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부상으로 작년 가을 시즌 동안 등반을 하지 못했다. 실로 오랜만에 야외에서 사용할 장비들을 점검해본다. 우이동에서 기영이 형과 은경이를 만나 위문을 향해 오른다. 형이 좋아하는 도선사 광장을 거치지 않는 호젓한 오솔길을 따라서 걷는다. 그간 밀린 얘기 도란도란 나누며 함께 산길을 걷는 순간이 좋다. 흐린 날씨에 예상보다는 차가운 기온이다. 백운산장 아래의 계곡엔 아직까지 얼음폭포가 선명하다. 위문을 넘어 써미트 암장을 지나 백운대 서벽 밴드 앞에서 장비를 착용한다. 쇠줄에 확보줄을 연결하고 안전하게 트레버스 한다. 절벽 아래의 널찍한 공터에서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 클라이밍 다운으로 내려선 후 다시 올라선 약수릿지 출발점에서 본격적인 등반을 시작한다.
지난 주와 비슷한 기온일 거라는 예보를 믿고 얇게 입고온 옷 탓에 약간의 한기를 느낀다. 보온 의류를 챙기지 못한 것이 아쉽다. 햇살이 비추지 않은 스산한 기운 때문인지 바위를 타는 몸짓이 둔하다. 별 어려움 없는 세 마디를 끊고, 다음 루트를 찾는데 영 시원치가 않다. 릿지길의 특성상 볼트가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길을 확신할 수가 없다. 우측면의 실크랙을 타고 오르면 될 듯 한데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그 이후를 장담할 수가 없다. 때마침 살짝 빗줄기까지 뿌려주니 더이상 진행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길을 잘 아는 염초릿지로 이동하기로 하고 약수릿지를 탈출한다. 두 번의 자일 하강으로 아늑한 곳에 내려와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염초릿지 방향으로 간다.
파랑새 릿지와 염초릿지가 만나는 장군봉 앞에서 등반을 이어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바로 앞에 모 등산학교에서 온 듯한 20여명의 대규모 팀이 있어서 할 수 없이 우리의 등반은 접기로 한다. 피치마다 기나긴 기다림을 견딜만큼 간절한 등반 열정은 사라진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미련 없이 장비를 정리하고 냉골 탈출로로 내려와서 호랑이굴로 이어지는 된비알을 올라간다. 다음 주부터는 클라이머들로 붐빌 인수봉 남서벽 가장자리를 천천히 돌아 내려오면서 유명한 루트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진달래가 꽃망울을 보이기 시작하고 생강나무꽃이 활짝 피었지만 북한산의 봄은 아직 이른 감이 있다. 암벽 등반을 위한 기지개를 펴본 것으로 만족하고 쌀쌀한 날씨에 무리하지 않은 것이 현명한 판단이었다며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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