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잠을 깨어 침대에 누운 채 스마트폰으로 일기예보를 확인한다. 어제 확인했던 것과 달리 오전 한때 약한 비가 내릴 거란다. 날씨는 인간의 힘으론 어찌할 수 없는 영역, 괜히 걱정하기 보다는 순응하여 지혜롭게 대처하면 된다는 평소의 태도를 상기하며 집을 나선다. 도봉산 광륜사 앞에서 08시에 5명의 악우들이 모인다. 잔뜩 흐린 하늘 아래 산길로 들어서는 발걸음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 석굴암과 만월암 가는 길이 갈라지는 삼거리 쉼터에서 선인봉 등반에 나서는 낯익은 클라이머들을 만난다. 그들과의 대화 주제도 자연스레 강수량에 따른 암벽등반 가능 여부가 된다. 우리가 만월암 위의 마당바위를 올라선 순간 기어코 비가 쏟아진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때마침 모두가 비를 피하며 담소를 나눌 수 있는 바위 처마 밑 넓은 공터가 나타났다는 점이다. 비가 그칠 때까지 느긋하게 둘러앉아 군것질을 하면서 최근 미국 요세미티 원정 등반을 다녀온 민지씨의 경험담을 중심으로 등반과 산에 관한 잡담을 나눈다. 다시 맑아지더라도 암벽등반은 포기해야 할 정도로 차분히 내리던 비가 별안간 멈추니 오히려 생각이 복잡해진다. '배추흰나비의 추억' 루트 초입의 공터에서 바윗길 상태를 살펴본다. '요세미티 가는 길' 루트에 한 팀이 붙어있는 게 보인다. 등반이 가능할 듯하여 우리도 장비를 착용한다. '요세미티 가는 길' 출발점에서 앞팀을 마냥 기다리기 보다는 아무도 없는 '배추흰나비의 추억' 루트에 먼저 붙어보기로 한다.
'배추흰나비의 추억' 루트 두 피치를 가볍게 올라선다. 어느새 바위 표면은 말라서 비로 인한 걱정은 말끔히 사라진다. 2피치 정상에서는 자운봉으로 이어지는 정면의 바윗길이 훤히 보인다. '요세미티 가는 길' 2피치와 3피치에 한 팀이 매달려 있고, '배추흰나비의 추억'엔 첫 두 피치를 생략한 듯한 팀이 3피치와 4피치를 등반 중이다. 어디로 갈까 잠시 고민한 끝에 애초의 계획대로 '요세미티 가는 길'을 오르기로 결정한다. 총 6피치의 바윗길인 '요세미티 가는 길'을 예상했던 것보다 더 힘겹게 등반한다. 1피치 크럭스는 인공으로 돌파할 수 밖에 없고, 2피치 중간에서는 힘이 부족하여 쉬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그나마 비교적 쉬운 3피치는 자유등반이 가능하고, 4피치 트래버스 구간은 딱히 힘을 쓸 게 없다. 5피치는 잘 잡히는 홀드를 찾아가면서 즐겁게 오를 수 있는 구간인데, 체력이 소진된 탓에 오버행 구간에서 한 차례 쉬어간다. 마지막 6피치도 체력이 있으면 충분히 자유등반이 가능할 텐데, 힘에 부쳐서 캠에 의존해 쉬면서 오를 수 밖에 없다. 4피치를 제외한 다섯 피치 모든 구간에서 적잖은 완력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나, 기영형, 민지씨, 은경, 기석형까지 5명의 악우들 모두가 끝까지 안전하게 연기봉 정상을 밟았다는 것에 오늘 등반의 의미를 부여하기로 한다. 처음 오른 '요세미티 가는 길'에서 이만하면 절반의 성공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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