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무더위를 등산학교에서 같이 보냈던 순욱이 형으로부터 노적봉 등반을 같이 하자는 반가운 연락이 왔다. 몇 년 전 주말마다 5주간 동안 진행된 암벽등반 교육을 받은 열댓 명의 동기들 중에서 순욱이 형이 총무, 내가 기반장을 맡았었다. 처음 접하는 암벽등반의 세계에 매료되어 더운줄 모르고 보람찬 여름을 보냈던 때이다. 등산학교 강사로 있으면서 우리 기수와 특별히 친했던 기송 형님과 함께 온다는 소식이다. 어디를 갈까 망설이던 차에 잘 됐다 싶어서 순욱이 형의 문자에 응답했다. 간밤에 고향에 있는 동생과의 사이에 집안 일로 언쟁이 오가는 바람에 편치 않은 마음을 이끌고 칼바위 능선을 향해 출발한다. 그리스 출장을 다녀와 몸이 무겁고 마음 또한 가볍지 않은 탓인지 자일과 암벽 장비가 들어 있는 배낭이 평소보다는 무겁게 느껴진다.
칼바위 정상 즈음에 도착하니 비로소 무겁게 가라앉은 마음이 조금씩 풀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계속 편치 않은 마음이라면 중간에 만난 은경이에게는 미안하지만 등반을 포기하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땀을 흘리고 걷는 동안 자기 반성도 하면서 두 시간 동안을 산 속에 있다보니 비로소 마음에 평화가 찾아든 것이다. 산은 이래서 좋다. 발걸음을 재촉하여 용암문을 지나 만경대 우회로에서 백운대 방향으로 꺽어지기 직전에 노적봉을 우측에 두고 아래로 내려간다. 우람한 화강암 바위 덩어리인 노적봉 언저리를 내려가는 동안에 보이는 노란 원추리꽃이 예쁘다. 중앙벽 아래의 공터에서 순욱이 형이 반갑게 맞아준다. 꽤 오랜만의 만남이지만 여전히 친근한 그 모습이 좋다. 기송 형님과도 반갑게 인사하고 그간 쌓인 얘기를 나누면서 장비를 착용한다.
광명 클라이밍 클럽에서 개척한 '광클사랑(줄여서 광클)A, B, C (5.10a~c)' 루트 중에서 '광클B'에 붙기로 한다. 광클A길에는 이미 젊은 친구들로 구성된 한 팀이 첫 피치를 오르고 있다. 나중에 알고보니 순욱이 형의 모교인 성대 산악부원들이다. 우리는 기송 형이 선등에 나서고, 나, 순욱이 형, 은경이 순서로 등반한다. 출발점에서 본 광클B길은 만만해 보였으나 첫 피치 중간 이후부터의 슬랩은 상당히 까다로운 구간의 연속이었다. 보통 40 미터가 넘는 피치 길이도 선등자와 빌레이어에게는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항상 그렇듯 첫 피치가 힘겨웠다. 기송 형님이 완료를 외친 후 자일을 고정하면 내가 슈퍼베이직으로 올라서 순욱이 형과 은경이를 간접빌레이 보는 형식으로 등반한다. 피치 길이가 다른 루트에 비해 길어서 60 미터 자일 두 동을 연결하여 등반하기에 알맞은 시스템이었다.
슬랩 등반을 오랜만에 한 때문인지 등반 초반에는 발 전체에 통증이 느껴졌으나 천천히 익숙해지면서 등반의 재미도 살아났다. 노련한 기송 형님도 간간히 슬립을 먹을 정도로 쉽지 않은 루트였으나 볼트가 적절히 설치되어 안정적으로 등반할 수 있었다. 자유등반이 어려운 곳에서는 볼트따기도 해가면서 네 명 모두 물 흐르듯 유연한 등반 시스템 속에서 유쾌하고 안전하게 등반을 마칠 수 있었다. 하루 종일 구름 낀 하늘과 시원하게 불어준 바람 때문에 등반이 더욱 즐거울 수 있었다. 우리와 나란히 광클A길을 등반했던 성대팀과 잠시 섞이면서 A길과 B길을 오가기도 했으나 서로가 배려한 덕택에 평온한 등반을 누릴 수 있었다. 우리의 우측에서 등반하는 팀들 증의 초보자들에게 훈수하는 날카로운 목소리가 신경에 거슬렸다. 하지만 우리와 같이 조용 조용히 등반하는 성대팀 젊은 친구들의 모습은 상대적으로 더욱 보기가 좋았다.
60 미터 자일 두 동으로 네 차례의 피치 하강을 마무리 하고 등반을 종료한다. 노적봉 중앙벽에서 잠시 놀아본 적은 있으나 멀티 피치 등반은 처음이다. 등반팀들이 많아도 인수봉과 달리 다른 팀에 신경쓰지 않고 노적봉에서는 독립적인 등반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것 같다. 아직은 슬랩 등반에 대한 감각이 온전하지 않은 것 같은 내게도 노적봉에서의 첫 등반은 매우 유쾌한 경험이었다. 북한산에서 인수봉 외에 적당한 바윗길을 찾지 못했던 나에게 노적봉은 새로운 희망을 갖게 해주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노적봉 중앙벽에는 '오아시스의 미인(5.10)'길을 비롯, ‘광클사랑A,B,C(5.10a~c)’, ‘님은 먼곳에(5.10)’, ‘아미고스(5.11)’, ‘경원대(5.10)’, ‘하늘(5.11b)’, ‘Fun Rock(5.11)’, ‘8년만의 만남(5.11)’, ‘부활의 꿈(5.11)’, ‘빨대(5.11)’, ‘불장난(5.8)’길 등 다양한 난이도의 바윗길들이 있다고 한다.
1. 노적봉에서 오랜만에 즐거운 등반을 경험했다. 선등하는 기송 형님을 빌레이 보는 나의 모습.
2. 노적봉을 우측에 두고 내려가는 길가엔 노란 원추리꽃이 한창이다.
3. 노적봉의 우람한 화강암질은 인수봉보다 오히려 넓다는 느낌이 든다.
4. 노적봉에는 최근에 많은 바윗길들이 개척되어 있다고 한다.
5. <광클사랑B>에는 '광B'라는 표시가 있다. 2010년 9월 광명 클라이밍 클럽에서 개척한 길이다.
6. 등산학교 시절부터 친분을 이어온 순욱 형과 기송 형님을 오랜만에 만난 것이 무척이나 반갑다.
7. 기송 형님이 첫 피치 리딩에 나서고 있다.
8. 기송 형님에게 배운 등반시스템을 바탕으로 쎄컨의 임무를 내가 맡는다.
9. 광클A길과 B길은 나란히 진행하기 때문에 인원이 많은 팀이 두 개 팀으로 나누어 등반하기에 좋을 듯하다.
10. 등산학교 시절 순욱이 형이 총무를 맡고 내가 기반장을 했었다. 열혈 스포츠맨인 형은 요즘 스쿠버다이빙에 빠져있다.
11. 우리의 좌측에서 나란히 등반한 성대팀의 젊은이들은 등반 실력 만큼이나 등반 예절도 수준급이었다.
12. 잠시 광클A길로 들어선 후 다시 B길을 타기 위해 트래버스 중이다. 아래에서 잡으니 내 키가 커 보인다.ㅎㅎ
13. 우리의 우측에서 좀 떨어진 거리에서 등반한 팀들은 시끌벅적 요란한 소리로 주위를 산만하게 했다.
안전을 위한 구호를 제외하면 조용히 등반하는 게 예절일 것이다.
14. 광클 루트는 쉽지 않은 슬랩 등반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15. 우리의 좌측에서 광클A길을 등반했던 성대팀의 모습이다.
16. 마지막 피치 확보점에서 기념사진을 남긴다. 노적봉에 자주 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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