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트레킹

프랑스 샤모니 알프스 산행기 (2) - 2010년 6월 6일

빌레이 2010. 6. 22. 17:52

 

샤모니 - 에귀디미디 - 엘브로네르 - 에귀디미디 - 쁠랑드레귀 - 샤모니

 

새벽에 잠이 깨자마자 발코니로 나가 하늘을 본다. 에귀디미디 전망대에 오르기로 마음 먹은 날이기 때문이다.

2002년에 에귀디미디 전망대에 올랐을 때는 구름 속이어서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똑같이 비싼 돈 들여 케이블카 타고 올라가서 느끼는 만족감이 날씨에 따라 천지 차이가 난다.

다행히 하늘은 청명하고 새벽달이 침봉 위를 지키고 있다.

불어로 미디(midi)는 시간을 나타낼 때 정오를 의미하지만 방향을 나타낼 때는 남쪽을 뜻한다.

그러니 에귀디미디(Aiguille du Midi)는 샤모니 남쪽의 침봉이란 뜻일 게다.

 

조금 지나니 일출이다. 몽블랑을 덮고 있는 하얀 눈이 반짝인다.

오늘은 좋은 조망이 허락될 것 같은 기대감에 서둘러 준비한다. 아침을 먹자마자 케이블카 역으로 향한다.

첫 차는 8시 10분 출발이다. 너무 일찍 왔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알파인 등반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장비들이 장난이 아니다. 모두 눈밭을 거닐 수 있는 방수 등산화와 등산복 차림이다.

자일과 피켈, 설피, 아이스바일, 퀵드로, 얼음도끼 등등의 빙벽 장비들 일색이다.

 

첫 케이블카에 삼십 여명이 탄다. 나와 미국 콜로라도에서 왔다는 4인 가족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알파인 등반가들이다.

미국 아저씨가 눈이 동글해진 표정으로 놀랍다는 얘기를 내게 한다.

중간 기착지인 쁠랑드레귀를 거쳐 3777 미터인 에귀디미디 전망대에 도착한다.

전망대는 여러 곳에 데크를 설치해 놓고 다리로 연결해 놓았다.

이 곳에서 다시 엘리베이터를 한 번 타면 해발고도 3842 미터에 있는 가장 높은 전망대에 이른다.

 

에귀디미디에서의 조망은 훌륭했다. 구름이 간간히 보여 그 신비함을 배가시켰다.

몽블랑, 돔드구떼, 몽블랑드따귈 등의 봉우리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미국 가족과 나만 빼고 모두 눈밭으로 등반 나가는 바람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친해져서 같이 구경하고 사진도 찍어줬다.

내가 8년 전에는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고 하니 자기네들은 아주 행운아들이라고 마냥 기뻐한다.

 

에귀디미디에서 한참을 노닐다보니 어느새 관광객들이 많아졌다.

이제 이태리 엘브로네르(Helbronner, 3466 m)와 에귀디미디를 왕복하는 케이블카에 오른다.

하얀 설원과 크레바스가 입을 벌리고 있는 빙하 위를 지나가는 여행이 새롭다.

새로운 세계에 들어온 것 같은 환상과 평온함을 동시에 느낀다.

프랑스와 이태리 국경이 엘브로네르 전망대를 지난다. 페인트로 표시한 국경을 지나다니는 것도 재밌다.

하지만 전망대는 거의 구름에 덮여있다.

 

한적한 엘브로네르 전망대 카페에서 음료수를 한 잔 마신다.

이태리 꾸르마유에서 올라온 사람들 말이 그 쪽은 구름 속이라 한다.

프랑스 쪽은 아주 청명하다고 말해주니 내게 운이 좋다고 하며 축하해준다.

아주 잠깐 동안 구름이 살짝 걷히는 틈을 타서 사진을 몇 컷 담고 다시 에귀디미디로 돌아온다.

샤모니에서 바라본 몽블랑은 부드러운 설릉인데 꾸르마유 쪽은 아주 험준한 절벽이다.

산의 모습이 보는 방향에 따라 변화무쌍하다.

 

쁠랑드레귀 역에서부터 트레킹을 시작한다.

몽탕베르 역으로 산허리를 트레버스하는 루트를 머리에 그리며 쁠랑드레귀 산장까지 걸어간다.

중간에 패러글라이딩 활강장이 있고, 스키를 타며 하산하는 친구들도 만난다.

샤모니에서 걸어 올라오는 이들도 있다. 산장에서 잠시 쉰 뒤 몽탕베르 쪽으로 길을 잡는다.

한참 가다보니 길이 끊겼다. 눈길이다. 전체적으로 응달진 곳이 많은 사면이다. 다시 길을 돌려 산장으로 되돌아온다.

 

샤모니로 하산하는 길을 택하기로 정하고 길을 잡는다. 내려가는 길도 눈에 선명하고 별로 어렵지 않게 보인다.

하지만 중간 중간 눈이 남아 있다. 눈이 쌓여 있으면 길을 찾기가 힘들다. 할아버지 한 분이 앞서 가신다.

그 길을 따라 가는데 너덜 길이 까다롭다. 카메라를 배낭에 넣는 과정에서 시계를 분실한다.

12년 동안 손목을 지켰던 물건이라 아까운 마음에 기분이 좋지 않다.

 

기분 나쁜 일은 오래 기억하면 안 된다. 카메라 떨어뜨리지 않은 게 다행이라 여기고 산행을 즐기려 마음 먹는다.

경사가 급한 사면을 내려가도 다리가 팍팍하지 않다. 산길은 완만하게 지그재그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몽블랑에서 흘러내리는 보쏭 빙하가 녹아 내리는 웅장한 물소리를 들으며 내려가는 산길이 좋다.

샤모니에 가까워지니 전나무 숲길이다. 눈 짐작으로 두 시간 정도면 하산할 줄 알았는데 세 시간 반 정도가 소요된다.

올라오는 사람들이 걸렸다는 시간과 별반 차이가 없다.

산길이 구절양장으로 돌아가는 길이고, 많이 걷고 싶어서 내가 좀 더 먼 경로를 택한 때문이다.

 

샤모니에 도착하여 시내를 거닐며 하루를 돌아본다. 꿈만 같다.

몽블랑 주변 산군의 아름다운 자태를 선명하게 보여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기도가 절로 나온다.

하산길에서의 방심을 반성하고 내일은 하루 종일 두 발로만 산을 타는 계획을 머리 속에 그려본다.

 

 

 1. 새벽 호텔 발코니에서 바라본 하늘... 새벽달과 침봉들이 선명해서 기대감을 갖는다..

 

 2. 일출 빛을 받아 환하게 반짝이는 몽블랑... 몽블랑이 최고봉임을 증명하는듯... 가장 먼저 햇빛을 받고 있다..

 

 3. 에귀디미디 케이블카역의 기다림...

 

 4. 첫 케이블카에 동승한 산객들... 알파인 등반가들이 대부분...

 

 5. 가운데 4인 가족은 미국 콜로라도에서 왔다고 한다... 어느 순간 등반가들은 설원으로 사라지고 나와 이 네 명만 남았다..

 

 6. 등반가들이 설원으로 향하는 통로... 장비를 점검하고...

 

 7. 저 문을 나서면 곧바로 설릉이다... 몇 걸음 내디뎌보다가... 살 떨려서 돌아왔다..ㅎㅎ

 

 8. 설릉을 걸어내려가는 등반가들... 관광객들은 안전한 데크에서... 아래 케이블카는 이태리쪽으로 가는 것...

 

 9. 하얀 설원을 누비는 등반길은 어떤 느낌일까... 우리 나라 겨울산에서 느낀 것하고는 많이 다를 것 같다는 생각..

 

 10. 몽블랑 전망대로 올라오는 등반가들의 움직임을 한참 동안 관찰해보았다..

 

 11. 봉우리들 이름을 설명해놓은 안내판이 곳곳에 있어 재미있다..

 

 12. 피톤주드라는 명칭의 바위... 어찌나 아스라하던지... 모양은 독도의 장군바위를 닮은듯..

 

 13. 에귀디미디 전망대는 암반을 뚫은 터널과 봉우리들을 연결한 다리들로 연결되어 생각보다 넓고 구경할 게 많다..

 

 14. 프랑스 에귀디미디와 이태리 엘브로네르 전망대 사이를 오가는 케이블카... 간간히 멈춰서 전망을 즐기게 해준다...

이태리쪽에서 보는 몽블랑은 사뭇 다른 느낌이다..

 

 15. 고도 3842 미터에서 일본 관광객이 찍어준 샷... 고소증세 때문에 처음엔 머리가 띵하다..

 

 16. 케이블카 중간기착지인 쁠랑드레귀역... 이 역을 돌아나가면 산길이 이어진다..

 

 17. 케이블카역을 돌아나와 이어지는 트레킹 시작점... 아직 눈이 곳곳에 남아있다..

 

 18. 산허리를 돌아나가는 길이 몽탕베르역으로 향하는 루트... 중간에 눈이 많아 길을 찾을 수 없어 돌아왔다..

 

 19. 하산길에서 나무를 만나면 많이 내려왔다는 뜻... 나뭇잎의 색깔도 고도에 따라 많이 다르다..

 

  20. 케이블카로 10 여분 걸리는 거리를 돌아 돌아 세 시간 넘게 걸어왔다... 걸어오는 그 길이 더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