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거인암장 - 2021년 10월 16일(토)

빌레이 2021. 10. 17. 09:34

갑자기 쌀쌀해진 기온 탓인지 평소의 주말과 달리 거인암장은 한산했다. 3암장 앞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곧장 '나우리(5.10a)' 루트에 붙었는데, 오버행 턱을 넘어서는 동작에서 무리를 했는지 하강 후 허리통증이 시작되었다. 정확히 1년 전의 인수봉 등반에서 극심한 허리통증을 견디지 못하고 나홀로 먼저 하산해야 했던 뼈아픈 기억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요맘때 다시 고개를 드는 허리통증을 이제부터는 더욱 현명하게 잘 다스려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척추관협착증으로 인한 기분 나쁜 통증을 안고 살아야 하는 나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등반 욕심일랑은 한 켠에 제쳐두고 우선은 허리통증을 다스리는 것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친구가 준비해 온 핫팩을 허리에 붙인 채 쉬운 난이도의 루트에서 무리하지 않고 꾸준히 매달리기로 했다. 3암장의 고난도 루트에서 등반하고 싶었던 애초의 바램은 접어두기로 하고, 2암장으로 이동하여 모든 루트를 올랐다. 다행히 등반하는 동안 허리통증은 더이상 심해지지 않았다. 몸이 어느 정도 풀리니 혈액순환이 잘 되어 허리도 괜찮아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오후 시간이 될수록 기온이 떨어지고 찬바람이 불어오는 가운데서도 1암장의 쉬운 루트들에서 체력이 소진되어 등반을 마칠 때까지도 허리는 잘 견뎌 주었다. 오늘의 등반은 나에게 허리통증을 다스리기 위한 한 가지 방편으로 익숙하고 쉬운 바윗길을 오르는 것이 괜찮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 3암장의 '나우리(5.10a)'를 등반 중이다. 몸이 무겁다 싶었는데 하강 후 허리통증이 시작되었다.
▲ 허리통증을 감안하여 3암장의 고난도 루트를 등반하고 싶은 마음을 접고, 2암장으로 이동하여 '자유(5.10a)'를 오르고 있다.
▲ 2암장에서 처음으로 프로젝트 등반을 했던 '자성(5.10c)' 루트를 오르고 있다.
▲ '자성'의 크럭스 구간인 오버행 위의 구간은 따사로운 햇볕이 간간히 내리 쬐어 허리를 찜질한다는 기분으로 일부러 천천히 올랐다.
▲ '대현(5.10b)' 루트도 오랜만에 등반했다.
▲ 레드포인트 완등의 참맛을 처음으로 느끼게 해 주었던 'JK(5.10d)'를 등반 중이다. 무리하지 않고 한 번의 행도깅 후에 올랐다. 
▲ 주변의 나뭇잎은 아직 푸른데 햇볕이 구름에 가리는 시간이면 늦가을처럼 스산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 오늘은 2암장의 모든 루트를 올라보기로 작정했다. 평소에 잘 등반하지 않던 '성봉(5.10c)'도 올랐다.
▲ '성주(5.10b)' 루트는 '성봉'과 같은 톱앵커를 사용하니 톱로핑 상태로 올랐다.
▲ '성주'를 오를 때에는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는 듯하여 허리통증이 그런대로 견딜만 했다.
▲ 점심 후에도 쉬는 시간 없이 등반하기로 했다. 쌀쌀한 날씨에 쉬는 것보다 등반하는 게 더 나았다.
▲ 점심 직후엔 2암장에서 제일 쉬운 '여주(5.9)'를 올랐다. 이로써 하루에 2암장의 모든 루트를 등반한 셈이다.
▲ 오후에 더욱 쌀쌀해지는 것을 감안하여 일레븐대 루트에 붙고 싶은 생각은 접기로 하고, 1암장의 '오리온(5.10b)'을 등반하고 있다. 
▲ 루트맵에는 '오리온(5.10b)'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루트 출발점엔 '기봉(5.10a)'이라는 표시가 붙어 있다. 내가 체험한 난이도를 기준으로 판단해 보면 루트맵의 표기가 맞는 듯하다.
▲ '봄향기(5.10b)' 루트를 오르고 있다. 상단부의 오버행에서 약간 좌측으로 직등하는 경로를 선택하니 크럭스를 쉽게 통과할 수 있었다. 
▲ 1암장에서 가장 긴 루트로 맨 우측에 있는 '기봉(5.10a)'을 오르고 있다.
▲ 마지막으로 '내고향(5.10a)' 루트를 등반할 때는 체력이 거의 소진되어 크럭스 구간에서 한 차례 쉬어가야만 했다. 허리통증 재발이라는 좋지 못한 몸상태에도 불구하고 거인암장에서 열심히 등반할 수 있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