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인수봉 '마마' - 2026년 6월 3일(수)

빌레이 2026. 6. 3. 22:21

오늘은 지방선거일, 공휴일이다. 세 악우들이 07시 정각에 우이동에 모인다. 일찍 서두른 덕에 인수봉 대슬랩 앞에 누구보다 먼저 도착한다. '마마' 루트에 일착으로 붙기 위해 60미터씩 두 피치로 곧장 오아시스에 올라선다. 오아시스 5미터 위에 설치된 마마길 출발점 앵커에 기석형, 은경, 나, 이렇게 세 사람이 자기 확보를 한다. 일단 마마길을 선점하는 데 성공했으니, 이제부터는 차분하게 등반하기로 마음먹는다.

 

마마길은 작년 가을에 후등으로 처음 등반한 적이 있다. 크랙, 슬랩, 페이스, 칸테 등 다양한 형태의 바위가 혼재하여 오르는 재미가 쏠쏠했던 추억이 뇌리에 남았다. 꼭 한 번은 이 재미난 바윗길을 선등으로 다시 오르고 싶었다. 후등으로 오를 땐 추락에 대한 부담이 없으니 과감한 동작으로 전 구간에서 자유등반에 성공했었는데, 선등으로 오른 오늘은 크럭스 구간마다 쉬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내게는 다소 도전적인 바윗길에서 안전하게 완등했다는 만족감은 있었다.

 

마마길은 2023년 2월에 홍대클라이밍센터의 윤길수 선생님과 회원 분들의 노력과 봉사로 개척되었다. 인수봉에서는 비교적 새로운 루트에 속하는 바윗길이다. 개척 당시 루트 명칭을 정할 때, 윤선생님은 "인수봉에 길을 개척하고 사라져간 모든 등반가들의 어머니를 기리는 마음으로 '마마'길이라 명명합니다."라는 말씀과 함께 '마마'란 단어가 라틴어, 영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등 세계 여러 나라의 언어에서 어머니를 의미한다는 설명을 곁들이셨다.

 

마침 오늘 함께 줄을 묶은 기석형이 언어학자여서 '마마'가 여러 언어에서 공통으로 사용된 연유를 물어보았다. 갓난아이들은 이가 없기 때문에 치음(齒音)을 낼 수 없고, 입술만으로 소리를 낼 수 있는 순음(脣音) 중에서 처음으로 엄마에게 배우기 쉬운 발음이 '마마'였을 거라는 기석형의 전문가적인 설명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무튼 이렇듯 멋진 바윗길을 개척해주신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바이다. 클라이머들로 붐빌 수 밖에 없는 공휴일의 인수봉에서 아무런 방해 요소 없이 우리 세 사람이 오롯히 마마길 등반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또한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 하늘은 맑은데, 어프로치할 때부터 더웠다.
▲ [07:58] 대슬랩 우측 상단에서 장비를 착용했다.
▲ [08:21] 등반 시작이다.
▲ 첫 피치는 60미터 가까운 완만한 슬랩.
▲ 둘째 피치도 60미터 가까이 진행한다. 아직은 오아시스에 아무도 없다.
▲ [09:01] 오아시스 5미터 상단에 있는 마마길 출발점 앵커를 둘째 피치 확보점으로 사용한다.
▲ 개척 당시의 마마길 개념도(홍대클라이밍센터 제공).1피치: 30m(볼트 2개), 5.10b, 크랙-슬랩. 2피치: 20m(볼트 4개), 5.10c, 크랙-페이스-칸테. 3피치: 20m(볼트 2개), 5.9, 크랙-슬랩-크랙-슬랩. 4피치: 35m(볼트 2개), 5.10a, 슬랩-크랙, 5피치: 30m(볼트 2개), 5.8. 크랙-슬랩.
▲ 마마길 1피치 출발.
▲ 1피치 초반부는 세로 크랙을 따라 길게 이어진다. 처음으로 너트를 사용했다.
▲ 둘째 볼트에 클립하기 직전 크랙이 까다로웠다. 볼트에 클립하고 한 차례 쉬어갔다.
▲ 확보점에서 올려다 본 2피치는 첫 볼트가 멀어 보였고, 크랙에서 어떤 자세로 붙을 지가 고민스러웠다.
▲ 일단은 크랙에 오른발 재밍을 확실히 한 후에 한 발을 올리니 첫 볼트에 안정적으로 클립할 수 있었다. 볼트 전에 캠 하나 이외의 중간 확보물 설치는 불가했다.
▲ 첫 볼트에 클립한 후에 행도깅 상태에서 다음 홀드를 가늠하여 날등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 2피치는 전체 루트에서 가장 어려운 5.10c 난이도에 걸맞게 등반하는 내내 긴장감이 높았다.
▲ 2피치 후반부를 라스트로 오르고 있는 기석형의 모습. 우리 주변엔 아직 아무도 없었고, 이 즈음부터 오아시스와 대슬랩에 클라이머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 3피치 초반부는 '우정B' 루트 좌측의 직상크랙인데, 아래에서 보는 것보다 마냥 쉽지는 않았다.
▲ 크랙이 끝나는 밴드 위에 올라서면 슬랩이 기다리고 있다.
▲ 슬랩을 올라서서 사선밴드로 진행하면 3피치 확보점이다.
▲ 4피치 초반부는 볼트 간격이 멀어서 선등자가 긴장할 수 밖에 없는 슬랩이다.
▲ 첫 볼트가 길어서 밴드의 구멍에 캠을 설치했는데, 하중을 받는 방향을 거스를 수 밖에 없어서 제대로 된 확보점 노릇을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 4피치 상단의 곡선형 크랙은 레이백과 스태밍 자세가 모두 잘 먹히는 구간이었다. 캠을 설치하기 위해서 오른발 재밍을 확실히 하는 데 신경썼다. 크랙이 끝나는 지점의 볼트에 도착하여 한 차례 쉬어갔다.
▲ 5피치는 쉬운 크랙으로 시작해서 우측으로 돌아나간 뒤 다시 슬랩에 붙는 경로이다.
▲ 5피치 앵커에서 우측으로 바라본 풍경이다.
▲ 기석형이 라스트로 5피치 후반부의 슬랩을 오르고 있다. 이 때 '우정A' 루트에서 기범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 마마길 종착점인 5피치 톱앵커. 여기서 좌측의 '패시'와 '봔트' 루트의 톱앵커 위쪽 숲으로 올라가면 '생공사' 확보점을 지나 정상에 오를 수 있다.
▲ 마마길을 완등하고 숲속을 지나 인수봉 정상으로 올랐다. 우리 뒤로 등반자들이 많아서 오아시스로 하강하지 않기로 했다.
▲ 기석형이 정상 직전의 슬랩을 오르고 있다.
▲ [12:56] 인수봉 정상에서 오늘도 안전하게 오른 것에 감사하고, 하강을 위해서 로프는 반반씩 사렸다.
▲ 정상에서 여유롭게 점심을 먹고, 더워지기 시작하니 하강을 서둘렀다.
▲ 서면으로의 하강까지 안전하게 마무리하고, 백운산장을 거쳐서 하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