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제르 언덕에서 출발하여 세서리 호수들을 둘러보고 락블랑에 도착했습니다. 해발고도 2352 미터에 자리한 알파인 호수인 락블랑은 아직까지 얼어 있었습니다. 호수 주위를 구름이 뒤덮고 있어서 그 좋다던 조망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여섯 개의 세서리 호수는 조망도 좋았고 아기자기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락블랑에서의 실망스런 조망에 대한 아쉬움을 보상해준 건 뜻밖에도 알프스의 산양이었습니다. 세서리 호수 주변에서는 마모트도 만났는데 어찌나 빨리 움직이던지 온전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지는 못했습니다.
산행을 하면서 오늘처럼 야생 산양을 많이 본 적은 없는 듯합니다. 세서리 호수에 도착하기 전부터 보이기 시작한 산양은 호수들 주변과 락블랑 오르는 중간에도 자주 보였습니다. 락블랑에서 플레제르로 내려오는 양지바른 언덕에서는 더욱 많은 수의 산양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떤 녀석들은 아주 가까이 다가가도 저를 전혀 개의치 않고 풀을 뜯어 먹고 있었습니다. 어릴 때 집에서 기르던 흑염소를 타고 놀던 생각이 떠올라 저도 녀석들과 친해진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그래서 망원렌즈 없이도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사진을 몇 장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알프스의 산양은 부끄뎅과 샤모아 두 종류가 있는 모양인데 저는 아직까지 둘을 구별할 수준은 못됩니다. 락블랑에 올라갈 때 만났던 프랑스인은 부끄뎅이라 하고, 내려올 때 산양이 있는 곳을 가르쳐준 아가씨는 샤모아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저에게는 모두 같은 종류로 보였는데 말입니다. 산양의 이름이 중요한 건 아니겠지요. 자연 속에서 야생 동물들이 인간과 함께 공존하면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야생의 산양과 마모트를 산행 중간에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알프스 트레킹이 갖는 또다른 매력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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