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거인암장 'JK(5.10d)' 레드포인트 완등 - 2021년 9월 5일(일)

빌레이 2021. 9. 5. 20:29

클라이머들이 이런 맛에 다들 프로젝트 등반을 하는 모양이다. 현재의 내 클라이밍 실력으로는 도무지 완등할 수 없을 것 같았던 거인암장의 'JK(5.10d)' 루트를 오늘은 세 번째 도전 만에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하게 올랐다. 완등한 순간의 기쁨은 한 마디로 표현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이었다. 여러 차례의 시도 끝에 자유등반 방식으로 완등하는 것을 일컫는 레드포인트(red point) 등반의 가치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자유등반 난이도로는 한 단계 차이일 뿐이지만 5.10c와 5.10d는 체감 난이도가 상당히 달랐다. 자연암벽에서 5.10c까지는 컨디션이 좋은 날 온사이트로 완등한 적이 몇 번 있었다. 하지만 달포 전인 지난 7월의 마지막 날에 붙어 보았던 5.10d 난이도의 'JK' 루트는 나의 한계를 실감하게 해 주었다. 오버행에서 핀치 홀드와 언더 홀드를 연속적으로 제압해야 하는 'JK'에 처음 붙었을 땐, 그 루트가 결코 정복할 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보였다. 

 

올해 가을엔 난이도 5.11대의 루트에서 놀고 싶은 마음이 새롭게 생겼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JK' 루트를 만족스럽게 완등해야 할 것 같았다. 9월이 시작되어 가을로 접어들었으니 첫 번째 주말에 'JK'에 도전해 볼 생각으로 일주일 전부터 차근차근 준비했다. 먼저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서 매일 아침 기상 직후에 한 시간 정도의 홈트레이닝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거르지 않았다. 공복 시의 운동은 체지방을 태우는 효과가 만점이다. 실내암장에서의 운동도 평소보다 강도를 조금 높여서 꾸준히 했다. 그 사이 체중이 1.5 킬로그램 가량 줄었지만 완력이 좋아졌다는 느낌은 거의 없었다. 토요일인 어제는 선인봉의 '남측길'을 등반했기 때문에 피곤이 쌓였을 것이란 생각에 오늘은 별다른 기대 없이 홀드의 감각과 동작만 익히자는 생각으로 'JK'에 붙었는데, 예상과 달리 세 번째 시도에서 사뿐히 완등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JK' 루트를 레드포인트 방식으로 완등한 것이 기쁜 이유가 몇 가지 떠오른다. 우선은 완등을 목표로 준비했던 과정이 여러모로 유익했다는 점이다. 2학기 개강과 함께 바빠진 업무를 성실히 수행해내기 위해서 필요한 기초체력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허리가 아파서 시작했던 체중감량 프로젝트를 성공한 덕택에 예전보다 더 즐거워진 클라이밍의 깊은 맛을 알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이러한 바램들이 이루어졌다는 성취감 외에도 'JK' 루트의 크럭스를 돌파하기 위해서 빌레이 파트너인 은경이와 함께 적당한 홀드와 동작의 시퀀스(sequence)를 탐색하던 과정이 정말 재미 있었다. 어려운 수학 문제를 헤쳐나가는 것과 비슷한 쾌감이 있었다.

 

내가 완등했을 때 자기 일처럼 진심으로 기뻐해주던 악우가 더욱더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로 다가왔다. 우리네 인생에서는 열심히 노력해도 결과가 좋지 못해서 실망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런데 내 삶에서 특별한 요행수는 없어도 노력한 댓가는 반드시 보상받는다는 사실을 'JK' 완등이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다. 내가 믿는 하나님께 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비록 고수들이 쉽게 오르는 루트라 할지라도 내게는 버거웠던 'JK'를 완등한 순간의 희열은 등반의 참맛을 아는 진정한 클라이머의 피가 내몸에 약간은 배어 들어온 듯한 황홀함이었다.          

 

아래는 'JK' 루트를 프로젝트 등반으로 생각하고 붙었던 달포 전의 기록이다.

https://blog.daum.net/gaussmt/1502

 

폭염 속의 거인암장 - 2021년 7월 31일(토)

7월의 마지막 날이다. 밤에도 기온이 썹씨 25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열대야가 열흘 이상 지속되고 있다. 이른바 초열대야 현상이 계속되는 시절에 클라이머들이 생각할 수 있는 등반지는 비슷

blog.daum.net

▲ 오전엔 우리팀 외에 아무도 없었던 2암장에서 등반에 집중할 수 있었다. 먼저 '자유(5.10a)'를 두 번 오르는 것으로 몸을 풀었다.
▲ '자유' 루트를 오르는 중간에 암벽에 붙어서 곱게 피어난 들꽃을 보았다. 행운의 징조였던 모양이다.
▲ 'JK(5.10d)' 루트의 크럭스를 돌파하여 완등하기 직전의 순간이다. 둘째 볼트에서 셋째 볼트를 클립하고 올라서는 동작의 시퀀스가 만만치 않았다. 오버행 벽의 핀치 홀드가 연속해서 4개 이어진다. 달포 전에는 잡히는 게 불안해서 홀드로 여겨지지 않던 곳이 오늘은 확실하게 잡혔다.
▲ 점심 전에 마지막으로 붙어보고 안 되면 한참을 쉰 이후에 다시 붙을 생각이었는데, 예상보다 쉽게 사뿐히 크럭스를 돌파했다. 완등한 순간의 기쁨은 한 마디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최상이었다.
▲ 스포츠클라이밍 루트를 완등했을 때, 영어로는 "send"라는 동사를 쓴다. 그래서 나도 'JK'를 보냈다는 신호의 빠이빠이 포즈를 취해 보았다.ㅎㅎ
▲ 오늘은 내가 실내암장에서 가장 오래 신었던 암벽화로 'JK'를 완등해서 더욱 기뻤다.
▲ 점심 시간 후에는 그야말로 룰루랄라 즐겁고 부담없는 코스를 오르며 놀았다. 1암장의 '봄향기(5.10b)'를 등반 중이다.
▲ 3암장의 '일마(5.10b)'를 오르는 것으로 오늘의 등반을 마무리 했다.
▲ 하늘색이 곱고 뭉개구름도 예뻤던 아름다운 초가을 날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