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백운대 <시인 신동엽길> 등반 - 2015년 10월 17일

빌레이 2015. 10. 18. 02:13

지난 한글날 연휴 때 금강변을 돌아보면서 자연스레 신동엽 시인이 생각났다. 반짝이는 금빛 물결을 바라보면서 그의 장편 서사시 '금강'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문명화된 세계 이전에 대한 강한 향수와 동경으로 지극한 순수성을 추구했던 그의 시는 '껍데기는 가라'라는 제목만으로도 그 울림이 크게 다가온다. 천등산 어느 등반가의 꿈길을 등반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함께 했던 금강의 아름다운 물줄기를 감상하면서 기회가 닿는 대로 북한산 백운대에 있는 신동엽 시인의 길을 올라봐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내친 김에 이번 주말에 등반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시인 신동엽길은 백운대 정상에서 남서쪽으로 웅장하게 뻗어내린 대암벽을 오르는 루트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길과 관련해서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 남아 있다. 3년 전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등반 예절을 무시한채 한 팀으로 연달아 등반하는 바람에 우리 팀은 등반도 못하고 마음만 상했었던 것이다. 그때를 떠올리면서 이른 아침 7시경에 우이동 도선사주차장에서 어프로치를 시작한다. 단풍이 절정인 하루재 주변은 평소와 다른 아름다움을 발하고 있다. 백운산장과 위문을 거쳐서 신동엽길 출발지점에 내려서는 산길 주변도 절정을 이룬 단풍이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장비를 착용하기 좋은 등반 출발점에는 다행히 우리팀 외에는 아무도 없다. 하늘은 청명하고 바람도 잔잔해서 등반에는 더없이 좋은 가을 날씨에 기분은 상쾌하다.     

     

첫 마디는 슬랩을 올라서 밴드를 타고 우측으로 트래버스하는 구간이다. 항상 그렇듯 첫 피치 선등은 조심스럽다. 오랜만의 슬랩 등반이 조금은 낯설어서 그런지 쉽게 발이 나가지 못한다. 손홀드가 양호한 곳에서는 자신감이 생기는데 그렇지 않은 구간은 긴장감 때문에 자세가 움츠러드는 느낌이다. 둘째 마디는 확보점에서 이어지는 밴드를 타고 트래버스 한 후에 직상하는 구간이다. 손홀드가 확실치 않은 직상 구간에서는 긴장감을 떨칠 수가 없다. 셋째 마디는 스태밍 자세로 쉽게 오를 수 있는 구간이다. 넷째 마디는 레이백 자세로 올라야 하는 직상 크랙이다. 중간에 볼트가 한 개 정도는 설치되어 있다면 좋으련만 레이백 자세가 끝나는 지점에만 볼트가 있어서 선등자에게 심적 부담이 된다. 중간에 캠을 설치하고 오르니 홀드 양호한 크랙에서 레이백 자세가 안정적으로 나온다. 크랙을 올라서서 우측으로 트래버스 해야 하는 구간에서도 긴장감을 늦출 수는 없다. 이 구간을 올라서면 신동엽 테라스로 불리는 아늑한 공터가 나온다. 이 공터에서 간식을 먹으며 잠시 쉬어간다.     

 

다섯째 마디는 크럭스 구간이다. 좌측 사선 방향으로 형성된 실크랙을 따라 오르는 초반부는 보기보다 손홀드가 양호한 편이다. 문제는 크랙이 끝나고 우측으로 트래버스 하는 구간이다. 전체적으로 흘러내리는 상태의 수평 크랙을 따라 전진하는 것이 쉽지 않다. 손홀드도 확실치 않고 밸런스와 스탠스도 좋은 편이 아니다. 중간에 캠을 설치하면서 전진하다가 중간 확보점인 오버행 쌍볼트에서 후등자 확보를 본다. 쎄컨이 쌍볼트에 올라선 후에 다시 우측 1시 방향에 걸려있는 슬링을 잡고 올라서는데 그 다음이 손홀드와 발홀드 모두 양호하지 않다. 왼발을 레더에 올려놓고 오른발은 미세한 돌기를 찾아서 점을 찍듯이 올려놓는다. 손홀드까지 양호하지 않은 크랙이지만 오른발이 터지지 않도록 신경쓰면서 과감하게 올라챈다. 이 구간은 지금 생각해도 긴장감이 도는 곳이지만 그런대로 잘 오른 것 같았다. 좀 더 침착했으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드는 곳이기도 하다.

 

오버행 턱을 올라선 이후의 다섯째 마디 구간은 다시 짧은 슬랩과 짧은 오버행 크랙이 나타나는데 그리 어렵지 않게 올라섰다. 하지만 거기에서 직상하지 않고 우측의 언더크랙을 잡고 트래버스 하여 좌측 벽에 나타나는 쌍볼트에서 마디를 끝냄으로써 루트에서 벗어난 듯하다. 이 쌍볼트 확보점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신동엽 테라스보다도 더 넓은 안마당 같은 공터가 나온다. 그때까지 우리가 루트에서 벗어난 것을 모르고 또 한참을 그 공터에서 노닐다가 여섯째 마디 등반에 나선다. 공터 우측에 나있는 직상 크랙 아래에 볼트 하나가 있지만 올라보니 등반 루트가 아닌 것 같아서 후퇴한다. 할 수 없이 언더 크랙을 따라 우측으로 우회하는 루트로 등반하여 여섯째 마디의 확보점이 있는 전망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일곱째 마디는 숲길을 걸어 올라가서 시작된다. 위문에서 곧바로 어프로치 해서 7피치부터 등반하고 있는 팀이 보였다. 여섯째 마디까지의 등반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서 나머지 구간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우리 팀은 여기에서 등반을 종료하기로 한다. 트래버스와 크랙 등반 구간이 많아서 그런지 녹록치 않은 등반이었다. 다양한 형태의 바위들이 있어서 등반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루트라는 생각을 할 수는 있겠으나 등반의 난이도에 비해서 안전성은 떨어진다는 아쉬움을 지울 수가 없다. 관점의 차이일 수는 있겠지만 안전을 먼저 생각하고 볼트 위치나 등반 루트를 설정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신동엽길이 가식과 허위를 거부하면서도 내면적으로는 조화와 화합을 추구했던 신동엽 시인의 <둥구나무> 같은 바윗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둥구나무

 

                - 신동엽

 

뿌리 늘인
나는 둥구나무.

남쪽 산 북쪽 고을
빨아들여서
좌정한
힘겨운 나는 둥구나무
다리뻗은 밑으로
흰 길이 나고
동쪽 마을 서쪽 도시
등 갈린 전지()

바위고 무쇠고
투구고 증오고
빨아들여 한 솥밭
수액() 만드는
나는 둥구나무

 

 

▲ 둘째 마디를 출발해서 밴드를 타고 트래버스하고 있는 중이다.

 

▲ 첫 피치는 슬랩을 오르다가 밴드에서 우측으로 트래버스 하는 구간이다.

 

▲ 둘째 피치는 밴드 이후의 구간이 조금 어렵게 느껴진다.

 

▲ 셋째 피치는 스태밍 자세로 오르기 무난한 코스이다.

 

▲ 넷째 피치의 초반부는 인내심을 가지고 레이백 자세를 견지해야 하는 구간이다.

 

▲ 레이백이 끝나는 부분에 첫 볼트가 있다는 것이 안전에는 조금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 구간이다.

 

▲ 넷째 피치 후반부는 우측으로 트래버스 하는 구간이다.

 

▲ 다섯째 피치 출발점에서 올려다 본 모습이다.

 

▲ 다섯째 피치 초반부는 오버행 디에드르 형태의 실크랙을 오르는 구간으로 홀드는 좋은 편이다.

 

▲ 크랙을 올라서서 우측으로 트래버스 하는 것이 첫 번째 크럭스 구간이다. 

 

▲ 트래버스가 끝나는 곳의 오버행 벽에 중간 확보용 쌍볼트가 있다.

 

▲ 다섯째 피치를 올라서서 내려다본 모습이다.

 

▲ 다섯째 마디를 이곳에서 끊고 바위 아래의 공터에서 한참을 쉬었다.

 

▲ 여섯째 마디 초입을 못 찾아서 공터 우측의 언더크랙을 잡고 우회하는 루트를 개척한 셈이 되었다.

 

▲ 백운대 맞은편의 만경대 우회로에는 단풍을 즐기려는 산객들이 줄을 잇고 있다.

 

▲ 신동엽길에서 위문으로 가는 탈출로 중간에 있는 써미트 암장 아래의 단풍이 유난히 곱다.

 

▲ 탈출로 중간의 전망 바위에서 바라보는 노적봉과 북한산 능선들의 모습이 멋지다.

 

▲ 우리가 장비를 정리하는 동안 위문에는 구조 헬기 소리가 요란했다. 무엇보다 안전 산행이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