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존 러스킨의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Unto This Last)>

빌레이 2011. 8. 5. 21:39

"일해도 먹고살 수 없는 사람 382만명, 이대로 간다면 한국 자본주의는 절망"

오늘 아침 조간신문 1면에 실린 기사의 헤드라인이다. 우리 나라의 노동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인간들이 모여 사는 세상이라기 보다 약육강식의 단순 논리가 지배하는 동물들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가끔 든다.

경쟁을 피해갈 수는 없겠지만 약자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냉혹한 현실은 천박한 자본주의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서 슬프다.

오늘날 우리가 안고있는 자본주의적 폐해를 이미 백여년 전에 예측한 이가 바로 러스킨이다.

 

러스킨의 명저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는 건전한 경제 체제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통찰력 있는 혜안을 제시한다.

러스킨 이외의 경제학에서는 인간성에서 비롯된 사회적 애정을 우발적이고 교란적인 요소로 생각하여 변수에서 제외한다.

인간의 욕망과 탐욕은 한결같은 요소이므로 인간을 욕심 가득한 기계적 존재로 생각하여

부를 축적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제학인 것이다.

하지만 러스킨은 기존 경제학이 배제해 버린 사랑, 정직 등과 같은 인간의 정신적 요소와 품성을 중요한 변수로 여긴다.

 

책은 네 편의 연작 논문이다. 제1편인 <명예의 근원>을 보면 인간 세상이 동물의 세계와 다름을 직시할 수 있다.

군인과 살인자의 극단적인 예를 통해서 사람을 죽이는 같은 일일지라도 전혀 다른 점이 존재함을 명쾌하게 분석해낸다.

군인이 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남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살해당하는 것이라는 러스킨의 고찰은 천재적이다.

부하들이 장군을 사랑하지 않는데 전투에서 승리한 적은 거의 없다는 예에서 인간 세상은 애정을 배제하고 생각할 수 없음을 설파한다.

 

제2편 <부의 광맥>에서는 부의 본질을 논한다. 부의 본질은 원래 인간에 대한 지배력에 있다고 러스킨은 주장한다.

돈의 주된 가치와 효능은 인간에 대한 지배력이기 때문에 명목상의 부는 그 지배력을 상실할 경우 본질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제3편 <대지의 심판자여>에서는 성경에서 근원을 볼 수 있는 경제학을 펼쳐낸다.

부정한 수단으로 얻은 부의 궁극적인 결과는 오로지 죽음뿐이라는 것을 합리적으로 주장한다.

"거짓말하는 혀로 재산을 모으는 것은 이리저리 흩날리는 안개 같고,

그것을 구하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다."와 같은 성경 구절을 자주 인용한다.

정부와 협동은 모든 사물에서 생명의 법칙이고, 무정부와 경쟁은 죽음의 법칙이라고 러스킨은 말한다.

빈자가 부자의 재산을 침해할 권리가 없는 것처럼 부자 역시 빈자의 재산을 침해할 권리가 없다는 사실도 공인되기를 바란다.

 

제4편 <가치에 따라서>는 경제학에서의 교환가치를 면밀하게 분석한다.

러스킨은 경제학이 인간의 능력과 의향에 관한 학문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도덕적인 고찰은 경제학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기존의 이론을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경제적으로 가치있는 것이란 생명에 유익한 것이어야 한다. 생명을 제외하고는 어떤 부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생명에는 사랑과 환희와 감동의 힘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금전적 이득에만 몰두하는 사람들은 제 그림자의 머리를 밟으려고 애쓰는 어린애들과 비슷하다는 말은 흥미롭다.

금전적 이득이란 진정한 이득인 인간애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옮긴이 김석희 씨의 해설에 의하면 러스킨의 경제학은 인도주의적 경제학이다.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보다 7년 뒤에 발표된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인간의 유물성(唯物性)에 입각했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적 경제학자들과 그 전제를 같이 한 반면,

러스킨은 인간의 유심성(唯心性)에 기반했다는 점에서 그 출발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인간의 유심성이란 영성 내지는 사회적 애정을 뜻하는 말이다.

그는 자본주의를 속류 경제학, 사회주의를 파괴와 죽음의 경제학으로 규정하고, 대안으로 인도주의적 경제학을 제시한 것이다.

 

천천히 끝까지 읽어보았지만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의 내용을 내가 다 이해했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러스킨의 사상을 어렴풋이나마 조금 느낄 수 있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정직한 말일 듯싶다.

앞으로 새로운 경제학 교과서를 배우고 익히는 마음으로 여러 차례 다시 봐야 할 책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천박한 자본가들이 판치는 정글 같은 작금의 상황에서 한줄기 맑은 물소리를 듣는 것 같은 시원함을 느꼈다.

대기업과 부동산 재벌들의 탐욕이 도를 넘은 것 같은 우리의 경제적 현실에서 건전성을 회복하고

인간 사랑의 고귀한 가치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 러스킨의 사상은 등불과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다.  

 

책 말미에 나와 있는 러스킨의 다음 글귀가 뇌리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우리에게 필요한 인물의 본보기는, 세상에서의 출세 여부는 하늘에 맡긴 채, 자기는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가기로 작정하고,

더 많은 부보다는 더 소박한 쾌락을, 더 높은 지위보다는 더 깊은 행복을 추구하기로 마음먹고,

마음의 평정을 제일 중요한 재산으로 삼아, 평화로운 생활에 대한 무해한 자부심과 평온한 추구에서 명예심을 느끼는 사람들인 것이다."  

 

  

1. 작년 5월, 런던에 갔을 때 국회의사당 앞에서 본 시위대 모습... 우리 나라도 천박한 자본주의에 대한 반성이 필요한 시점..

 

2. 러스킨의 사상은 성경처럼 생명력 있을 거라는 생각..

책 제목은 마태복음서 내의 예화인 포도밭 주인이 나중에 온 사람에게도 동등한 보수를 지불했다는 것에서 유래했다고...

 

3. 러스킨의 책은 평범한 변호사 간디를 인도의 영웅 마하트마 간디로 만들었다고... 해서 예전에 읽었던 책을 꺼내보았다..

 

4. 이십년이 넘은 책에서는 낡은 책 특유의 냄새가 난다... 오래된 책갈피에서 옛날을 회상하는 재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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