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운악산 무지치폭포 빙벽등반 - 2021년 1월 3일(일)

빌레이 2021. 1. 3. 21:10

주중에 기영이 형과 전화로 새해 인사를 나누던 중 일요일에 운악산 무지치폭포에서 빙벽등반을 하자는 약속이 정해졌다. 그동안 추운 날씨에 움츠러드는 내 몸과 온전치 않은 허리 상태를 믿을 수 없어서 아직 장비도 꺼내 놓지 않은 채로 이번 겨울에 빙벽등반을 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다. 예년에 비해 강추위가 일찍 찾아온 까닭에 여느 겨울철보다 빙질이 좋을 것이란 생각에 마음 속으론 빙벽에 붙고 싶은 조바심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약속에 떠밀리듯 어제 오후에 집에서 지난 겨울에 쓰고 방치해 두었던 장비들을 꺼내어 손질하고 나니 비로소 첫 빙벽등반을 간다는 실감이 났다.

 

아침 9시에 47번 국도변의 운악산휴게소 주차장을 출발하여 어프로치에 나섰다. 허리에 부담을 주는 무거운 배낭을 메고 45분 정도를 천천히 올라가서 무지치폭포 하단에 닿을 수 있었다. 허리 아픈 친구를 도와준다는 살가운 마음으로 은경이가 내 자일을 대신 맡아 주었다. 연일 강추위가 계속되는 요즘 날씨답게 아침 해가 들지 않는 운악산 서북쪽 포천시 지역의 기온은 영하 14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대섭, 은경, 나, 이렇게 우리 친구들 3명이 먼저 폭포 하단에 도착해서 터를 잡고 얼마 안 있으니 기영형과 윤길수 선생님이 도착하셨다.

 

무지치폭포는 인공빙벽과 다른 자연빙폭이어서 톱로핑 자일을 설치하기가 까다로웠다. 대섭이와 내가 폭포 상단으로 올라가서 60미터 로프 두 동을 고정하려고 했으나, 하단에서는 보이지 않던 완경사인 상단폭포의 길이만도 60미터는 족히 될 듯했다. 나무에 확보하고 빙폭으로 진입할 곳을 찾기도 애매해서 대섭이와 나는 고정자일 설치는 포기하고 후퇴해야만 했다. 빈손으로 돌아온 우리를 보고 윤선생님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살짝 미소를 머금은 채 여유있게 선등을 준비하고 계셨다. 무지치 빙폭은 크게 상, 중, 하, 3단으로 얼어 있다. 윤선생님은 하단 출발점에서 우측의 20미터 직벽을 오른 후, 넓은 테라스 같은 완경사 20미터를 더 올라 첫 번째 피치를 끊으셨다. 그 뒤를 기영형이 중간 확보점으로 쓰인 아이스스크류를 회수하면서 쎄컨으로 오르고, 나, 은경, 대섭이 순서로 올랐다.

 

첫 피치 확보점에서 윤선생님은 아직까지 등반 흔적이 없는 강빙의 우측 직벽 30미터를 선등하신 후, 톱로핑 등반을 위한 60미터 자일 두 동을 설치하셨다. 확보점 하나는 아이스스크류 2개로, 다른 확보점 하나는 하강을 대비하여 아발란코프 방식으로 구축하셨다. 이렇게 만들어진 톱로핑 자일 두 동을 이용하여 두 세 명씩 짝을 이루어 번갈아 가면서 몇 차례씩의 오름짓을 즐긴 후 철수하여 오후 3시 즈음에 간단히 늦은 점심을 먹고 하산했다. 오늘 등반이 내게는 자연빙폭에서 처음으로 멀티피치 등반을 경험한 뜻깊은 순간이었다. 인공적으로 얼린 빙벽보다 완경사여서 오히려 자세 잡기가 어려웠으나, 자연스런 등반을 좋아하는 나의 만족감은 인공빙장에서의 그것보다 한층 더 컸다. 조용한 가운데서도 시종일관 유쾌하고 안전하게 등반을 즐길 수 있게 이끌어 주신 윤길수 선생님과 기영형께 이 자리를 빌어 고마운 말씀을 올리는 바이다.

         

▲ 무지치빙폭을 선등하셔서 첫 번째 확보점을 구축하고 계시는 녹색 자켓의 윤선생님 모습이 보인다.
▲ 어프로치 중간에 있는 폭포전망대 정자에서 보이는 무지치폭포(무지개폭포). 예년보다 잘 얼어 있는 듯하다.
▲ 여러 가지 이유로 망설이던 첫 빙벽등반을 나서는 마음은 설레임과 두려움이 교차한다.
▲ 폭포 하단에서 올려다 본 풍경. 맨 위에 확보점 두 개를 구축하고 중간에 세 명이 보이는 곳에서부터 톱로핑으로 등반했다.
▲ 사진 상에 보이는 빙폭 너머 폭포 상단 완경사의 빙폭 길이만도 60미터에 이를 듯했다.
▲ 윤선생님이 하단 첫 피치 직벽을 선등 중이다.
▲ 기영형이 쎄컨으로 확보 중인 옆에서 나는 도우미 역할을...
▲ 멀티피치 등반 방식으로 기영형의 확보를 받으며 올 겨울 첫 빙벽등반에 나서고 있다.
▲ 둘째 피치를 선등 중인 윤선생님과 빌레이 중인 기영형의 모습.
▲ 빙벽등반에서의 쎄컨은 중간 확보점인 아이스스크류를 회수해야 하는 어려움을 감수해야 한다.
▲ 둘째 피치에 두 개의 확보점을 구축하고 톱로핑 방식으로 몇 차례씩의 등반을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