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The Art of Travel)>

빌레이 2011. 7. 2. 22:16

알랭 드 보통의 여행 에세이 <여행의 기술>은 참 괜찮은 책이다.

여행을 어떻게 하라는 지침서나 단순한 여행 안내서는 아니다.

깊이 있는 여행이 무엇인지의 전형을 보여주는 지식인의 심도있는 고찰이자 훌륭한 본보기라 생각된다.

원전의 제목은 "The art of travel"이니 역자는 "art"를 통상적인 '예술'이 아닌 '기술'로 번역한 셈이다.

여기에서 기술은 단순한 테크닉이 아닌 지식이나 예술적 기반 위에 서 있는 좀 더 차원 높은 개념일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은 도입부에 나타나 있는 저자의 다음 글귀로부터 어느 정도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여행할 장소에 대한 조언은 어디에나 널려 있지만,

우리가 가야하는 이유와 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듣기 힘들다.

하지만 실제로 여행의 기술은 그렇게 간단하지도 않고

또 그렇게 사소하지도 않은 수많은 문제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여행의 기술>이 특별한 이유는 저자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기억들을 여행과 연관짓는 기행문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행의 기술>을 읽다보면 그 속에 스며들어 있는 알랭 드 보통의 독서량과 지식 수준이 정말 대단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현학적이거나 저자 자신을 드러내려는 의도가 전혀 감지되지 못할만큼 절제되어 있고 자연스러운 점이 좋다.

역사 속의 위대한 여행 선배들의 자세를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저자의 겸손함이 교훈적이다.

여행 장소마다 떠오르는 역사 속의 안내자들을 설정하고 그들의 시각과 사상을 자연스레 소개하는 품격있는 교양서이기도 하다.

보들레르, 훔볼트, 플로베르, 워즈워드, 고호, 욥, 러스킨 등을 안내자로 삼아 그들과 동행하는 듯한 여행은 정말 꿈만 같을 것이다.

 

멀리 떠나는 것 자체를 아름답게 여겼던 보들레르, 이국적인 것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찼던 플로베르,

지상의 모든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불탔던 훔볼트, 스코틀랜드의 레이크디스트릭트에서 자연의 위대함을 설파했던 워즈워드,

남프랑스의 프로방스에서 회화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던 고호, 진정한 아름다움을 깨닫기 위한 존재론적 사고를 보여준 러스킨....

이들의 위대한 사상과 철학의 일면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여행의 출발과 귀환점은 저자가 살고 있는 런던의 해머스미스 지역이다.

작년 오월 런던을 여행할 때 지하철역 간판에서 해머스미스를 본 기억이 있어 무척 반가웠다.

책 속에 종종 등장하는 알프스 지역에 관한 글은 작년 유월의 알프스 트레킹을 연상시킬 수 있어 유쾌했다.

특히, 워즈워드가 고향 스코틀랜드의 레이크디스트릭트를 떠나 알프스에서 느낀 감흥을 노래한 시와

존 러스킨이 샤모니를 비롯한 알프스 산군을 여행한 부분은 샤모니의 러스킨 바위가 생각나 매우 인상적이었다. 

사물을 심도 있게 관찰하기 위한 방법으로 데생과 글쓰기의 중요성을 주창하고,

여핼할 때에도 스케치와 글로 대상을 묘사할 것을 권했던 러스킨의 사상은 여러 가지로 강한 여운을 내게 남겨주었다.

시나이 사막과 시나이산을 여행하면서 자연스레 떠오르는 모세를 안내자로 삼지 않고,

성경에서 고난받는 사람의 대명사로 통하는 욥을 생각하면서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알랭 드 보통의 시각은 겸손하다. 

 

우리가 책을 많이 읽고, 고전을 중시해야 하는 이유를 <여행의 기술>만큼 강하게 보여주는 글은 드물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보들레르, 훔볼트, 러스킨 등에 대해서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이 중에서도 가장 매력적인 사상을 보여준 존 러스킨에 대해서 읽어볼 생각으로 책 몇 권을 주문해둔 상태이다.

알랭 드 보통과 같은 생각의 깊이를 갖출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겠다는 힘을 준 좋은 책 <여행의 기술> 때문에 주말이 행복했다. 

       

 

1. 작년 오월 런던 여행 시 도착 첫날 숙소 근처에서... 거리의 이층버스만 보아도 여기는 런던.. 

 

2. 영국은 유럽 대륙과 달리 좌측 차선으로 차가 달린다... 그래서 횡단보도 건널 때도 조심해야 하는데...

 

3. <여행의 기술> 저자인 알랭 드 보통의 주거지인 해머스미스 지역으로 가는 지하철 푯말..

 

4. 소설가 플로베르는 이국적인 것을 동경하여 이집트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5. 훔볼트는 지상의 모든 것에 대한 호기심이 남달랐던 위대한 탐험가이자 자연과학도..

 

6. 알프스에서의 눈사태를 그린 삽화... 알프스에서는 자연의 위대함을 저절로 깨닫게 된다..

 

7. <여행의 기술>을 읽으면서 건진 큰 수확 중의 하나는 존 러스킨의 사상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는 것..

 

8. 존 러스킨은 사물을 관찰하고 여행의 질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스케치와 글쓰기를 강권한다..

 

9. 참 좋은 마음의 양식을 섭취한 것 같은 뿌듯함이 느껴지는 좋은 책..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어령 선생의 <지성에서 영성으로>  (0) 2011.07.26
소소한 즐거움  (0) 2011.07.16
존 뮤어의 <마운틴 에세이>  (0) 2011.06.18
휴식이 필요해  (0) 2011.06.17
엄마를 부탁해  (0) 2011.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