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북한산 노적봉 중앙벽 등반 - 2014년 10월 25일

빌레이 2014. 10. 26. 09:25

구파발역에 약속 시간인 아침 8시 반에 도착하여 버스 정류장으로 나간다. 북한산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한 등산객들이 만원을 이루고 있다. 단풍 산행을 즐기기 위해 주말의 이른 시각인데도 불구하고 일찍 집을 나선 사람들이 정말 많다. 가을날의 한국은 진정 등산 열풍 속에 휩싸여 있음을  실감한다. 다행히 약속 시간보다 일찍 오신 기송 형이 먼저 20여분 동안 기다리는 줄을 서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곧바로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북한산성 입구에서 하차하여 기송 형의 지인이 운영하는 들꽃식당에서 커피 한 잔을 대접 받는다. 노적봉까지 어프로치 하는 산길 주변의 단풍이 한창이다. 보리사 삼거리에서 잠시 쉬던 중에 등산학교 동기인 철성 형을 반갑게 만난다. 철성이 형 부부가 포함된 5명이 자일파티를 이루어 노적봉 하늘길을 등반할 것이라고 한다. 노적사에서 좌측 능선을 따라 중앙벽 아래까지 펼쳐지는 단풍의 향연은 어프로치의 고단함을 잊게해 준다. 

 

우리는 경원대길을 등반하고 노적봉 정상을 넘어서 우이동으로 하산할 계획을 세웠었다. 하지만 노적봉 중앙벽 아래에 도착해보니 경원대길에는 이미 한 팀이 등반 중이고 다른 팀이 대기 중에 있었다. 할 수 없이 중앙벽에 있는 적절한 루트들을 등반하다가 정상까지 가기로 하고 하늘길과 빨대길 사이에 비어 있는 루트의 슬랩에 붙는다. 기송 형이 선등해서 자일을 고정하면 내가 선등자 빌레이를 본 후에 슈퍼베이직으로 등반하여 라스트를 맡은 은경이를 간접 빌레이로 올리는 등반 시스템을 구사하기로 한다. 이 방법은 60 미터 자일 한 동으로 피치별 등반 길이가 30 미터를 넘는 루트를 등반하기 위해서 가장 효율적인 등반 시스템이란 생각이다. 선등자의 체력을 비축할 수 있고 후등자들도 자신만의 등반을 즐길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첫 피치는 그런대로 잘 붙었으나 둘째 피치는 페이스를 이루고 있는 반반한 바위질에 도무지 손홀드를 찾을 수가 없다. 나중에 우리가 오른 둘째 피치를 검색해본 결과 'Fun Rock', '8년만의 만남', '부활의 꿈', 이 셋 중의 한 루트를 등반한 셈인데 모두가 5.11의 난이도로 표기돼 있다. 선등하던 기송 형이 크럭스를 돌파하지 못하고 있던 중 고맙게도 하늘길을 먼저 오른 철성 형이 자일을 내려준 덕택에 안전하게 오를 수 있었다. 후등으로는 어찌 어찌 해서라도 오를 수 있겠지만 선등으로는 도저히 오를 수 없을 듯한 구간이라는 느낌이 강해서 오히려 등반의 즐거움을 느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둘째 피치를 제외하면 모든 피치가 즐거웠다. 다만 중앙벽의 루트들 사이의 간격이 좁은 탓에 어떤 바윗길을 등반했는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전체적으로 7 피치로 나누어 등반했지만 피치 간격이 40 미터에 이르는 구간들이 많아서 그런지 시간은 생각보다 많이 소요되었다. 우리가 등반한 정상 바로 밑의 마지막 구간도 검색해본 결과 '아미고스'길로 난이도는 5.11a이다. 크럭스 부분에서 가장 중요한 볼트가 손상되어 있는 바람에 선등하던 철성 형이 슬링을 이용해 가까스로 돌파할 수 있었다. 우리의 우측에서 빨대길을 리딩하던 여성 클라이머의 말처럼 앞으로 노적봉 중앙벽을 등반하기 위해서는 루트에 대한 준비를 세심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등산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꾸준히 자연암벽에서 실력을 배양했던 철성 형은 어려운 구간에서도 유연한 동작을 보여주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축구와 풋살이 다른 종목이듯 자연암벽과 스포츠클라이밍이 많이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노적봉 등반을 즐겁게 마무리하고 만경대를 돌아가는 등산로를 통해 용암문 방향으로 가는 하산길에 접어든다. 오후 4시가 넘은 시각의 산길은 한산해서 좋다. 용암문을 지나서 도선사까지 내려오는 길 주변의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형형색색의 나뭇잎들이 숲을 온통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 꿈결 같은 그 길 속을 천천히 걸어내려오는 기분이 황홀하다. 우이동에서 홍어무침과 막걸리 몇 사발을 진하게 나눠 마신다. 등반 이후에 마시는 한 잔의 술 속에는 자일의 정이 넘쳐 흐른다. 수유리의 복집에서 복맑은탕으로 개운하게 마무리한 저녁 식사까지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던 하루를 즐겼음에 감사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