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설악산 미륵장군봉 '체 게바라' - 2026년 5월 30일(토)

빌레이 2026. 5. 31. 21:10

설악은 청아한 물빛 그리움으로 내 마음 한구석에 항상 똬리를 틀고 있다. 어쩌다 보니 작년엔 설악에 가지 못했다. 기다린 시간만큼 설악에 대한 그리움은 커져 있었다. 올해엔 반드시 설악에 자주 가리라 진즉부터 마음을 정했다. 새벽 5시에 서울을 떠난다. 도로 위에서 맞이한 선명한 일출이 설악으로 향하는 길을 축복해주는 듯하다. 한계삼거리에서 눈앞으로 펼쳐진 내설악의 풍광을 대하니 저절로 가슴이 설렌다. 이 나이에 가슴 설레는 대상이 몇이나 될까? 설악은 아직도 나에게 가슴 설렘을 안겨주는 소중한 존재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미륵장군봉 암벽을 향해 접근하는 정겨운 오솔길이 너무나도 반갑다. 청정 계곡물이 흐르는 석황사골 작은 폭포의 아름다움도 여전하다. 평소 주말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한산한 미륵장군봉에서 처음으로 '체 게바라' 루트에 붙어본다. 웅장한 암벽 전체가 시원하게 그늘진 오전 시간에 총 8피치의 멋진 바윗길을 그 어느 때보다 만족스럽게 오른다. 최고 난이도 5.10c에 고도감 쩌는 '체 게바라' 루트를 로프 테이크 한 번 없이 완벽한 온사이트 자유등반 방식으로 완등했다는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 신중을 기해야 하는 피치 하강까지 안전하게 마친 후, 차가운 계곡물에 발을 담근 순간의 쾌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 미륵장군봉으로 가는 오솔길 입구에 전에 없던 표지판이 보였다.
▲ 완만하게 이어지는 전나무 숲속 오솔길이 그리웠다.
▲ 이 이정표에서 직진하면 미륵장군봉, 좌측 릿지로 오르면 '몽유도원도' 루트이다.
▲ 엊그제 내린 비로 인해 석황사골의 작은 폭포가 더욱 아름다웠다.
▲ 평소의 주말이라면 클라이머들로 붐볐을 바윗길 출발점 부근이 한산했다. 오늘은 내가 일착으로 첫 피치에 붙었다.
▲ 1피치는 난이도 5.7에 등반거리가 50미터인 비교적 완만한 슬랩이다. 우측으로 올라온 선등자 분과는 안면이 있어서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 2피치도 50미터 등반거리에 난이도 5.7의 완만한 슬랩이다. 선등하는 동안 볼트 간격이 멀어서 신중하게 오를 수 밖에 없었다.
▲ 3피치는 고정 로프를 따라 우측으로 이동해서 출발한다.
▲ 3피치 출발점 앵커에 '체 게바라' 루트 표시가 돼있다.
▲ 3피치 초반부를 오르고 있다. 등반거리 40미터, 난이도는 5.7.
▲ 3피치부터는 기록된 난이도와 상관없이 경사가 쎄지므로 긴장감이 높아졌다.
▲ 등반거리 40미터, 난이도 5.10a로 기록된 4피치 초반부를 오르고 있다.
▲ 4피치 초반부는 밑에서 보는 것보다 까다로운 구간이었다. 볼트 간격이 짧아서 자유등반을 시도하기에 부담이 적었다.
▲ 4피치부터는 적당히 어려워서 등반의 재미와 만족감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 문제의 5피치 초반부를 오르고 있다. 난이도 5.8에 등반거리 30미터로 기록되어 있으나, 루트 후반부에서 앵커나 중간 볼트가 전혀 보이지 않아서 상당히 애를 먹었다.
▲ 내가 우측의 오버행 직상 크랙을 선택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전체에서 가장 어렵고 쫄깃한 피치가 되었다. 하강하면서 살펴보니 좌측으로 돌아가면 중간 볼트 하나가 있었다. 그런데 아래에서는 이 볼트를 찾기가 어렵다는 게 아쉬운 대목이다.
▲ 나는 5피치를 우측의 오버행 직상 크랙 구간을 선택하여 캠으로 중간 확보점을 만들면서 가장 도전적인 등반을 한 셈이다. 크랙을 올라선 후에야 좌측 아래로 쌍볼트 확보점이 보여서 클라이밍 다운하듯이 트래버스해야만 했다.
▲ 오버행 크랙이 끝나는 지점에 절묘하게 슬링으로 중간 확보점을 구축할 수 있는 구멍이 나타난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 5피치 확보점에서 내려다본 장면이다. 루트 파인딩을 제대로 했다고 하여도 기록된 난이도보다는 어려운 피치인 듯하다. 실제로 우리가 하강할 때 우리 다음 팀의 선등자가 이곳에서 루트를 못찾고 있어서 내가 알려주었다.
▲ 난이도 5.10c에 등반거리 15미터로 기록된 6피치를 등반 중이다.
▲ 볼트가 없는 어려운 오버행 크랙 구간을 오른 직후라서 그랬는지 가장 어렵다는 6피치는 볼트가 잘 보여서 오히려 즐겁게 올랐다.
▲ 물론 밑에서 보는 것보다는 밸런스 잡기가 어려워서 난이도 5.10c가 적절해 보였다.
▲ 가장 짧지만 가장 어려운 6피치를 멋지게 완등한 순간의 기쁨 또한 컸다.
▲ 등반거리 35미터, 난이도 5.10a인 7피치를 등반 중이다.
▲ 7피치 직벽을 올라서니 햇살이 비추기 시작했다.
▲ 7피치 확보점에 도착한 순간이다. 여기서부터 선글라스를 착용했다.
▲ 7피치 확보점에서는 건너편 몽유도원도 릿지 상의 시루떡바위가 나란히 보인다.
▲ 마지막 8피치, 난이도 5.8에 등반거리 25미터. 유일하게 햇살 아래 등반한 피치였다.
▲ 쉬운 구간이라도 끝까지 안전하게 올랐다.
▲ 마지막 종착점이 보이는 곳에서 잠시 포즈도 취해보고...
▲ '체 게바라' 루트 종착점. 총 8피치를 군더더기 없는 온사이트 자유등반 방식으로 완등했다는 충만감이 몰려왔다.
▲ 미륵장군봉 일대의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할 여유도 부려보면서...
▲ 미륵장군봉에서는 피치별 하강에 각별히 유의해야만 한다.
▲ 암벽화를 신은 채 완경사 구간을 클라이밍 다운하느라 발가락이 무지 아팠다. 얼음처럼 차가운 계곡물에 발을 담근 순간의 시원함이 정말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