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트레킹

프랑스 샤모니 알프스 산행기 (1) - 2010년 6월 5일

빌레이 2010. 6. 21. 16:01

 

새벽 4시 반, 벨지움 루벤의 숙소 문을 나선다. 5시 9분에 루벤역에서 출발하는 브뤼셀 공항 행 기차를 탄다.

썸머타임이 적용된 상태에서도 5시 정도면 주위가 환해진다. 공항에 도착하여 보안 검색을 통과한다. 등산화 때문에 좀 지체된다.

6시 40분발 브뤼셀 항공에 몸을 맡긴다. 드디어 알프스로 향하는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다.

 

유월에는 꼭 알프스에 간다. 이 계획은 오래 전부터 내 머리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알프스 트레킹을 위해 꾸준히 준비해왔다.

축구 선수가 4년 마다 열리는 월드컵을 준비하듯이 나는 알프스 트레킹을 마음 속에 품고 있었다.

알프스 트레킹 관련 서적과 인터넷 사이트를 시간 날 때마다 뒤적였다.

산에서 가고 싶은 곳을 마음껏 갈 수 있는 체력과 등산 지식을 축적해가는 것도 결국은 알프스 트레킹을 향하고 있었다.

 

인터넷을 통해 비행기표와 호텔을 모두 예약했다.

현지 교통편과 트레킹 루트는 운동 선수가 이미지 트레이닝 하듯 머리 속에 여러 번 입력했다.

하지만 현지에 도착하면 생각하지 못한 여러 가지 상황이 발생하리란 것도 잊지 않았다.

그간의 여행 경력으로 책과 인터넷 상의 지식이 현실과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많이 체험했기 때문이다.

 

비행기가 제네바에 거의 도착할 무렵 창밖으로 하얀 알프스 영봉들이 보인다. 가슴이 뛴다.

아름다운 레만호수를 한참 따라가다 비행기는 안전하게 착륙했다.

제네바 공항에서 샤모니는 하루에 한 두 번 다니는 버스를 타는 것이 빠르다.

하지만 그 버스는 내가 도착하자마자 떠나고 없었다. 8시 정각에 떠나는 그 버스를 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좀 실망이다.

그러나 난 기차가 더 좋다. 좀 돌아가더라도 기차 여행이 여러 모로 내 체질에 맞다.

 

제네바 공항에서 탄 스위스 기차는 레만호수 변에 위치한 로잔, 몽트뢰를 거쳐 마르티니에 도착한다.

창밖 풍경이 아름다워 두 시간 가량의 기차 여행이 짧게만 느껴진다. 마르티니에서 등산전차로 갈아탄다.

깍아지른 절벽과 아스라한 계곡을 바라보며 가는 등산전차는 이동 수단이라기 보다 관광용에 가깝다.

철도 중간이 공사 중이어서 피노역에서 발로르치네역까지는 셔틀버스가 연결한다.

프랑스와 스위스의 국경이 유명한 에모송댐 부근에 있다. 프랑스 쪽에서 넘어올 때는 여권을 검사한다.

 

발로르치네역에서 샤모니몽블랑역까지는 프랑스 등산전차 몽블랑익스프레스를 이용한다.

허긍열 씨의 책에서 보았던 그 몽블랑익스프레스에 탄 것이다.

시속 40 킬로미터를 넘지 않는 속도로 움직이는데 왜 고속이란 뜻의 익스프레스란 이름이 붙여졌을까를 생각해본다.

실제 이 기차가 통과하는 지형을 보니 익스프레스라는 말이 자연스럽다.

걸어서 간다거나 다른 교통 수단을 이용한다면 등산전차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익스프레스란 말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스위스 등산전차의 무슨 무슨 익스프레스도 같은 의미일 것이다.

 

샤모니몽믈랑역 바로 옆에 예약한 호텔이 있어서 편했다.

원래는 오후 4시 체크인인데 1시경에 도착한 내게 방을 내주는 친절을 베푼다.

잠깐 동안 샤모니 시내 지형을 가늠한 뒤 산으로 향한다. 첫 날이니 가볍게 서 너 시간 코스의 하이킹을 계획한다.

꽃으로 단장된 사진이 인상적이었던 플로리아 산장으로 향한다.

날씨가 쾌청하여 맞은편 능선의 몽블랑 산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아르브 강이 시내를 가로지르는 샤모니 시가지는 스위스에서 넘어오는 북동쪽에서 이태리 방향인 남서쪽으로 길게 뻗어있다.

아르브강의 남쪽이랄 수 있는 방향에 드류, 에귀디미디, 몽블랑 등의 주릉이 자리한다.

그 맞은편 북쪽 능선은 붉은침봉군부터 브레방 전망대까지가 샤모니를 감싸고 있다.

첫 날 가는 산길은 위치 상으로 붉은침봉군 아래에 있다.

맞은편 능선의 드류, 에귀디베르트, 메르드글라스 빙하, 그랑드조라스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프랑스어로 에귀(Aiguille)는 바늘이란 뜻이다.

몽블랑 산군의 봉우리들에 에귀란 표현이 많은 것은 단순히 피크(peak)라기 보다

바늘 같이 뾰족한 침봉으로 부르는 것이 더 자연스럽기 때문인 것 같다.

프랑스어는 독일어와 달리 연음법칙과 정관사나 전치사의 사용이 복잡해 스펠링과 발음이 상당히 달라 익숙해지기 쉽지 않다.

 

플로리아 산장에 도착하니 과연 책에서 본 것 같이 꽃이 만발하고 전망도 훌륭하다.

맥주 한 잔을 시켜 놓고 여주인에게 산장이 예쁘다고 칭찬해주니 사계절 모습을 담은 앨범까지 갔다준다.

저 멀리 보이는 몽블랑과 그 아래에 아늑하게 자리 잡은 샤모니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무엇보다 바로 건너편에 위치한 멋진 봉우리 드류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드류는 샤모니 침봉군 중에서 내가 가장 보고 싶었던 봉우리다.

 

플로리아 산장에서 하산할 계획으로 올라왔는데 내려가기 싫었다.

5시 전에만 하산을 시작하면 일몰 안에 호텔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내친김에 프레제르(Flegere, 1877m) 전망대까지 올라보기로 했다.

샤모니에서 플로리아 산장까지가 산책로 같은 길이었다면, 플로리아에서 프레제르까지는 본격적인 등산길이었다.

다리가 빡빡한 것이 오랜만에 산 타는 느낌이 정말 좋았다.

프레제르 전망대에서의 조망은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환상 그 자체였다.

드류와 메르드글라스 빙하,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그랑드조라스까지 선명하게 잘 보였다.

 

산길을 더 올라가고 싶은 마음 간절했으나 첫 날이니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머리 속에 지형지세가 확실해지니 루트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올라 온 길을 그대로 내려가기 보다는 쁘라 마을로 하산하여 아르브 강변 산책로를 따라 샤모니 시내로 들어가는 경로를 택한다.

샤모니 시내에 도착하니 7시가 넘었다. 5 시간이 넘는 길이의 등산이었다.

아르브 강가 벤치에서 음료수 마시며 돌아보는 하루가 길다.

알프스 트레킹 첫 발을 상쾌하게 내딛은 기분에 마음 가득 뿌듯함과 감사함이 밀려왔다. 

 

 1. 산행하는 내내 숲 사이로 볼 수 있는 몽블랑 산군의 침봉들... 에귀드... 에귀는 불어로 바늘... 드는 영어의 of 같은 전치사..

 

 2. 맞은편 골짜기는 메르드글라스 빙하... 가운데 아스라히 보이는 집은 몽탕베르 등산전차역..

 

 3. 프레제르 전망대에서 계속 이어지는 산길.. 시간만 있으면 계속 저 길을 걸었을 것이다..

 

 4. 산길 중간에 숲 사이로 볼 수 있는 풍경... 산 아래는 여름, 산 위는 한겨울..

 

 5. 산악마라톤 하는 이들을 종종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의 체력은 우리와 차원이 다른 것 같다..

 

 6. 하산 지점으로 잡은 쁘라 마을... 멋진 골프장도 있다..

 

 7. 몽블랑 산군의 봉우리들은 바늘 같이 뾰족해서 침봉(Aiguille)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

 

 8. 저렇게 험준한 산에서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이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산을 즐기는 방법이 다른 것 같다..

 

 9. 플로리아 산장의 조망... 샤모니 시가지와 몽블랑 산군이 한 눈에 보인다..

 

 10. 플로리아 산장 안에서 창문을 통해 바라본 드류... 드류는 어디서 보든지 멋진 기상을 뽐낸다..

 

 11. 플로리아 산장에서 프레제르 전망대에 이르는 산길은 걷기 좋은 오솔길이다... 이 곳을 지나면 본격적인 오르막이다..

 

 12. 프레제르 산장이 보이니 거의 다 왔다... 생각보다 멀게 느껴진다... 로프웨이가 있는데 비수기라서 운행하지 않고 있다..

 

 13. 프레제르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산장과 맞은편 능선... 골짜기 너머에 병풍처럼 서 있는 것이 그랑드조라스..

 

 14. 프레제르 전망대 뒤쪽 능선... 눈이 녹으면 산길을 계속 이어서 락블랑까지 갈 수 있다..

 

15. 샤모니 북동쪽에 위치한 마을인 쁘라에 있는 아담한 교회... 드류를 배경으로 잡고 싶었는데 구름에 가렸다..

 

 16. 쁘라 마을을 흐르는 맑은 시냇물... 아르브 강의 여러 지류 중 하나..

 

 17. 아르브 강변을 따라 쁘라 마을에서 샤모니까지 이어지는 산책로... 사람과 자전거만 다닐 수 있으니 좋다..

 

 18. 샤모니에 도착하니 어느덧 저녁 때가 되었다... 샤모니를 흐르는 아르브 강은 세차게 흐른다..

 

 19. 호텔에서 샤워하고 개운한 몸과 마음으로 레스토랑에 간다... 저녁은 뭘 먹어도 꿀맛이다... 이 날 메뉴는 이태리 음식 파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