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북한산 노적봉 반도길 - 2022년 4월 16일(토)

빌레이 2022. 4. 17. 10:15

올해 들어 첫 멀티피치 등반이다. 인수봉은 북적댈 것이 뻔하여 상대적으로 한적한 노적봉의 반도길을 오르기로 한다. 4년 전에 등반한 이후로 처음 찾은 반도길이다. 체력이 왕성한 요즘 클라이머들은 '노백인우주만선'에 도전한다. 북한산과 도봉산의 7개 암봉들인 노적봉-백운대-인수봉-우이암-주봉-만장봉-선인봉을 연속해서 등반하는 프로젝트이다. 처음으로 이 코스를 완등한 두 클라이머는 총 15시간 30분이 걸렸다고 한다. 나는 감히 엄두도 못 낼 대단한 기록이다. 클라이밍 마라톤이라 할 수 있는 이 코스의 출발점이 바로 노적봉의 반도길이다. 나 같은 수준의 주말 클라이머는 하루에 한두 봉우리를 연결해서 차례로 즐기면서 오르는 것도 의미 있는 등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선사에서 용암문으로 향하는 산길을 따라 어프로치 하는 발걸음이 상쾌했다. 간밤에 숙면을 취한 덕택에 몸은 여느 때보다 가벼운 상태였다. 화창한 봄날에 산길을 거닐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즐거웠다. 진달래꽃과 노랑제비꽃이 한창인 등로 주변을 구경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노적봉 반도길 출발점에 도착했다. 허리 통증을 감안하여 반도길 루트 특성에 알맞은 등반장비를 가장 가벼운 것 위주로 준비했다. 일반 퀵드로보다는 다목적으로 이용 가능한 알파인 퀵드로를 많이 사용하기로 했다. 로프는 직경 9.2mm×70미터 규격을 오늘 처음으로 개시했는데, 무게가 예전에 쓰던 60미터보다 오히려 가볍고 길이도 충분해서 한결 마음이 든든했다.

 

등반이 잘 되는 날은 모든 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오늘 등반이 딱 그랬다. 반도길은 중간 확보점이 거의 없어서 캠을 설치해야 하는 구간이 많았는데, 크랙의 크기를 보고 눈대중으로 그때마다 선택한 캠의 호수가 한 번도 틀리지 않았다. 사소한 것이지만 기분이 좋아지면서 등반에 자신감과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로프 유통을 생각하면서 꺽이는 부분에서 슬링을 적절히 길게 사용한 점도 등반의 즐거움을 배가시켜 주었다. 예전에 오를 때 다소 긴장감이 있었던 침니와 벙어리성 크랙 구간에서도 한 치의 머뭇거림 없이 가볍게 돌파할 수 있었다. 오늘 노적봉에는 바람이 제법 세차게 불었으나 등반의 즐거움을 앗아갈 정도는 아니었다. 앞으로의 모든 등반이 오늘처럼만 술술 잘 풀린다면 더이상 바랄 게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모든 면에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던 오늘의 반도길 등반에 대하여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도선사에서 용암문으로 향하는 등로 주변엔 진달래꽃이 한창이었다.
▲ 등로 중간에서 어린 아들과 함께 쉬고 있는 젊은 아빠를 만났다. 올 가을에 결혼을 앞두고 있는 아들 녀석과 함께 북한산에 오르던 오래 전의 추억이 떠올랐다.
▲ 용암문 바로 아래에는 노랑제비꽃 군락이 많았다. 등로가 그야말로 꽃길이었다.
▲ 따스한 봄볕 아래서 등반 채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 9.2mm 굵기의 70 미터 자일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 출발하기 직전, 4년만에 다시 찾은 반도길을 올려다 보고 있다.
▲ 올 들어 첫 멀티피치 등반이니 만큼 첫 피치를 오르는 순간의 긴장감은 어쩔 수 없었다.
▲ 슬랩 등반은 오랜만인지라 살짝 긴장했으나, 바위 표면의 오목한 부분이 오늘따라 잘 보여서 괜찮았다.
▲ 1P 확보점에서 코바위 아래의 소나무까지 2P와 3P를 단번에 올랐다. 바람이 불어서 자켓을 다시 입고 등반했다.
▲ 우리팀 우측 루트로 올라오신 3명의 팀이 양보해 주셔서 4P를 먼저 올랐다.
▲ 반도길의 하일라이트라 할 수 있는 5피치 침니 구간이다.
▲ 캠과 긴 슬링을 적절히 사용하여 중간 확보점을 구축하고, 가벼운 동작으로 침니를 빠져나왔다.
▲ 6피치 초반부는 과감하게 스태밍 자세로 올랐다.
▲ 6피치 중간부의 크럭스는 발을 높이 딛고 벙어리성 크랙을 자신있게 잡으면서 만족스럽게 돌파할 수 있었다.
▲ 5피치 확보점에서 내려다 본 장면이다.
▲ 7피치 초반부를 오르고 있다. 바위가 잘 붙어서 오르는 재미가 있었다.
▲ 예전엔 사선으로 진행하는 크랙이 약간은 부담스러웠었는데, 이번엔 여유있게 잘 올랐다.
▲ 7피치 확보점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이다.
▲ 7피치 확보점에서 써제이길을 오르는 팀을 내려다 본 장면이다.
▲ 우리가 올라온 반도길이 오늘은 인기 코스가 되었다. 6 피치를 등반 중인 다른 팀 외에도 출발점에서 다수의 팀이 준비 중인 모습이 아스라히 보였다.
▲ 8피치를 등반 중이다.
▲ 예전보다 아래에 있는 8피치 확보점을 사용해 보니 9, 10피치 루트 전체가 잘 보였다. 전에는 지금 클립되어 있는 곳에서 확보를 봤었다.
▲ 70미터 자일이니 9피치와 10피치를 단번에 오르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 10피치 초반부의 살짝 부담스러운 슬랩 구간도 오늘은 가뿐히 올랐다.
▲ 아래에 있는 8피치 확보점을 사용하면 등반완료 지점에서 수신호로 통신하는 게 가능하다.
▲ 반도길 마지막 확보점에서 후등자 확보 중이다.
▲ 안전하게 등반을 완료하고 정상에 올랐을 때의 기분은 언제나 최고다.
▲ 노적봉 정상의 갈라진 바위틈 사이로 우뚝 서있는 백운대 정상이 보인다.
▲ 정상 인증사진을 남겨본다.
▲ 인수봉 서면의 하강포인트에는 역시나 많은 클라이머들이 보였다.
▲ 바람이 제법 세차서 짧은 하강 후 따뜻한 곳에서 늦은 점심시간을 가졌다.
▲ 허리가 얇아져서 흘러내리는 안전벨트를 잡아주는 방법이다. 120cm 슬링으로 이렇게 해주면 캠을 여러 개 장착해도 잘 흘러내리지 않는다.
▲ 하산할 때는 얇은 바람막이 자켓을 착용해야 했다.
▲ 허리통증을 생각해서 정말로 천천히 하산했다. 중간에 따스한 너럭바위에 드러누워 잠시 쉬기도 했다. 모든 것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던 올해의 첫 멀티피치 등반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