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이어 다시 찾은 설악이지만 여전히 설렌다. 육담폭포를 가로지르는 구름다리를 거쳐 비룡폭포 위의 토왕골 깊숙히 거슬러 오르는 발걸음이 상쾌하다. 5년 전 여름날에 비 맞으며 올랐던 '솜다리추억' 루트 초입을 찾아가는 길이다. 예전의 1피치가 2피치로 바뀌고, 계곡에서 출발하는 첫 피치가 새롭게 추가되었다고 하여 오늘은 수정된 개념도에 따라 총 6피치를 등반해보기로 한다. 기석, 은경, 지선, 나, 이렇게 4명이 한 팀을 이룬다.
토왕골에서 가장 인상적인 암봉인 솜다리봉 정상까지 가파르게 이어지는 '솜다리추억'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환상적인 풍광이 압도적인 바윗길이다. 난이도 5.11a로 기록된 4피치를 제외한 다른 피치들은 그리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으나, 다분히 위압적인 이 피치가 도저히 오를 수 없는 거대한 장벽처럼 버티고 서서 초보 클라이머들의 접근을 쉽사리 허락하지 않는다. 나는 이번 등반을 계획할 때부터 이 장벽을 자유등반 방식으로 멋지게돌파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소망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자면, 초반부의 크럭스 구간인 네 번째 볼트 위치가 너무 좌측에 있었다는 게 문제였다. 손홀드는 우측 크랙에 있는데 안정적이지 못한 자세로 좌측 먼 거리의 볼트에 클립해야만 했다. 이 순간 퀵드로를 잡고야 말았고, 완등의 꿈은 물 건너 갔던 것이다. 이후 구간은 그냥 맘 편하게 쉬고 싶은 곳에서 충분히 매달리면서 확보점에 안착할 수 있었다. 5년 전에는 처음부터 인공으로 올랐었는데, 이번엔 자유등반에 도전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내 등반력이 조금은 향상된 것이라 여기며 스스로 위안을 삼기로 했다.
정상에서 하강할 때는 60미터 로프 한 동을 회수하지 못한 채 버리고 와야만 했다. 15미터, 28미터, 28미터, 28미터, 30미터, 이렇게 짧게 끊어서 5번 하강했어야 했는데, 처음 28미터 구간 2개를 단 번에 하강했더니 로프가 중간턱에 걸려서 도저히 회수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설악산에서는 피치별 하강할 때 절대로 욕심내지 않고 짧게 끊어서 여러 차례 반복하는 것이 오히려 더 효율적이란 교훈을 마음 속에 새겼어야만 했다. 순간의 방심으로 값비싼 대가를 치른 셈이다. 그래도 네 명의 악우들이 아무런 부상 없이 모두 안전하게 등반을 마무리하고 일몰 전에 하산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 새벽길을 달려와 전망 좋은 화양강휴게소에서 아침을 먹었다.▲ 비룡폭포로 향하는 숲길이 쾌적했다.▲ 계곡물의 수량이 괜찮아서 육담폭포를 가로지르는 구름다리 주변 풍광이 멋졌다.▲ 폭포를 구경하면서 걷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비룡폭포 아래에서 우리가 등반할 솜다리봉이 선명하게 보였다.▲ 비룡폭포 위의 토왕골 진입로에 올라서면 선녀봉, 솜다리봉, 토왕성폭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어렵지 않게 '솜다리추억' 초입을 찾을 수 있었다.▲ '솜다리추억' 루트의 새로운 등반 시작점에서 올려다 본 솜다리봉. 큰 배낭은 이 곳에 데포해 놓고 올랐다.▲ 등반거리 32m, 난이도 5.10a로 기록된 1피치 초반부를 올라서고 있다. 직벽 우측에 오래된 하켄이 하나 박혀 있었고, 다른 중간 확보물은 전혀 없었다. 피치 중간에 너트 하나와 캠 하나를 사용하여 중간 확보점을 구축했다.▲ 1피치 확보점. 5년 전에는 이 곳에서 등반을 시작했었다.▲ 1피치 확보점은 능선 위에 있고, 뒤로는 노적봉 '4인의 우정' 루트가 훤히 보인다.▲ 좌측으로는 동해바다와 '경원대' 루트를 오르는 등반자들이 보였다.▲ 2피치 초반부를 올라서니 솜다리꽃이 반겨주었다.▲ 2피치는 27미터에 난이도 5.8로 기록되어 있다.▲ 2피치 확보점에서는 우측으로 토왕성폭포가 선명하게 보인다.▲ 3피치는 27미터에 난이도 5.8이다. 3피치까지는 별다른 힘을 쓰지 않고 오를 수 있었다.▲ 3피치 확보점에 올라서면 거대한 장벽처럼 버티고 서있는 4피치가 그 위용을 드러낸다.▲ 자유등반 방식으로 완등해보겠다는 자세로 4피치를 출발한다.▲ 초반부터 완력을 요한다. 세로크랙에 발재밍을 하면서 자세를 잡아보았다.▲ 셋째와 넷째 볼트 위치가 좀 더 오른쪽에 있었더라면 클립하기가 수월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넷째 볼트에서 행도깅한 후로는 맘 편하게 쉬면서 올랐다.▲ 4피치 중간에 하강고리가 있어서 확보하고, 쎄컨을 보던 은경이만 먼저 올라오게 했다.▲ 4피치 후반부는 비교적 홀드가 양호한 크랙이 이어져서 큰 어려움 없이 오를 수 있었다.▲ 4피치 확보점에서 내려다본 장면. 지선씨가 세 번째로 등반 중이고, 기석형이 대기 중인 모습이 아득하게 보인다.▲ 4피치 후반부는 오버행 턱을 넘어서는 구간에서 힘을 한 번 써야만 했다.▲ 4피치 확보점에서 등강기를 이용해 후등자 확보를 보았다.▲ 5피치 초반부를 올라서고 있다.▲ 5피치는 29미터에 난이도 5.7로 기록되어 있다. 자연암벽에서 난이도는 참고사항일 뿐이다. 4피치에서 체력을 소진한 탓인지 몇 구간은 조심스레 올라야 했다.▲ 마지막 6피치를 출발하고 있다.▲ 6피치는 20미터 거리에 난이도 5.7로 기록되어 있다. 정상 직전의 직벽에서 홀드를 잘 찾아야 한다.▲ 솜다리봉 정상에 안착한 순간이다.▲ 솜다리봉 정상에 올라서서 간식을 먹었다.▲ 경원대길을 등반 중인 팀이 코앞에 보였다.▲ 솜다리봉 정상은 토왕골 최고의 전망대인 듯하다. 토왕성폭포의 속살까지 선명하게 잘 보인다.▲ 솜다리봉은 선녀봉으로 이어진다. 예전에 경원대길을 등반하고 선녀봉까지 오른 적이 생각났다.▲ 정상에서의 하강은 이 개념도대로 5회에 걸쳐 하는 게 로프 회수에 좋다. 뒤따르는 등반팀이 없다면, 올라온 루트를 되짚어 하강하는 방법도 괜찮을 듯하다. 하강을 완료하면 등반 시작점으로 귀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걸어서 내려오는 구간을 단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은 정상에서 15미터를 하강했다.▲ 28미터 하강 구간 2개를 단 번에 하강한 것까지는 좋았었는데, 연두색 로프가 중간 턱에 걸리는 바람에 도저히 회수할 수 없었다.▲ 하산길에서 앙증맞은 솜다리꽃을 만날 수 있었다.▲ 낮은 봉우리에 산그늘이 드리워진 시각에 솜다리봉은 여전히 밝게 빛나고 있었다.▲ 토왕골의 들꽃들을 구경하면서 천천히 하산했다.▲ 맑은 계곡물에 탁족도 하면서...▲ 일몰 전에 하산을 완료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