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인수봉 취나드B 코스 등반 - 2014년 8월 1일

빌레이 2014. 8. 2. 03:55

8월의 첫날이다. 처음으로 인수봉 취나드B길 등반에 나선다. 금요일이지만 휴가 떠나는 사람이 많은 탓인지 평일 같지 않은 분위기이다. 은경이의 휴가 첫날이기도 하다. 오전 10시에 우이동에서 박교수님과 은경이를 만나 어프로치를 시작한다. 태풍 '나크리'가 몰고 오는 뜨거운 공기로 중북부 지방은 올 최고 폭염을 기록했다는 날씨 답게 산 아래는 덥고 습하다. 서울의 기온은 섭씨 34도를 웃돈다고 한다. 도선사까지 택시를 타고 갈까 하다가 그냥 걸어서 오르기로 한다. 땀을 많이 흘리지 않기 위해 천천히 걷는다. 나무 그늘에 앉아 두 번을 쉬면서 하루재에 도착하니 비로소 시원한 산바람이 반겨준다. 신선한 공기가 등에 흐르는 땀을 식혀주니 마냥 쉬고 싶어진다. 그래서 한참을 쉬어간다.

 

하루재를 지나서 갑자기 나타나는 인수봉은 언제나 그 자리에 서서 우리를 반겨준다. 쾌청한 하늘에 떠있는 솜털 구름이 정겹다. 아름다운 성하의 인수봉은 더욱 멋진 자태를 뽐내고 있다. 우이동에서 어프로치를 시작하여 동벽 아래에 도착할 때까지 두 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평소보다 천천히 걸어온 탓에 어느덧 점심 때가 되었다. 살랑살랑 불어주는 시원한 바람 맞으며 떡과 과일을 먹는 순간이 행복하다. 산 아래의 후텁지근한 공기를 생각하면 더욱 소중한 산바람이다. 우리가 오를 취나드B길엔 벌써 두 팀이 붙어 있으므로 여유롭게 장비를 착용한다. 취나드B길은 귀바위에서 뻗어내린 날등 코스인 의대길과 나란히 이어지는 우측 아래의 크랙을 따라 오르는 루트이다. 그늘진 곳이 많고 바람도 시원해서 여름철에 오르기 좋은 곳이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은 나만의 것이 아닌 듯하다. 평일인데도 각각 세 명과 두 명으로 구성된 팀이 우리 앞에서 취나드B 코스에 붙어있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이본 취나드(Yvon Chouinard)는 내가 좋아하는 등반가 중의 한 사람이다. 여러 산서들을 통해서 취나드의 등반 능력과 그의 사업 성공담을 익히 잘 알고 있었다. 처음 그에 대해서 알았을 때 유명한 취나드의 이름이 인수봉 바윗길에 남아 있다는 것이 반가웠었다. 현재 취나드 A와 B 코스가 인수봉 동북벽에 있고, 난이도 높은 A길에 비해서 취나드B길은 많은 이들이 오르는 아주 인기 높은 바윗길이다. 1963년 10월, 취나드가 주한미군으로 근무할 당시에 선우중옥, 이강옥, 취나드, 이렇게 세 사람이 초등한 기록이 있다. 나는 언젠가 취나드B 코스를 선등으로 오를 수 있는 등반 능력 정도를 갖추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졌었다. 그동안 스포츠 클라이밍을 통해 단련된 전완근과 알게 모르게 향상 되었을 등반 능력을 믿고 이번에 자신감 있게 붙어보기로 한 것이다. 멀티 피치 등반에서 가보지 않은 바윗길의 선등에 나서본 기억은 드물다. 그래서 자신감의 한 켠에 자리한 긴장감은 떨칠 수 없다. 적당한 긴장감으로 무장하고 첫 피치 선등에 나서본다.

 

첫째 마디는 오를수록 두께가 얇아지는 우향 크랙이다. 경사각이 높지는 않지만 레이백 자세를 오래 취해야 하기 때문에 약간 힘들다. 안전을 위해 중간에 캠 두 개를 박고 전진하여 쌍볼트에 확보한다. 여기에서 둘째 마디는 우측으로 돌아가는 쉬운 크랙 등반이지만 우리는 슬랩을 직상해서 오른다. 셋째 마디는 언더 크랙을 잡고 사선으로 진행하는 구간이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가 들어가는 언더 홀드를 잡고 밸런스를 유지한채 전진하다가 보니 손끝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 홀드를 만난다. 여기부터는 슬랩 등반처럼 발의 마찰력에 신경쓰면서 오른다. 언더 크랙이 이어지는 구간은 트래버스 하는 것과 같이 추락할 경우 많이 다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신경 써서 등반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생각보다 힘겹다. 언더 크랙을 지나면 홀드 양호한 직상 구간을 넘어 확보점이 보인다. 예전엔 소나무가 있었던 곳이라는데 지금은 나무 밑둥만 남아 있다. 등반 길이가 40 미터에 이르는 이 구간도 상당히 긴장되는 곳이다.

 

넷째 마디는 확보점 바로 위의 밴드에서 오른쪽으로 짧게 트래버스 하는 구간이 까다롭다. 오른쪽 끝부분의 밴드가 확실한 발홀드를 제공해주지 못하지만 착지점이 안정적으로 보여서 과감하게 넘어간다. 트래버스 다음부터는 직상 크랙을 레이백 자세로 오른다. 홀드가 확실해서 기분이 좋다. 확보점에 도착하니 바로 앞팀의 선등자가 다음 마디를 오르고 있는 중이다. 동굴을 통과해서 쌍크랙을 올라야 하는 다섯째 마디는 취나드B길의 하일라이트라 할 수 있다. 앞 팀이 오를 때까지 한참을 기다리면서 둘러보는 주위 풍경이 정말 좋다. 시야가 그렇게 넓을 수가 없다. 은근히 긴장하면서 앞팀의 등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본다. 라스트인 박교수님까지 확보점에 도착한 후 다섯째 마디 등반에 나선다. 동굴까지는 홀드가 양호해서 레이백 자세를 기본으로 하면서 오른다. 중간에 가장 큰 캠을 박고 동굴에 들어서서 볼트에 클립한다. 언젠가는 필요할 것 같아서 땡처리용으로 나온 것을 얼마 전 싼 값에 구입해둔 왕캠을 요긴하게 사용한 것에 흡족한 마음이 든다.

 

동굴의 볼트에 임시로 확보한 후 은경이를 올라오게 한다. 그 이후 구간도 만만치 않을 것 같고 피치는 길지만 볼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굴에서 은경이의 확보를 받고 다시 출발한다. 밖으로 빠져 나오면서 오른손을 쭉 뻗으니 든든한 홀드가 잡힌다. 동굴을 벗어난 후 안도의 한숨을 쉬려는데 이어지는 쌍크랙 구간도 쉽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볼트가 보이지 않아서 심리적인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다. 적당한 곳에 캠을 설치하고 양쪽 손을 벌려서 버티는 자세로 오른다. 손홀드가 든든하고 발을 크랙에 재밍하면서 진행하니 추락에 대한 염려도 사라진다. 동굴 속에서는 선등자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아래의 확보점에 계신 박교수님의 중계를 받으면서 은경이가 선등자 빌레이를 본다. 자일파티의 조화로운 협동심이 제대로 발휘된 순간이다.

 

마지막 여섯째 마디는 비교적 쉬운 침니 스타일의 크랙이다. 레이백 자세를 취하면서 왼쪽 크랙의 손홀드를 의지하고 가능하면 바깥쪽으로 나가면서 등반한다. 이렇게 하면 자연스레 암벽화의 마찰력이 증가하는 동작이 되는 것 같다. 특별한 어려움 없이 문안하게 오를 수 있는 구간이지만 볼트가 없기 때문에 안전을 위하여 캠 두 개를 설치하고 올라서서 귀바위 밑의 확보점에 도착한다. 평소에는 인수봉 슬랩을 여유있게 잘 오르던 은경이도 약간은 긴장된 모습을 떨치지 못한 채 라스트 피치를 끝낸다. 박교수님이 마지막 확보점에 도착한 것으로 취나드B길 등반을 안전하게 마무리 짓는다. 항상 올라보고 싶었던 취나드B길을 우리 셋의 힘으로 안전하게 올랐다는 생각에 뿌듯함이 깃든다. 취나드B길은 개념도 상의 난이도는 높지 않지만 볼트가 드물고 캠을 설치하면서 올라야 하는 구간이 많기 때문에 처음 오르는 선등자에게는 부담감이 큰 루트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루트에 익숙한 등반자에게는 다양하고 재미 있는 자세로 오를 수 있기 때문에 등반의 즐거움이 클 것이라는 추측을 해본다.   

 

슬랩 등반과 달리 팔의 완력을 요하는 크랙 위주의 등반에서 전혀 위축되거나 힘들다는 느낌 없이 완등했다는 만족감도 크다. 새롭게 구입한 60 미터 자일과 등반했던 자일 두 동을 연결하여 세 번의 60 미터 하강으로 인수A길과 오아시스를 거쳐서 취나드B길 출발점으로 돌아온다. 세 사람 모두 하강을 완료하고 장비를 정리하러 가던 중에 오아시스에서 막 내려오시는 성선생님을 만난다. 작년 여름에 알프스에서 등반을 같이 했던 추억이 있는 분이다.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반갑게 인사 나누는 기쁨이 크다. 역시 산사람은 산에서 만날 때 더욱 반가운 모양이다. 서로의 일행이 있어서 성선생님과 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등반 장비를 해체한다. 폭염경보가 내린 8월의 첫날에 처음으로 올라본 취나드B길 등반을 상쾌한 마음으로 정리한다. 청명한 하늘과 시원한 바람 만큼이나 여러모로 뜻깊고 즐거운 등반이 되었다.                   

 

▲ 우향 언더크랙이 이어지는 셋째 마디를 등반 중이다. 후반부의 손가락이 들어가지 않는 언더크랙 부분에서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 배낭을 꾸릴 때부터 등반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알프스에서 사용했던 피켈이 찬조 출연.

 

▲ 페츨 버그 어택용 배낭에 모든 것을 꾸려본다. 등반 시 왕캠을 적절히 사용한 것이 기분 좋다. 

 

▲  하루재를 지나서 만나는 인수봉은 언제나 멋지다.

 

▲ 귀바위 아래로 뻗은 날등 밑으로 이어진 크랙을 따라가는 취나드B 코스 전경이 보인다.

 

▲ 첫째 마디 선등에 나선다.

 

▲ 첫 피치는 점점 두께가 얇아지는 크랙을 레이백 자세로 오른다. 안전을 위해 중간에 캠 두 개를 설치한다.

 

▲ 박교수님이 첫 피치를 라스트로 올라오고 있다.

 

▲ 셋째 마디의 언더크랙 부분을 등반 중인 은경이. 은경이는 휴가 첫날에 인수봉 등반을 올 만큼 열혈 클라이머라는 생각.

 

▲ 넷째 마디 초입은 밴드를 타고 트래버스하는 구간이다. 앞 팀의 등반 모습.

 

▲ 다섯째 마디의 동굴 아랫 부분을 등반 중이다. 중간에 설치한 왕캠이 보인다.

 

▲ 동굴 속에서 등반 중인 은경이와 확보점에서 기다리고 계신 박교수님을 내려다 본다.

 

▲ 동굴을 빠져나온 직후에 만나는 쌍크랙이 아래에서 본 것보다 길다는 생각에 잠시 쉬는 중이다.

 

▲ 쌍크랙을 올라와 확보점에 도착하니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 동굴을 빠져나와서 쌍크랙에 들어서고 있는 은경이. 

 

▲ 은경이가 마지막 피치를 등반 중이다.

 

▲ 귀바위 밑 우측으로는 구조대길로 등반한 팀이 보인다.

 

▲ 라스트를 맡아서 고생하신 박교수님이 마지막으로 올라오신다.

 

▲ 60 미터 하강 두 번으로 오아시스에 내려선다. 왼쪽의 연두색 자일이 사용을 개시한 새 자일이다.

 

▲ 오아시스에서는 한 번의 60 미터 하강으로 취나드B길 출발점에 내려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