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첫 멀티피치 등반이다. 인수봉은 북적댈 것이 뻔하여 상대적으로 한적한 노적봉의 반도길을 오르기로 한다. 4년 전에 등반한 이후로 처음 찾은 반도길이다. 체력이 왕성한 요즘 클라이머들은 '노백인우주만선'에 도전한다. 북한산과 도봉산의 7개 암봉들인 노적봉-백운대-인수봉-우이암-주봉-만장봉-선인봉을 연속해서 등반하는 프로젝트이다. 처음으로 이 코스를 완등한 두 클라이머는 총 15시간 30분이 걸렸다고 한다. 나는 감히 엄두도 못 낼 대단한 기록이다. 클라이밍 마라톤이라 할 수 있는 이 코스의 출발점이 바로 노적봉의 반도길이다. 나 같은 수준의 주말 클라이머는 하루에 한두 봉우리를 연결해서 차례로 즐기면서 오르는 것도 의미 있는 등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선사에서 용암문으로 향하는 산길을 따라 어프로치 하는 발걸음이 상쾌했다. 간밤에 숙면을 취한 덕택에 몸은 여느 때보다 가벼운 상태였다. 화창한 봄날에 산길을 거닐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즐거웠다. 진달래꽃과 노랑제비꽃이 한창인 등로 주변을 구경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노적봉 반도길 출발점에 도착했다. 허리 통증을 감안하여 반도길 루트 특성에 알맞은 등반장비를 가장 가벼운 것 위주로 준비했다. 일반 퀵드로보다는 다목적으로 이용 가능한 알파인 퀵드로를 많이 사용하기로 했다. 로프는 직경 9.2mm×70미터 규격을 오늘 처음으로 개시했는데, 무게가 예전에 쓰던 60미터보다 오히려 가볍고 길이도 충분해서 한결 마음이 든든했다.
등반이 잘 되는 날은 모든 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오늘 등반이 딱 그랬다. 반도길은 중간 확보점이 거의 없어서 캠을 설치해야 하는 구간이 많았는데, 크랙의 크기를 보고 눈대중으로 그때마다 선택한 캠의 호수가 한 번도 틀리지 않았다. 사소한 것이지만 기분이 좋아지면서 등반에 자신감과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로프 유통을 생각하면서 꺽이는 부분에서 슬링을 적절히 길게 사용한 점도 등반의 즐거움을 배가시켜 주었다. 예전에 오를 때 다소 긴장감이 있었던 침니와 벙어리성 크랙 구간에서도 한 치의 머뭇거림 없이 가볍게 돌파할 수 있었다. 오늘 노적봉에는 바람이 제법 세차게 불었으나 등반의 즐거움을 앗아갈 정도는 아니었다. 앞으로의 모든 등반이 오늘처럼만 술술 잘 풀린다면 더이상 바랄 게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모든 면에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던 오늘의 반도길 등반에 대하여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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