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의 화악산은 경기도 최고봉이고, 과천 관악산, 포천 운악산, 파주 감악산, 개성 송악산과 함께 경기5악으로 불린다. 공군기지가 들어서 있는 화악산 정상은 높이가 1468m로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는 정상 바로 옆의 중봉(1446m)까지만 일반인에게 개방되어 있다. 화악산은 오늘이 처음이다.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오르고 싶은 산이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그동안 나와 화악산의 인연은 잘 만들어지지 않았다. 아마도 등산로 초입에 이르기까지 집에서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한북정맥의 여러 봉우리에 올라 먼 발치에서도 정상에 공군기지가 있어 또렷히 구별되는 화악산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했었는데, 오늘에서야 비로소 화악터널에서 이어진 군사도로를 따라 다녀오는 최단코스로 화악산의 중봉을 밟아보게 되었다.
서울 집에서 아침 8시에 출발하여 구리포천고속도로와 47번 국도를 타고 오다가 광덕고개를 넘어 사창리에서 화악터널에 이르기까지 굴곡이 심한 도로를 운전해야 했지만, 여유있는 마음으로 한적한 지방도를 달리는 기분이 그만이었다. 교통정체가 없으니 집에서 화악터널까지 채 2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난 수요일에 내린 많은 눈으로 등산로 전체가 눈길이었다. 올겨울 들어서 처음으로 아이젠을 착용한 산행이었다. 빙벽등반은 하지 않더라도 빙벽화의 밑창이 삭아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조금 불편하지만 빙벽화를 신어주기로 했다. 임도와 군사용 도로가 등산로의 대부분을 차지했으나 눈이 소복히 쌓여 있는 길을 뽀드득 소리 들으며 걷는 운치가 있었다. 해발고도 870m의 화악터널에서 시작하여 중봉 정상에 이르는 길은 눈길이 아니었다면 다소 지루할 수 밖에 없는 코스였으나, 고도에 걸맞게 시원한 조망만큼은 으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