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과부하가 걸린 근자의 과로 탓인지 피곤함이 느껴진다. 등반을 쉴까 하다가 몸이 더욱 가라 앉을 것 같아서 가까운 수락산을 찾기로 한다. 예전에 종주 산행을 즐길 때 자주 다녔던 청학리 코스를 택한다. 당고개 전철역에서 버스를 타고 덕릉고개를 넘으면 경기도 남양주시 지역이다. 서울시 경계를 벗어나자 마자 편안한 분위기의 전원 풍경이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별내 신도시가 들어서고 외곽순환고속도로가 개통된 이후로 전보다는 많은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수락산 마당바위 입구는 아직까지 조용한 시골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산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논에서 노랗게 익어가는 벼가 결실의 계절을 알려준다. 이제는 어엿한 다산길 푯말이 세워진 오솔길을 따라 천천히 숲속을 걷는 기분이 상쾌하다.
시야가 트이고 새의 부리처럼 돌출된 바위가 있는 곳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쉬어간다. 사과바위 우측으로 드넓게 펼쳐진 바위 사면에 자리한 내원암장이 한 눈에 들어온다. 등산학교를 졸업한지 얼마 되지 않은 몇년 전 여름날에 여러 명의 동기들과 하루를 즐겼던 추억이 깃든 곳이다. 등반 열정이 불타올랐을 그때의 활기찬 모습이 그립기는 하지만 여유로움 속에서 마음 편하게 조용한 등반을 즐기고 있는 요즘의 내 모습이 더 좋다. 의정부와 포천 방향으로 펼쳐진 가을 들판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에서 숨을 고른 후 능선길을 따라가다가 좌측의 내원암장으로 내려간다. 벌써 한 팀이 등반 중에 있다. 터를 잡고 앉아서 간식을 먹고 있는데 대부대가 우리 옆에 진을 친다. 배낭에 챙겨온 모양새를 보니 비박까지 할 태세다. 아무래도 자리를 잘 못 잡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장비를 착용하고 크랙으로 시작해서 슬랩으로 이어지는 루트에 붙어본다. 슬랩에 대한 연습은 충분히 하지 못한 까닭에 손홀드가 용이한 크랙 쪽으로 자꾸 눈이 간다. 발재밍이 확실하게 이루어지는 크랙이어서 볼트가 멀어도 부담되지 않는다. 크랙이 끝나고 볼트에 클립한 이후의 구간은 페이스로 느껴진다. 자연바위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자유등반이 가능한 곳이겠지만 처음 오르는 것을 감안하여 안전하게 인공으로 돌파한다. 볼트 간격이 긴 구간에서는 하루 전에 구입해둔 패닉 장비를 요긴하게 사용하는 기쁨도 누려 본다. 30 미터 길이의 피치를 끝내고 하강하여 톱로핑 방식으로 연습 등반을 이어갈 생각이었으나 대부대의 번잡함이 싫어서 그들과 떨어진 아래쪽으로 자리를 옮긴다.
자연암벽이든 인공암벽이든 십여 명 이상의 대규모 등반팀이 터를 잡고 그들만의 세를 과시할 때 우리 같이 오붓한 등반을 즐기고자 하는 이들이 설 자리는 상대적으로 좁아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자연암벽은 산만하기 쉬운 암장에서의 등반보다는 다섯 명 이하의 자일파티 모두가 집중할 수 있는 멀티 피치 등반이 더 매력적인 듯하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위쪽에 아지트를 틀고 있는 대부대와 떨어진 맨 아래쪽의 어린왕자길이라는 표시가 붙어있는 루트를 등반한다. 캠을 설치하기에 적당한 크랙을 등반하는 기분이 좋은 루트이다. 다른 루트는 별로 붙어보고 싶은 생각이 없어져서 은류폭포가 있는 계곡 쪽으로 워킹 산행을 이어가기로 한다. 겨울의 빙벽등반 시즌에 빙계 트레킹을 시도해볼 대상지로 생각 중인 은류폭포 계곡을 탐사하기 위한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단풍나무가 많은 계곡은 서서히 물들기 시작한 단풍의 아름다움과 함께 가을날의 신선함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다. 시원한 나무 그늘이 수락주능선까지 이어지는 오솔길은 처음 가보는 길이라서 더욱 즐겁게 오를 수 있다. 서울 근교의 여느 산에 비해 단풍나무가 많은 듯하다. 불타오르는 단풍을 만끽하고 싶을 때를 위해서 은류폭포가 있는 계곡길을 기억해 두어야 할 것 같다. 오솔길은 수락주능선 상의 코끼리바위와 만난다. 이 곳에서 하강바위를 지나 학림사 방향으로 하산하다가 새로 생긴 서울 둘레길을 따라 당고개역에 도착한다. 어릴 때 시골에서 곡식을 말릴 때 썼던 덕석 모양의 깔판이 군데군데 깔린 둘레길을 걸어 내려오는 발걸음이 가볍다. 내원암장에서의 등반보다는 수락산 산길을 요모조모 탐험 하듯 거닐면서 가을날의 상쾌함을 온몸으로 느낀 것이 더 좋았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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