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선인봉 '남측길' - 2021년 9월 4일(토)

빌레이 2021. 9. 4. 20:35

9월의 첫 주말이다. 나아질 줄 모르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학생들이 등교하지 못 하는 개강 첫 주간이지만 여러모로 할일은 더 많아진 2학기가 시작되었다. 지난 학기와 같이 여전히 전면 비대면 수업 형태로 강의를 준비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캠퍼스에서 개강의 활기찬 기운이나 설레임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비대면 수업과 화상회의 등은 예정대로 진행하고 있으니 조용함 속에서 내부적인 분주함만 고스란히 남았을 뿐이다. 나아지지 않는 코로나 사태 속에서도 계절만은 어김 없이 가을을 향해 달리고 있다. 공기의 맛과 하늘 빛깔이 달라졌다. 코로나블루를 떨쳐 내고 산에 가기 정말 좋은 청명한 날씨를 놓치지 않고 등반할 수 있다는 것이 축복이다.  

 

도봉산 선인봉의 '남측길'을 등반해서 처음으로 선인봉 정상을 밟아 보았다. 인수봉과 달리 선인봉에서 등반하는 클라이머들은 정상에 잘 가지 않는다. 나도 몇 차례 선인봉에서 등반했으나 그때마다 정상은 가지 않고 중간에서 하강했다. 선인봉 정상으로 향하는 자연스런 등반선을 따르는 '남측길'을 오르고 싶었다. 기영형이 메고 온 70미터 자일 한 동으로 은경이와 함께 셋이서 즐겁게 제법 긴 시간을 등반했다. 크랙과 슬랩만 있는 게 아니라 펜듈럼(pendulum), 침니, 트래버스 등 다양한 형태의 바윗길이 상존하는 '남측길'은 트래드 클라이밍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코스였다. 선인봉 정상에서 만장봉으로 건너가는 구간이 예상 외로 어려워서 긴장했지만, 든든한 형과 믿음직한 친구가 함께 하니 별로 무서울 것이 없었다.

 

▲ 선인봉 암벽 가장자리를 좌측으로 돌아나가는 어프로치 도중에 남벽의 크랙 루트들을 구경했다.
▲ '남측길' 들머리는 사진 속의 출입제한 표지판을 찾으면 된다.
▲ 출입제한 표지판을 보고 올라와서 앞의 바위를 올라서면 장비를 착용하기 좋은 공터가 나온다.
▲ 남측 오버행 크랙 앞의 일명 '타이타닉 바위'로 불리는 이색적인 풍경을 보면서 장비를 착용했다.
▲ 장비를 착용한 후 '남측길' 출발점으로 이동하고 있다.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암벽의 풍경이 설악산의 울산바위와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첫 피치를 선등하는 중이다.
▲ 주중에 내린 비로 크랙에 옅은 이끼가 보여서 살짝 긴장했다.
▲ 기영형이 첫 피치를 출발하기 직전이다. 뒤로 보이는 하늘의 빛깔이 아름답다.
▲ 둘째 피치를 출발하는 중이다.
▲ 2 피치 초반부는 홀드 양호한 직상 크랙이다. 그 이후는 우측의 날등으로 이어진다.
▲ 3 피치는 짧은 펜듈럼 구간이다. 실전에서 처음으로 펜듈럼 등반을 맛 본 순간이었다.
▲ 4 피치는 바위 틈새의 크기가 애매한 오프 위드 크랙(off width crack)으로 시작한다. 손 재밍을 하기엔 너무 넓고 침니 등반 기술을 쓰기에는 좁은 넓이라서 등을 벽에 기대고 애벌레처럼 조금씩 전진해야 한다. 
▲ 오프 위드 크랙으로 시작해서 침니 등반 기술인 스태밍 자세로 마무리 되는 4 피치를 통과하는 게 조금은 번거로웠다. 
▲ 기영형은 무릎보호대를 하고 와서 몸 재밍이 쉬웠다고 한다. 배낭은 첫 볼트에 오른 상태에서 끌어 올리는 것이 좋다. 웬만한 크기의 배낭은 크랙에 낄 수 있기 때문이다. 
▲ 5 피치는 뜀바위를 건너서 슬랩을 크래버스 해야 하는 구간으로 긴장감이 있었다.
▲ 뜀바위를 건너서 첫 볼트에 클립한 후 클라이밍 다운해서 슬랩을 트래버스해야 한다.
▲ 6 피치는 호랑이굴 입구까지 이어진다.
▲ 6 피치는 비교적 쉬운 구간이지만 안전을 위해 캠으로 중간 확보점을 구축하면서 등반했다.
▲ 7 피치는 호랑이굴을 통과해서 선인봉 정상으로 가는 구간이다.
▲ 호랑이굴 앞에서 선인봉 정상을 올려다 본 그림이다. 페이스에 곡선으로 뻗어내린 밴드를 따라서 볼팅이 되어 있었다. 
▲ 선인봉의 호랑이굴은 북한산 백운대 아래의 호랑이굴보다 넓고 웅장했다.
▲ 호랑이굴 안에서 돌아본 그림이다.
▲ 호랑이굴을 통과하는 게 수직 동굴을 오르는 것처럼 재미 있었다.
▲ '남측길'의 마지막 구간인 8 피치는 걸어가도 되고 사진 속의 기영형처럼 뛰어가도 된다.ㅎㅎ
▲ '남측길'을 수호신처럼 지키고 있는 기암은 호랑이굴 위에 있다. 
▲ 선인봉 정상에 올라서서 코앞에 있는 만장봉을 바라본 풍경이다.
▲ 처음 올라와 본 선인봉 정상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점심시간을 즐겼다.
▲ 선인봉 정상에서 만장봉으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짧은 하강을 해야 한다.
▲ 만장봉으로 이어지는 동굴을 통과하는 중이다.
▲ 동굴을 통과하면 약간 부담스러운 슬랩을 트래버스 해야 한다.
▲ 트래버스 구간에서는 앞에서 뿐만 아니라 뒤에서도 확보를 해 주는 것이 안전하다.
▲ 트래버스 직후에 나타나는 침니 구간도 촉스톤을 올라서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 오늘 등반한 구간 중에서 가장 어려웠던 만장봉 아래의 직상 크랙을 출발하고 있다.
▲ 첫 볼트에 클립하고 일어서는 동작이 쉽지 않았다. 그 이후는 손홀드를 잘 찾아서 오를 수 있었다.
▲ 크랙 상단부에 BD 2호 캠이 잘 먹혀서 안전하게 오를 수 있었다.
▲ 여기부터는 '낭만길' 마지막 두 피치를 오르는 구간으로 몇 차례 등반한 적이 있어서 익숙한 곳이다.
▲ 상단부의 세로 크랙을 오를 땐 좌측의 돌출된 홀드를 잡고 일어서면 한결 쉽다.
▲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피치를 출발하고 있다.
▲ 만장봉 정상으로 향하는 중이다.
▲ 만장봉 정상의 '낭만길' 마지막 확보점에 글루인 볼트가 설치되어 예전보다 안전해졌다.
▲ 짧은 피치까지 셈하면 14 피치를 등반했던 제법 길었던 여정이었다. 만장봉 정상에서의 휴식이 그 어느 때보다 달콤했다.
▲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에 인수봉 너머의 한강 물줄기까지 또렷히 보였다.
▲ 만장봉에서 두 차례 하강하는 것으로 즐거웠던 등반을 안전하게 마무리 지었다. 
▲ 하산길에 만월암 위의 너럭바위에 앉아 쉬면서 이 가을엔 날마다 산에 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망상을 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