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에 붙어본지 금세 한 달이 지났다. 주말에 이런저런 일들이 많아서 그동안 등반 약속이 잘 잡히지 않았다. 야외 등반도 꾸준히 해야 실력이 늘고 자신감도 생기는 법이다. 실내 암장에서의 클라이밍 연습과 자연 속에서 바위를 타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5월 초에 2박 3일의 즐거운 등반 여행을 다녀왔던 세 친구가 오랜만에 인수봉을 오르기로 한다. 도선사 앞 주차장에 차를 대기 위해 새벽부터 대섭이가 은경이와 나를 픽업하는 수고를 해준다. 6시 반 즈음부터 어프로치를 시작하여 취나드B길 앞의 바위 위에서 장비를 착용한다. 주말이면 너무 많은 클라이머들이 운집하여 그동안 피해왔던 인수봉이다. 이른 시간부터 등반하는 이들의 구호 소리가 요란한 동벽 아래를 돌아서 비교적 한산하고 쉬운 루트인 고독길을 택한다.
하늘은 청명하고 바람은 시원하다. 믹스 등반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고독길에도 쌍볼트 확보점이 새롭게 단장되어 등반이 더욱 안전하고 편리해졌다. 세 사람 모두 여러 차례 올라본 익숙한 길이라서 별 어려움 없이 편안하게 오른다. 첫째와 둘째 마디의 쌍볼트 확보점은 아주 적절한 곳에 설치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구조대길과 교차하는 아늑한 동굴에서 간식을 먹고 쉬어가는 시간이 더이상 소중할 수 없다. 손홀드가 좋아서 레이백 자세로 기분 좋게 오를 수 있는 직상 크랙과 홀드 양호한 귀바위 아래를 올라서 통천문을 통과하는 구간을 즐겁게 오른다. 여러 루트가 만나는 지점인 영자크랙과 참기름 바위는 여전히 미끄러워서 긴장감을 놓을 수 없다. 비교적 이른 시각인데도 정상에는 우리보다 먼저 올라온 이들의 배낭이 놓여 있다. 작년에는 한 번도 올라오지 않았던 인수봉이라서 그런지 정상의 넓은 공터가 반갑게 다가온다. 맞은편 백운대에는 일반 등산객들이 제법 많다.
서면의 하강 포인트도 새롭게 단장되어 있다. 여러 개의 쌍볼트에 잠금비너까지 설치되어 있으니 더욱 안전해진 듯하다. 그런데 60 미터 자일 두 동으로 하강을 완료한 후 자일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애를 먹는다. 바람이 불어서 자일이 연줄처럼 옆으로 휘어진다. 줄이 빠져서 바위 사면을 타고 내려오는 동안 비둘기길과 서면벽을 등반하는 사람들에게 줄이 걸린다. 이들이 줄을 넘겨주는 과정에서 다시 하단의 크랙에 자일이 완전히 끼어버린다. 하강하는 사람들도 없으니 다시 등반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감사하게도 기름장어처럼 날렵한 등반 고수 분의 도움으로 자일을 회수할 수 있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 때는 서면벽에서 30 미터씩 두 차례로 나누어 하강하는 것이 더 안전하고 자일 회수도 편리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자일 회수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곤란을 겪었지만 이 것도 값진 경험이라는 생각이다. 오랜만에 찾은 인수봉에서 좋은 날씨에 좋은 친구들과 호젓하고 편안하게 등반을 즐길 수 있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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