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트레킹

아들과 함께한 설악산 일박이일(첫째 날) - 중청산장 일박(2013년 2월 3일)

빌레이 2013. 2. 5. 04:56

아들인 지우와 함께 산에 가면 좋겠다. 산길을 거닐며 서로의 마음을 통하게 해보자. 설악산이나 지리산의 품에 안겨 하룻밤을 같이 보내고 싶다. 이러한 생각들을 실행에 옮기고 싶어 지우에게 의향을 묻는다. 선뜻 산에 가겠다고 답한다. 다시 설악과 지리 중에 더 가고 싶은 곳을 선택하라고 묻는다. 지우의 대답이 걸작이다. 더 가까운 곳이란다. 그다지 산에 가고 싶지는 않은데 아빠가 가자고 하니 예의상 거절하지 못하는 형국이다. 그래도 오케이 해준 것이 고마워 설악산 일박이일의 산행을 준비한다.

 

국립공원 설악산 홈피에서 중청산장을 예약한다. 토요일 밤은 이미 예약 초과 상태이다. 주일이라 걸리긴 하지만 아직 여유 있는 일요일 숙박을 예약한다. 지우의 겨울 산행 준비까지 배낭 두 개를 꾸리는 일이 만만치 않다. 겨울 산행이 처음인 지우를 데리고 가는 길이라 날씨가 춥거나 눈이 많이 오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걱정보다 기도하는 태도를 견지하자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해지고 설악에 대한 설레임이 찾아든다. 일요일 새벽 지우와 함께 배낭 하나씩을 둘러메고 집을 나선다. 동서울에서 양양행 8시 30분 직행버스에 오른다. 화양강휴게소에 잠시 들른 것을 빼면 버스는 무정차로 한계령까지 달린다. 우리 외에 대여섯 명의 등산객들이 한계령에 하차한다. 두 시간 정도 걸렸다.

 

한계령 등산로 입구가 막혔다. 관리공단에 전화해본다. 지난 번 대설주의보 이후로 한계령에서 서북릉 등산로는 폐쇄했다고 한다. 인터넷 홈피에 공지해놓았다고 한다. 사전에 확인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할 수 없이 택시를 불러타고 오색으로 향한다. 택시비는 만오천 원이다. 열한 시 반 경에 오색의 남설악탐방안내소를 통과한다. 바람도 거의 없고 햇볕은 따스하니 등산하기 좋은 날씨다. 대청봉까지 가파른 오르막의 연속인 등산로임을 감안하여 쉬엄쉬엄 오른다. 지우가 힘들지 않게 천천히 오르며 눈쌓인 겨울 산의 정취를 만끽한다. 나목들 사이로 맞은편 점봉산 자락의 하얀 설산들이 선명하게 보인다. 나뭇잎 무성한 계절엔 볼 수 없는 풍광이다. 다행히 지우도 싫은 내색은 하지 않는다. 길을 걸으며 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설악산 얘기와 생각나는 겨울 산행 요령 등을 설명해준다. 지우는 강의 듣는 학생처럼 단답형으로 대답한다.

 

포근하던 날씨는 대청봉이 가까워지자 햇볕은 사라지고 바람이 세차진다. 서쪽 하늘에서부터 눈구름이 몰려온다. 그래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풍경 즐기면서 오른다. 산 아래에서는 보기 드문 고사목과 키 낮은 나무들이 나타나는 지대의 풍경은 이채롭다. 누군가 무릎 꿇은 나무로 표현한 산 정상부의 키 작은 나무들을 바라보니 어느새 대청봉이 오백여 미터 앞으로 성큼 다가와 있다. 대청봉 정상엔 세찬 눈보라가 끊이질 않는다. 마침 기념사진을 찍고 돌아서려는 아저씨에게 부탁드려서 지우와 함께 정상 인증 사진을 남긴다. 우리 둘만 남은 대청봉 정상에서 주변 풍광을 감상하고 싶지만 얼굴을 마구 때리는 싸락눈과 몰려온 구름 때문에 오래 머물 수 없다. 중청산장으로 하산하여 곧바로 취사장으로 향한다.

 

우선 라면으로 허기를 채운다. 다음으로 돼지불고기를 안주삼아 지우와 함께 양주를 나눠마신다. 지우는 대학생이 된 이후로 술을 곧잘 마신다. 카레밥까지 먹고 포만감을 느끼며 대피소 자리를 배정 받는다. 이층 침상 자리를 배정받아 일찍 자리에 누워 휴식을 취한다. 일요일 밤인데도 대피소는 만원이다. 난방 시설은 찜질방이 부럽지 않으나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항상 그렇듯 대피소 내부는 잠자는 이들의 코고는 소리와 움직이는 사람들의 소음 때문에 편하지는 않다. 하지만 칼바람 부는 바깥 환경을 고려하면 이 얼마나 고마운 시설인지 모른다. 지우에게는 불편한 하룻밤이겠지만 분명 좋은 경험으로 남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등산하는 동안의 쾌적한 순간들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잠자리에 든다.        

 

1. 오색의 남설악탐방안내소에서 오르면 대청봉을 오백여 미터 남기고 나타난 전망대에서 중청봉과 중청산장을 볼 수 있다. 

 

2. 남설악 등산로의 맞은편 점봉산의 모습이 나목 사이로 잘 보인다.

 

3. 등로 중간의 쉼터에서 쉬고 있는 지우. 따스한 햇볕이 고맙다.

 

4. 고도 낮은 남향의 산 언덕엔 눈이 많이 녹아있다.

 

5. 대청봉이 가까와지니 서쪽으로부터 눈구름이 몰려온다. 서울엔 밤 사이 16.5 센티미터의 눈이 내렸다고 한다. 

 

6. 중청산장이 보이는 전망대에서 지우가 찍어준 컷. 이번 산행엔 무게 때문에 딸 소유의 미러리스 카메라 올림푸스 팬을 가져왔다.

 

7. 대청봉이 가까워지면 식생도 특이해진다.

 

8. 싸락눈이 세차게 얼굴을 때리는 가운데 어렵게 남긴 인증샷.

 

9. 이층 침상을 배정받아 선반에 대충 짐을 올려놓는다.

 

10. 지우에게는 불편한 잠자리였지만 훗날 생각해보면 좋은 경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