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해외등반여행

[2025 중국 라오산 등반여행 - 에필로그] 감사하는 마음으로

빌레이 2025. 10. 23. 10:17

한 집안의 장남이자 가장인 내가 이번 추석연휴에 중국 등반여행을 다녀오겠다고 한 건 그리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나주의 고향집에 노모가 생존해 계시니 찾아뵈야 마땅하고, 결혼하여 분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들과 딸 내외를 위한 명절날 어른 노릇도 챙겨야 하는 책임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아내를 비롯한 가족들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나의 중국 여행을 혜량해 주었다. 삶을 좀 더 풍요롭게 가꾸기 위해서는 현실의 이런저런 사정들을 극복하는 과감한 결정이 필요한데, 이번에도 그런 경우였다. "20년 후 당신은 했던 일보다 하지 않았던 일로 인해 더 실망할 것이다. 그러므로 돛줄을 던져라. 안전한 항구를 떠나 항해하라. 당신의 돛에 무역풍을 가득 담아라. 탐험하라. 꿈꾸라. 발견하라." 마크 트웨인(Mark Twain)이 남긴 명언이 큰 힘이 되었다. 어떤 일을 할까 말까 망설여질 때 아직까지 나는 주로 하는 쪽에 베팅하는 편이다. 안하는 쪽으로 결정하면 지금 상태와 별반 다를 바가 없을 것이고, 자칫하면 따분한 일상이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 라오산 등반여행을 결정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기범씨를 비롯한 한국의 클라이머들이 해외에 개척한 바윗길을 한번은 보고싶다는 것이었다. 중국의 클라이머들에게 제대로 된 등반교육을 시켜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지에서 함께 새로운 바윗길들을 개척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인수봉에도 이본 취나드(Yvon Chouinard)가 주한미군으로 복무하던 시절에 선우중옥씨를 비롯한 한국의 초창기 등반가들과 함께 개척한 '취나드A/B' 루트가 여전히 인기 등반코스로 건재한데, 라오산의 황산고 암벽에 한국과 중국의 등반가들이 협조하여 공동으로 개척한 바윗길도 이에 비견할만 하다는 생각이다. 원조를 받던 후진국의 나라에서 다른 나라를 돕는 나라로 성장한 국가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는데, 이러한 보은의 정신이 우리 클라이머들의 밑바닥에도 내재되어 있었음을 발견했다고 하여도 지나친 비약은 아닐 것이다.    

 

함께 한 멤버들이 좋지 않았다면, 라오산 등반여행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한낮 부질없는 것일 수 있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번에 함께 한  여섯명은 누구 하나 모난 구석이 없어서 한가족처럼 거리낌 없이 조화롭게 어울렸다. 코로나 공백기를 거치면서 무너져버린 중국 현지의 인적 네트워크를 다시 세우기 위해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노심초사 했던 기범씨는 등반리더라는 막중한 책임감으로 누구보다 어깨가 무거웠을 것이다. 날씨 사정으로 애초에 계획했던 3일 중 2일만 등반한 것이 아쉬웠을 수는 있지만, 이틀만이라도 충분히 만족스럽게 등반한 것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등반기의 프롤로그편에서 언급한 <가을방학>의 노랫말 중에 "넌 어렸을 때부터 네 인생은 절대 네가 좋아하는 걸 준 적이 없다고 했지. 정말 좋아하게 됐을 때는 그것보다 더 아끼는 걸 버려야 했다고 했지. 떠나야 했다고 했지."란 부분을 떠올려 본다면 우리는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었다. 가을방학 같았던 이번 여행을 다녀온 후에 내몸은 좀 힘겨워 했다. 감기몸살을 심하게 앓았고, 농양 제거 수술을 받아야 했다. 나이들어 면역력이 약해지는 서러움을 깊이 자각해야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반여행을 다녀온 건 참 잘 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낯선 이국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했던 아름다운 추억을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기 때문이다.    

▲ 해외인 중국의 라오산 황산고 암벽에 바윗길을 개척한 기범씨를 비롯한 한국의 클라이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
▲ 황산촌에서 양커우까지 길게 이어지는 해안 산책로는 등반이 불가한 날씨에 트레킹을 즐길 수 있는 멋진 대안이었다... 추석날 밤에 둥근 보름달 아래 이길을 산책하던 순간의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는 마음...
▲ 등반여행의 리더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묵묵히 감내해낸 기범씨의 큰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
▲ 대구팀인 건우씨와 달래씨가 함께 해서 많이 웃고 활기가 넘쳤던 여행이었다는... 그래서 더욱 고마운 마음이고...
▲ 무릎이 불편한 가운데서도 내색하지 않고 즐겁게 등반했던 미희씨와 총무의 중책을 맡아 수고해준 은경 친구가 함께 해서 우리팀이 아무 문제 없이 안정적으로 잘 운영되었다는 생각에... 감사하는 마음...
▲ 등반여행 내내 가족처럼 거리낌 없이 잘 지냈던 우리팀을 만난 것은 나의 타고난 인복이라는 생각에... 감사하는 마음...
▲ 우리팀 모두가 모든 일상과 바윗길에서 항상 평안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