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트레킹

불암산 슬랩 산책 - 2024년 3월 10일(일)

빌레이 2024. 3. 10. 20:49

주일예배에 다녀온 후 오후 시간엔 실내암장에서 가볍게 운동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제 산행에서 먼지 쌓인 등산화를 세척하는 동안 아파트 베란다로 쏟아지는 햇볕이 너무나 화사해서 별안간 산에 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새로 구입한 릿지화의 접지력 테스트나 하자는 요량으로 간만에 불암산 슬랩을 걸어보기로 결정한다. 상계역에서 출발하여 불암산 자락길을 통과하고 헬기장으로 향하는 슬랩을 찾아서 오른다. 양지바른 곳의 생강나무는 금방이라도 꽃망울을 터트릴 기세다. 릿지화 밑창의 접지력에 오롯히 의지하여 슬랩 위를 자유롭게 걷는 기분이 남다르다. 오늘 처음으로 개시한 파이브텐사의 캠프포미드 릿지화가 아직은 발을 조금 불편하게 하지만, 접지력 하나만큼은 더이상 바랄 게 없을 정도로 확실하다.

 

헬기장에서 깔닥고개로 내려선 다음 불암사 방향으로 하산하다가 다시 석천암으로 오른다. 석천암 아래의 모노레일 위부터 길게 이어진 슬랩을 다시 밟는다. 예전에 제집 드나들듯 자주 다니던 정상 동편의 슬랩을 오르는 발걸음 속에 추억이 묻어난다. 별내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바윗턱에 자리한 나의 아지트와 멋진 자태의 노송들도 여전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반갑고 고맙다. 암벽등반 장비 하나 없이 단촐한 차림으로 슬랩을 밟아서 프리솔로 등반가를 닮은 몸짓으로 태극기가 힘차게 펄럭이는 정상에 오른 감회가 새롭다. 발바닥이 적당히 달아올라 몸속의 세포가 생기를 찾는 듯한 촉감까지 새롭게 다가온다. 과거에 익숙했던 것들도 오랜 공백기 이후에는 새로운 설레임을 동반하게 된다는 진리를 다시금 깨닫는다. 종아리 근육이 빡빡하고 단단히 동여맨 릿지화에 눌린 발이 조금 불편한 것은 주일 오후를 알차게 보냈다는 자랑스런 흔적일 뿐이다. 어제는 흙길, 오늘은 바윗길, 주말 이틀 동안 산에서 받은 에너지는 다가오는 한주간을 활기차게 보낼 수 있는 자양분이 될 것임에 틀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