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설악산 미륵장군봉 코락길과 별을따는소년들 릿지 등반 - 2012년 8월 10일, 11일

빌레이 2012. 8. 12. 21:15

열대야가 보름 이상 지속되니 온몸에 생기가 빠지는 것 같다. 아무래도 설악의 기운을 받아야 이 여름을 날 수 있을 것 같아 일박이일 등반을 계획한다. 금요일 새벽에 청담동의 정신이네 집에 집결하여 장수대로 향한다. 기송 형, 정신, 은경, 나, 이렇게 넷이서 오붓하게 팀을 이룬다. 오전 9시가 못 된 시각에 어프로치를 끝내고 미륵장군봉 코락길과 타이탄길 초입에 도착한다. 이미 네 사람으로 구성된 다른 한 팀이 체게바라길로 등반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우리 친구들과는 등산학교 강사 시절부터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던 기송 형과 참으로 오랜만에 함께 설악에서 등반할 수 있으니 감개가 무량하다. 미륵장군봉은 동양화 병풍처럼 펼쳐진 몽유도원도 릿지와 골짜기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깍아지른 직벽으로 이루어진 몽유도원도 절벽을 시종일관 바라보며 등반할 수 있으니 풍광이 일품이다. 풍경도 좋고 함께 등반하는 자일파티도 믿음직하니 난이도가 높다해도 안전하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기송 형이 선등을 서고, 내가 쎄컨, 다음이 은경이, 라스트는 정신이가 맡는다. 선등자인 기송 형의 안정된 오름과 후등자를 배려하는 세심한 리딩 덕택에 등반이 즐겁다. 실력 좋은 정신이가 라스트를 듬직하게 맡아주어 등반 내내 처음과 끝이 편안하니 네 사람 모두 물 흐르듯 자연스런 호흡 속에 즐겁고 안전한 등반이 이어진다. 내게는 최근에 오른 여느 등반에 비해 쉽지 않은 난이도였으나 마음이 편하니 두려움은 사라지고 안전하게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미륵장군봉의 코락길은 슬랩과 페이스, 크랙, 침니, 오버행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어 등반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코스이다. 아래에서 보면 울퉁불퉁한 바위 표면 때문에 홀드가 양호해 보이지만 막상 붙어보니 자세도 잘 안 나오고 홀드도 잘 보이지 않았다. 오버행 구간의 크럭스에선 먼저 오른 기송 형님의 재치로 적절한 곳에 슬링으로 레더와 홀드를 설치한 까닭에 비교적 어렵지 않게 돌파할 수 있었다. 기송 형이 전에 왔을 땐 그 구간에서 앞 팀이 정체되는 바람에 두 시간을 기다렸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팔힘이 약한 나와 은경이에겐 어려운 오버행이어서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잠깐 들었으나 올라선 후의 만족감은 그만큼 컸다.

 

전체 8 피치로 이루어진 코락길 정상에 서니 안전하게 올랐다는 편안함 때문인지 배고픔이 찾아든다. 간단한 행동식으로 점심을 대신하고 올라온 길로 피치 하강을 한다. 60 미터 자일 두 동을 연결하여 네 차례로 나누어 조심조심 하강한다. 하강하면서 보니 등반 루트가 만만치 않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다. 자일을 회수하고 계곡물에 간단히 탁족하니 등반의 만족감이 배가된다. 몽유도원도 직벽을 오르는 이들을 구경하면서 등반 후의 여유를 만끽하는 재미가 좋다.

 

정신이의 제안으로 설악동야영장에 여장을 푼다. 정신이는 토왕골에 있는 별을따는소년들 릿지길의 아름다운 풍광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다음날 등반 코스를 그곳으로 정한 것이다. 이태리 음식을 배우고 있는 정신이의 봉골레 솜씨자랑으로 시작해 삼겹살에 발레타인을 곁들인 우리의 만찬은 화려했다. 런던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인 한일전을 새벽에 보기로 하고 설악의 별을 보며 잠자리에 든다. 새벽 세 시 반에 일어나 정신이의 차에 있는 조그만 화면의 DMB에 네 사람이 집중하면서 축구를 본다. 박주영의 첫 골 장면에선 함성을 지르며 하이파이브를 나누다 보니 옆 텐트의 사람이 찾아와 덩달아 같이 보기도 하는 진풍경도 연출된다. 결국 구자철의 골을 보태 2대 0으로 완벽한 승리를 이루니 기분이 한껏 고조된다.

 

축구가 지면 등반을 하지 않기로 정신이와 약속했는데 이기는 바람에 우리는 축구가 끝나자마자 김치찌개를 끓여 먹고 토왕골로 향한다. 비룡폭포 앞에서 토왕골로 오르는 길 입구에서 공단 직원이 막아선다. 우리의 암장허가서를 확인해보더니 코스 변경을 재차 허가 받아야 통과시켜줄 수 있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미리네산장까지 후퇴하여 수완 좋은 정신이가 공단사무실에 전화하여 코스 변경을 허가받는다. 다시 토왕골로 올라 계곡에서 땀을 식히니 시원한 기분이 찾아든다. 토왕골 깊숙히 자리한 별을따는소년들 릿지에 도착하니 한 팀이 우리 바로 앞에서 막 등반을 시작한다.

 

릿지길 3 피치에 위치한 크럭스 부분에서 정체가 심해지니 우리는 하산을 결정한다. 모두 전 날의 미륵장군봉 등반으로 어느 정도의 만족감이 쌓인 상태이고 계곡의 시원함과 산장에서의 동동주 한 잔에 대한 유혹이 심했기 때문에 남은 피치의 릿지 등반에 대한 미련은 전혀 남지 않았다. 계곡의 신선한 물과 설악의 맑은 기운을 온몸에 받고 왔다는 뿌듯함이 마음 깊숙히 내려 앉은 행복하고 추억 어린 설악산에서의 일박이일의 등반이었다. 

 

1. 미륵장군봉 등반은 등반 내내 맞은편 몽유도원도 절벽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2. 미륵장군봉은 올라갈수록 등반의 난이도는 높아진다.

 

3. 미륵장군봉 코락길 출발 직전의 기념사진. 기송 형님이 오랜만에 함께 하셨다.

 

4. 기송 형의 첫 피치 선등. 형의 선등은 후등자를 편안하게 해주는 배려심이 돋보인다.  

 

5. 우리보다 한 발 앞서 출발한 팀이 체게바라길을 오르고 있다.

 

6. 바위 표면이 울퉁불퉁하여 홀드가 많을 것 같은데... 보기와는 달리 그리 쉽지 않은 루트이다.

 

7. 선등자인 기송 형의 빌레이에 집중하고 있는 정신이와 은경..

 

8. 기송 형은 등반을 자주 못했다고 하셨는데도 안정적인 리딩을 보여주신다.

 

9. 코락길을 오르는 우리팀과 체게바라길을 오르는 앞 팀이 거의 같은 속도로 등반한다.

 

10. 오를수록 난이도가 높아지니 저절로 빌레이에 집중하게 된다.

 

11. 오버행과 침니, 페이스 등반이 이어지는 코락길 후반부는 상당한 난이도를 보인다. 기록상으론 난이도가 5.10a..

 

12. 침니 형태의 직벽 구간을 선등 중인 기송 형.

 

13. 8 피치 정상엔 아름다운 소나무가 굳건히 서있다. 그 나무 가지 아래로 몽유도원도가 펼쳐진다.

 

14. 하강길에 접어든다. 피치 하강은 항상 신중해야 한다.

 

15. 계곡에 내려서서 올려다본 미륵장군봉 전경..

 

16. 가뭄으로 수량은 적지만 흐르는 계곡물만 보아도 시원하다.

 

17. 토왕골의 별을따는소년들 릿지 출발점..

 

18. 첫 피치 중간에서 릿지길을 올려다보고 있는 기송 형..

 

19. 별을따는소년들 릿지길 초반부는 비교적 쉬운 난이도..

 

20. 이 곳 크럭스에서 앞 팀이 정체되는 바람에 하산을 결정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