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설악산 소토왕골 암장 - 2026년 5월 31일(일)

빌레이 2026. 6. 1. 14:53

설악산국립공원의 정문격인 신흥사 입구의 대형 일주문을 07시 무렵에 통과한다. 수차례 지나쳤던 낯익은 곳이건만 작년 1년 동안 보지 못한 그리움이 쌓인 탓일까? 반갑고 설렌다. 비룡교 앞으로 펼쳐지는 노적봉과 권금성 일대의 연봉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다. 우측으로 고개를 돌리니 저 멀리 하늘금을 이룬 백두대간이 선명하고, 움푹 패인 저항령이 가까이 보인다. 언제 봐도 물리지 않는 장쾌하고 아름다운 풍광이다. 소토왕골로 향하는 숲속 오솔길은 어제의 미륵장군봉 접근로만큼이나 정겹고 시원하다. 암장의 베이스캠프엔 이미 데포시켜 놓은 짐들이 눈에 띈다. 골짜기 깊숙한 곳에 자리한 루트에 매달린 팀들의 것이다.

 

소토왕골 암장은 노적봉 정상으로 향하는 릿지길인 '한 편의 시를 위한 길' 우측의 깍아지른 절벽에 자리한다. 계곡에서 올려다 본 암벽은 다분히 위압적이다. 오늘은 따가운 햇살이 암벽을 비추기 전에 등반을 끝내고 송어회를 먹으러 갈 요량으로 쉬운 루트를 골라 가볍게 올라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첫 피치 중간의 오버행 구간을 올라설 때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개념도를 면밀히 확인하지 않고 붙은 게 화근이었다. 웬만한 곳은 인공으로라도 돌파할 수 있다는 섣부른 자만심도 깔려 있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우측의 '물길(5.10b)' 루트를 택했어야 했는데, 좌측의 'Call me(5.10c)'와 '구멍(5.11b)' 루트를 혼재해서 등반한 것이었다.

 

크럭스를 가까스로 돌파하여 등반거리가 40미터에 이르는 1피치 확보점에 도착한 후로는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이왕 어려운 길을 택했으니 긴장감을 갖고 제대로 올라보자는 다짐을 했다. 하지만 2피치 크럭스 구간은 더욱 힘들었다. 오버행 턱을 올라서야 하는데 확실히 잡히는 손홀드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아주 작은 홀드를 누르고 힘 한번 쓴다면 올라챌 수 있겠다는 느낌은 왔지만 추락하면 부상당할 게 뻔하여 후퇴하기로 했다. 다행히 오버행 아래에서 좌측으로 우회하면 비스듬히 오를 수 있는 길이 보였다. 우회하던 중 로프가 턱에 걸려서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무사히 확보점에 안착할 수 있었다. 좀 더 침착하게 행동하여 로프가 꺽이는 걸 감안하고 움직였어야 했다는 반성을 하게 된 구간이었다.      

    

처음 두 피치 모두에서 긴장감 높게 제법 긴 거리를 등반했던 탓에 3피치부터는 더욱 신중할 수 밖에 없었다. 3피치도 35미터 정도의 거리에 두세 구간의 오버행 턱이 있었으나, 로프 테이크 없이 깔끔하게 완등할 수 있었다. 25미터 거리의 비교적 쉬운 4피치를 올라서니 비로소 정상이 나타났다. 울산바위와 달마봉 사이의 풍광을 즐기면서 잠시 쉬다가 조심스러운 피치 하강을 거듭하여 베이스캠프로 귀환했다. 함박꽃을 피운 산목련 나무 그늘 아래에서 소토왕골 계곡물에 발을 담근 순간의 희열은 각별했다. 바윗길에서는 위험 요소를 완벽히 통제할 수는 없으니 좀 더 면밀히 준비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교훈을 되새긴 등반이었다.      

▲ [07:02] 설악산의 정문격인 신흥사 입구. 작년 1년 동안 못 봐서 그런지 새삼 반가웠다.
▲ 비룡교 앞에서 바라본 권금성.
▲ 저멀리 하늘금을 이루고 있는 백두대간. 저항령이 손에 잡힐듯 가까이 보인다.
▲ 비룡교를 건너서 숲길 초입에 있는 표지판.
▲ 소토왕골로 가는 이 숲길은 참 편하다.
▲ 소토왕골 암장 앞의 이정목.
▲ 베이스캠프 바로 앞에서 첫 피치를 시작했다.
▲ 오버행 턱을 올라선 후의 크럭스 구간에서 한참을 고민한 끝에 가까스로 돌파할 수 있었다. 볼트가 멀어서 패닉 장비를 사용해야만 했다.
▲ 후반부는 손홀드 양호한 크랙이 보여서 좌측 사선으로 올랐다. 개념도를 확인해 보니 'Call me' 루트로 시작해서 '구멍' 루트로 오른 듯하다. 내가 안착한 곳은 '구멍' 1피치 확보점이다. 첫 피치 등반거리는 40미터에 이른다.
▲ 2피치는 전체적으로 '구멍(5.11b)' 루트를 등반했다.
▲ 2피치 후반부의 오버행 턱을 넘어서는 구간이 크럭스였다. 자유등반 난이도로 5.11대는 돼 보였고, 인공등반도 애매했다.
▲ 3피치부터는 'Call me' 루트를 올랐다.
▲ 2피치 확보점에서 바라본 울산바위.
▲ 3피치는 손홀드가 좋은 편이었다. 두세 군데의 오버행 턱을 넘어서는 곳에서는 살짝 긴장해야 했다.
▲ 3피치는 몸도 풀리고 마음 자세도 달라져서 그랬는지 만족스럽게 완등했다.
▲ [10:11] 3피치 확보점에서. 이때까지도 암벽은 시원한 그늘이었다.
▲ 마지막 4피치를 오르고 있다. 25미터 거리에 비교적 쉬운 구간이다.
▲ [10:27] 정상의 확보점. 이때부터 암벽에도 서서히 햇살이 비추기 시작했다.
▲ 정상엔 조각작품처럼 멋진 고사목이 있었고, 울산바위와 달마봉이 아름다운 배경을 장식했다.
▲ 신흥사와 울산바위가 선명하게 보이는 설악의 풍광이 아름다웠다.
▲ 소토왕골 절벽에서는 피치별 하강 시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중간 앵커를 면밀히 확인하고 하강해야 한다.
▲ 함박꽃이 핀 산목련 나무 그늘 아래에서 우리가 등반했던 루트를 올려다본 그림이다.
▲ 암벽화에 눌린 발가락이 시원해지는 탁족은 짜릿했다.
▲ 소토왕골의 청정한 계곡물은 무더운 여름날이면 자꾸 생각날 것이다.
▲ 이 계곡물에 발 담그는 상상만으로도 시원해지는 듯하다.
▲ [12:34] 다시 비룡교를 건너서 구만동으로 송어회를 먹으러 간다.
▲ 2020년 8월에 촬영했던 개념도. 이번엔 이 동판을 발견하지 못했다. 전체적으로 'Call me' 루트를 따라 등반한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