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이른 아침에 서울을 빠져나와 두 시간여 만에 강촌의 강선사 앞에 도착한다. 대체공휴일 지정으로 기분 좋은 3일 연휴의 시작일인데 하늘은 잔뜩 흐려 있고 간간히 이슬비마저 흩날린다. 금요일 오후부터는 비가 오지 않을 것이란 일기예보를 믿고 유선대 암장에서 등반할 계획으로 강촌에 왔는데 정작 날씨가 도와주지 않는다. 날씨는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니 불편한 현실이지만 빨리 받아들이기로 하고, 북한강 물줄기가 내려다보이는 데크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신 후에 하늘이 맑아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산책길에 나서기로 작정한다.
그동안 유선대에서 암벽등반만 하느라 둘러보지 못했던 강촌의 '물깨말 산마루길'과 '밤나무 추억길' 코스를 따라서 천천히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두 코스 모두 춘천을 대표하는 둘레길인 '봄내길'에 속하는데, '봄내'는 춘천(春川)의 한글 표현이다. '물깨말'은 '물가 마을'을 지칭하는 우리말로 강촌(江村)을 일컫는 옛말이라고 하니 한글날을 맞이하여 아름다운 우리말을 일상에서 빛내고자 하는 춘천시의 노력을 특별히 칭찬해 주고 싶다.
가을 들꽃이 만발한 강선사 경내를 시작으로 통천문, 귕소, 큰바위얼굴 등이 연이어 나타나는 이색적인 풍경 속에 깃들어 있는 초가을 정취를 만끽해 본다. 싱그러운 초록 빛깔의 이끼 위로 단풍처럼 물들어 가는 고사리 이파리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가파른 오솔길 주변의 암벽을 살펴 보면서 등반지로서의 가능성을 가늠해보는 것도 나름 흥미롭다. 북한강 자전거길이 거쳐가는 강촌 시가지까지 구경한 후에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유선대 암장에 올라가 봤으나 여전히 이끼 낀 바위에 다시금 이슬비가 내리는 악조건 속이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잠시 매달려 보니 미끄러운 암벽이 너무 위험할 듯하여 오늘 등반은 깨끗이 포기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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