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새해 첫날의 자연 암벽 등반 - 2023년 1월 1일(일)

빌레이 2023. 1. 1. 19:44

새해 아침이 밝았다. 2023년은 육십간지로 40번째인 계묘년(卯年)이다. 천간 계(癸)는 물을 상징하는 흑색, 지지 묘(卯)는 토끼를 의미하여 '검은 토끼의 해'라고 한다. 날마다 떠오르는 태양이건만 새해 첫날의 일출은 누구에게나 특별한 모양이다. 추위를 무릅쓰고 산에서 일출을 보고자 하는 패기는 예전에 사라졌다. 아늑한 거실의 소파에서 TV 중계 화면 속의 일출을 감상하고, 고향집의 어머님께 전화로 새해 인사를 올리는 것으로 계묘년의 첫날을 시작한다. 전화 인사를 올려야 하는 양가 부모님 네 분 중에 이제는 어머니 한 분만 살아계신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 불현듯 쓸쓸함이 찾아든다. 불과 최근 3년 사이에 장인, 장모님께서 세상을 떠나셨던 것이다.    

 

송년산행으로 수락산에 다녀온 어제는 하루종일 구름 낀 하늘이어서 조금은 아쉬웠다. 겨울산에서 햇볕이 없다면 을씨년스런 분위기가 더해져 산행의 즐거움은 반감되기 마련이다. 오늘은 미세먼지가 있기는 하지만 맑은 날씨에 낮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 별로 춥지 않을 거라는 예보를 어제 하산길에서 보았다. 그 순간 문득 양지바른 암벽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싶다는 소망이 떠올랐다. 바위가 차가워서 등반을 못한다 할지라도 암벽에 기대어 햇볕바라기만 하고 와도 좋을 것 같았다. 겨울 햇볕은 돈 주고도 사기 힘들만큼 몸에 좋은 기운이 담겨 있다고 하지 않던가? 나이 들어 갈수록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하고 싶은 일이 떠오르면 머뭇거리지 말자는 평소의 신념을 다시 새기면서 새해 첫날의 등반 계획을 세워본다. 

 

남향이어서 온종일 햇볕을 받을 수 있는 파주의 자연 암장을 찾았다. 오전 10시 무렵에 도착하여 오후 4시 즈음까지 햇빛 찬란한 암벽을 우리팀이 독차지하여 조용하고 여유로운 등반을 즐길 수 있었다. 첫 오름짓에서는 바위가 차가워 핫팩을 간간히 사용해야 했지만, 몸이 풀린 후에는 충분히 견딜만 했다. 많은 클라이머들이 차가운 빙벽에 붙어 있을 시기에 따스한 암벽에서 알차게 등반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내심 기뻤다. 2023년 첫날을 만족스런 자연 암벽 등반으로 힘차게 열어 젖혔으니 올해의 모든 클라이밍 활동이 더욱 더 즐거울 거라는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등반 능력에 대한 특별한 목표를 정하는 것보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균형 있게 성장시키기 위한 클라이밍 루틴을 꾸준히 실천하자는 마음을 다졌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클라이밍 레벨도 진보하여 국내든 해외든 오르고 싶은 바위에서 만족스런 클라이밍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모든 클라이밍 활동에서 부상 없이 안전하게 즐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양지바른 암벽에서 보약 같은 겨울 햇볕을 온몸에 받으며 마시는 커피 한 잔의 행복. 이만하면 충분하다.
▲ 바위가 생각보다 차갑지 않아서 일단 한 번 붙어보기로 하고 올해 첫 등반을 위해 자일을 묶는다.
▲ 간밤의 냉기가 가시지 않은 탓인지 첫 오름짓을 한 후에는 손이 좀 시려웠다.
▲ 최근에 실내암장의 선배님으로부터 득템한 구형 테스타로사 암벽화를 자연 암벽에서 시착해 보았다.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 무리 없이 완등할 수 있는 루트를 골라서 두 차례씩 오르내렸다.
▲ 세 번째 루트부터는 추위를 거의 느끼지 않았다.
▲ 톱앵커에서 본 올해의 첫 태양. 주변 들판엔 하얀 눈이 쌓여 있다.
▲ 점심 후에는 오버행과 루프 구간이 있는 루트도 올랐다.
▲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니 고난도 루트의 홀드는 더욱 미끄러웠다. 예전보다 난이도가 한두 등급 이상은 높아진 느낌이었다.
▲ 양지와 음지가 확연히 구분되는 암장 주변의 산사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