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도봉산 '요세미티 가는 길' - 2026년 5월 23일(토)

빌레이 2026. 5. 24. 09:39

새벽에 잠을 깨어 침대에 누운 채 스마트폰으로 일기예보를 확인한다. 어제 확인했던 것과 달리 오전 한때 약한 비가 내릴 거란다. 날씨는 인간의 힘으론 어찌할 수 없는 영역, 괜히 걱정하기 보다는 순응하여 지혜롭게 대처하면 된다는 평소의 태도를 상기하며 집을 나선다. 도봉산 광륜사 앞에서 08시에 5명의 악우들이 모인다. 잔뜩 흐린 하늘 아래 산길로 들어서는 발걸음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 석굴암과 만월암 가는 길이 갈라지는 삼거리 쉼터에서 선인봉 등반에 나서는 낯익은 클라이머들을 만난다. 그들과의 대화 주제도 자연스레 강수량에 따른 암벽등반 가능 여부가 된다. 우리가 만월암 위의 마당바위를 올라선 순간 기어코 비가 쏟아진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때마침 모두가 비를 피하며 담소를 나눌 수 있는 바위 처마 밑 넓은 공터가 나타났다는 점이다. 비가 그칠 때까지 느긋하게 둘러앉아 군것질을 하면서 최근 미국 요세미티 원정 등반을 다녀온 민지씨의 경험담을 중심으로 등반과 산에 관한 잡담을 나눈다. 다시 맑아지더라도 암벽등반은 포기해야 할 정도로 차분히 내리던 비가 별안간 멈추니 오히려 생각이 복잡해진다. '배추흰나비의 추억' 루트 초입의 공터에서 바윗길 상태를 살펴본다. '요세미티 가는 길' 루트에 한 팀이 붙어있는 게 보인다. 등반이 가능할 듯하여 우리도 장비를 착용한다. '요세미티 가는 길' 출발점에서 앞팀을 마냥 기다리기 보다는 아무도 없는 '배추흰나비의 추억' 루트에 먼저 붙어보기로 한다.         

 

'배추흰나비의 추억' 루트 두 피치를 가볍게 올라선다. 어느새 바위 표면은 말라서 비로 인한 걱정은 말끔히 사라진다. 2피치 정상에서는 자운봉으로 이어지는 정면의 바윗길이 훤히 보인다. '요세미티 가는 길' 2피치와 3피치에 한 팀이 매달려 있고, '배추흰나비의 추억'엔 첫 두 피치를 생략한 듯한 팀이 3피치와 4피치를 등반 중이다. 어디로 갈까 잠시 고민한 끝에 애초의 계획대로 '요세미티 가는 길'을 오르기로 결정한다. 총 6피치의 바윗길인 '요세미티 가는 길'을 예상했던 것보다 더 힘겹게 등반한다. 1피치 크럭스는 인공으로 돌파할 수 밖에 없고, 2피치 중간에서는 힘이 부족하여 쉬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그나마 비교적 쉬운 3피치는 자유등반이 가능하고, 4피치 트래버스 구간은 딱히 힘을 쓸 게 없다. 5피치는 잘 잡히는 홀드를 찾아가면서 즐겁게 오를 수 있는 구간인데, 체력이 소진된 탓에 오버행 구간에서 한 차례 쉬어간다. 마지막 6피치도 체력이 있으면 충분히 자유등반이 가능할 텐데, 힘에 부쳐서 캠에 의존해 쉬면서 오를 수 밖에 없다. 4피치를 제외한 다섯 피치 모든 구간에서 적잖은 완력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나, 기영형, 민지씨, 은경, 기석형까지 5명의 악우들 모두가 끝까지 안전하게 연기봉 정상을 밟았다는 것에 오늘 등반의 의미를 부여하기로 한다. 처음 오른 '요세미티 가는 길'에서 이만하면 절반의 성공이지 싶다.     

▲ 크랙 구간이 주를 이루는 루트인지라 짐을 꾸릴 때, 모든 캠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지 점검했다.
▲ 잔뜩 흐린 하늘 아래 만월암으로 향하는 길에서 올려다본 선인봉. '박쥐' 루트에 한 팀이 붙어 있는 게 보였다.
▲ 부처님 오신 날을 하루 앞 둔 만월암을 통과한다.
▲ 만월암 위에 올라서니 비가 쏟아진다. 때마침 나타난 바위처마 밑에서 비를 피할 수 있었다.
▲ 소원을 들어준다는 공터 옆의 돌탑이 멋졌다.
▲ 비가 그친 후에 암벽을 올려다보니 '요세미티 가는 길'에 붙어 있는 클라이머들이 눈에 띄었다.
▲ (10:47) '배추흰나비의 추억' 루트에 먼저 붙었다.
▲ '배추흰나비의 추억'은 6년 전인 2020년 3월 21일, 홍대클라이밍센터 윤선생님 주관의 리볼팅 작업에 참여했던 추억이 깃든 바윗길이다.
▲ 기영형이 가져온 BD 5호 대형 캠을 처음으로 사용해 보았다.
▲ '배추흰나비의 추억' 2피치 초반부를 등반 중이다. 리볼팅 당시 글루인 볼트를 사용하여 반영구적으로 안전한 바윗길이 되었다.
▲ 3피치 초입에서 어디로 갈까 기영형과 잠시 상의하는 중.
▲ '배추흰나비의 추억'을 계속 등반하기 보다는 애초의 계획대로 '요세미티 가는 길'에 붙기로 결정했다.
▲ '배추흰나비의 추억' 루트 2피치 정상에서 보았을 때, '요세미티 가는 길' 2~3피치와 '배추흰나비의 추억' 3~4피치에 각각 한 팀씩 등반 중이었다.
▲ (12:15) 예상보다 늦은 시간이지만, '요세미티 가는 길' 1피치 등반에 나섰다. 침니로 들어가지 않고 스태밍 자세로 올라섰다.
▲ 개념도 상에는 1피치 난이도가 5.11a로 전체에서 가장 어려운 피치로 기록되어 있다. 좌측 날등에 올라서서 첫 볼트에 클립하는 중이다.
▲ 1피치 크럭스는 둘째 볼트를 넘어서는 구간이다.
▲ 볼트 아래에 꼬집듯이 잡을만한 오른손 홀드가 있었으나, 과감히 올라챌 수는 없었다. 퀵드로를 잡고 올라서서 계속 진행했다.
▲ 셋째 볼트 이후엔 사선 밴드의 홀드가 그런대로 잘 잡혔다.
▲ 1피치 후반부를 기영형이 등반 중인데, 이 구간도 발을 잘 써야했다.
▲ 2피치를 출발 중이다. 세 명이 모인 후에 2피치를 출발하려 했으나, 확보점이 좁다고 하여 기영형의 의견대로 내가 먼저 빠져주기로 했다.
▲ 세 번째 주자로 민지씨가 1피치를 오르는 중.
▲ 네 번째 주자로 은경이가 난이도 5.10b의 2피치를 등반 중.
▲ 2피치는 크랙에 진입한 후, 첫 볼트 다음 구간이 크럭스였다.
▲ 3피치는 난이도 5.8에 비교적 쉬운 크랙이지만, 발재밍을 확실히 해야만 했다.
▲ 발목이 좋지 않은 은경이는 재밍을 싫어하여 레이백 자세로 3피치를 올랐다고...
▲ 4피치는 좌측으로 트래버스하는 구간이다. 오늘 다른 피치에서는 라스트를 맡았던 기석형이 트래버스가 겁난다고 하여 앞뒤에서 확보 가능한 네 번째 주자로 4피치를 통과했다.
▲ 4피치는 은경이가 라스트를 맡았다.
▲ 기영형이 쎄컨으로 난이도 5.10b인 5피치를 초반부를 등반 중.
▲ 세로 밴드를 따라 이어진 등반선에서 홀드를 찾아가는 재미가 좋았던 5피치였다.
▲ 힘을 써야 했던 크랙 구간과 다른 5피치가 실내암장에서 운동했던 민지씨에게도 즐거운 구간이었을 것이다.
▲ 체력이 충분했었다면, 손재밍과 발재밍을 확실히 해서 오르고 싶었던 6피치(난이도 5.10a). 하지만 캠에 의존해서 올라야 했다.
▲ 재밍을 싫어하는 은경이도 6피치에서는 재밍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 연기봉 정상에서 5피치 출발점인 테라스로 하강하여 오늘 등반을 마무리했다.
▲ (17:56) 5명 모두가 등반을 완료한 시각은 오후 6시 무렵, 베이스캠프에서 짐을 꾸려 하산을 시작한 게 7시 즈음이었다. 그래도 밝을 때 하산을 완료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