로 3피치로 하강하여 철거 작업을 진행하였다.
▲ 3피치 확보점과 4피치 등반 출발점 사이의 안부에 새롭게 설치된 탈출용 앵커의 모습이 보인다.
탈출을 위한 하강이 아니라면 실제 <배추흰나비의 추억> 등반 시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을 듯하다.
▲ 새로운 3피치 확보점은 기존의 확보점 바로 옆에 위치한다.
4피치를 등반하는 선등자 확보를 위해서는 바로 앞의 탈출용 앵커보다는 이곳에서 빌레이를 보는 것이 더 좋다.
이곳에서는 4피치 전체 루트의 시야 확보가 가능하여 더욱 안전하기 때문이다.
▲ 100미터 고정 자일을 설치하니 4피치부터 2피치 확보점까지 한 번에 연결되어 작업 시간이 단축되었다.
▲ 크랙 등반으로 시작되는 3피치 구간은 개척 당시에 설치된 것 이외의 중간 볼트는 제거했다.
캠 등으로 중간 확보물 설치가 용이한 크랙 구간에서는 클린 등반을 실천하는 태도를 유도하기 위함이다.
▲ 3피치에서 건너가기 직전에 바라본 2피치 확보점이다.
새로운 확보점은 기존 확보점 너머의 직벽에 설치되었다.
▲ 3피치 중간에서 내가 깨끗이 제거하지 못한 스터드 앵커(stud anker)의 뿌리를 기영형이 망치로 제거해볼려고 애썼으나 실패하고...
나중에 최종 철거팀이 그라인더로 말끔하게 제거하셨다고...
▲ 기존의 2피치 확보점을 보면서 하강 포인트가 바위 꼭대기에 있을 경우 여러모로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등반 시에 새로운 2피치 확보점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진행 방향의 우측으로 돌아서 넘어오면 된다.
▲ 봉우리 꼭대기에 설치되어 있던 기존의 2피치 확보점은 제거 되었다.
▲ 2피치 확보점에서 바라본 3피치와 4피치 루트의 전경.
▲ 2피치와 1피치의 기존 중간 볼트를 제거하는 것으로 리볼팅 1차 작업은 마무리 되었다.
내가 맨 마지막으로 2피치에서 1피치를 거쳐 등반 출발점으로 한번에 하강하는 바람에 1피치 확보점은 촬영하지 못했다.
새로운 1피치 확보점은 기존 위치에서 5미터 위에 설치하여 후등자 확보가 용이하도록 했다고 한다.
1피치는 중간 볼트도 하나 더 추가하여 총 3개가 되었다고...
▲ <배추흰나비의 추억> 첫 피치 암벽 아래의 베이스 캠프에 도착하는 것으로 1차 리볼팅 작업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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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리볼팅 작업을 위해 개설된 단톡방에 올라온 사진들을 정리한 것이다.
▲ 윤길수 선생님이 작성하신 리볼팅 작업을 위한 개념도.
▲ 홍대클라이밍센터에서 리볼팅 작업에 필요한 준비물을 정리하고 있는 중...
▲ 가파른 계단길을 오르고 난 후 만월암 위의 쉼터에서 모든 참가자가 처음으로 다 모였다.
▲ 윤선생님이 리볼팅 지점을 마킹한 후에 희규 선배님이 규격에 맞는 구멍을 전동드릴로 뚫는 것으로 작업이 시작된다.
▲ 마킹된 지점에 정확히 구멍을 뚫고 계시는 희규 선배님.
▲ 구멍을 뚫은 후에는 그 안을 깨끗이 정성스럽게 청소해 주어야 한다.
▲ 구멍 청소를 마친 후에 설치될 새로운 볼트를 임시로 넣어 두는 것으로 희규 선배님의 임무는 끝...
▲ 임시로 설치되어 있는 볼트를 확인한 후 글루를 삽입하여 마무리 하는 것이 영채 씨의 임무다.
글루건(glue gun)을 사용할 때는 스틱이 굳는 시간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연속해서 시공하는 개수를 잘 생각해야 한다고...
▲ 마지막 작업 구간인 1피치 중간 볼트에 구멍을 뚫는 중이다.
▲ 다시 <배추흰나비의 추억> 루트 정상으로 올라간 최종 철거팀이 새롭게 설치된 글루인 앵커를 사용 중이다.
▲ 새롭게 설치된 글루인 앵커에 확보하고 기존의 확보점을 제거하는 것으로 뒷마무리 작업은 끝난다.
▲ 나는 아직 사용해보지 않았지만 나중에 등반 때 이 글루인 앵커를 사용하게 된다면 감회가 남다를 듯하다.
▲ 다음날 할 예정이던 최종 철거팀의 뒷마무리 작업은 어두워진 후에도 계속 되었다.
▲ 천둥과 번개 속에 갑자기 쏟아진 비 때문에 최종 철거팀의 작업은 더욱 힘겨웠을 것이다.
▲ 식당에 모여서 조촐한 뒷풀이를 하는 순간 잔잔한 만족감이 찾아들었다.
소나기처럼 내린 비 때문에 쌀쌀해진 저녁 날씨 탓인지 '능이전복삼계탕'이 더욱 맛깔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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