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봉 등반을 위해 아침 8시에 만나기로 한 도봉산 입구의 약속 장소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허리 통증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고는 하지만 암벽등반을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어서 늦가을 아침의 쌀쌀한 기운만큼이나 마음은 부담스러웠다. 주중에 기범씨로부터 등반 여부와 몸상태를 묻는 연락이 왔을 때 잠시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도보 산행은 별 문제가 없었기에 로프를 메지 않는다면 등반에 참석할 수 있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여러모로 생각이 복잡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바위에 붙어서 괜히 나아지고 있는 허리병을 악화시키는 것은 아닐까? 그래도 일단 한 번 시도는 해봐야 돼지 않을까? 눈앞의 부정적인 생각과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꿈틀대는 도전의식이 교차하면서 어프로치 하는 내내 머리 속이 혼란스러웠다. 장비를 착용하는 순간부터 예전보다는 일부러 천천히 행동하고 모든 동작을 슬로우 비디오 화면처럼 조심스럽게 가져가기로 다짐했다. 대섭이와 은경이가 오랜만에 함께 줄을 묶게되고, K등산학교의 동기인 미선씨까지 게스트로 참가했으니 즐거운 마음으로 등반에 임하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허리 통증이 느껴지는 즉시 후퇴하는 걸로 결심하고 '요델버트레스'길에 라스트로 따라붙었다.
한 달여 만에 붙어본 바위가 조금은 낯설었지만 우려했던 허리 통증이 없어서 무엇보다 기쁘고 감사했다. 우리가 등반하는 동안 선인봉 암벽을 양지바르게 비춰준 만추의 따스한 햇살은 가슴 속까지 환하게 투영되어 움츠러든 내 몸을 어루만져 주었다. '요델버트레스'길을 3피치까지 등반하고 내려와서 악우들과 함께 한 점심시간이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하고 행복했다. 점심 후에는 '설우'길 1피치에 줄을 걸어놓고 세 차례 오르내렸다. 손과 발이 가까운 동작에서는 무척이나 조심스러웠지만 비로소 몸이 좀 풀리는 듯한 느낌이 전해졌다.
오늘 처음으로 등반했던 '요델버트레스'길은 요델산악회에서 개척한 길이라고 한다. '버트레스(buttress)'는 벽을 넘어지지 않게 지지해 주는 부벽을 의미하는 건축 용어이다. 이 '버트레스'라는 단어는 오래 전에 프랑스 파리의 쎄느강 유람선 위에서 보았던 노틀담 성당의 뒷모습을 떠오르게 했다. 노틀담 성당 외부에서 버팀목처럼 건물을 지탱해주고 있는 반 아치형의 석조 구조물인 그 버트레스가 특별히 아름다워서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선인봉 등반이 노틀담 사원을 뒤에서 든든히 받쳐주고 있는 버트레스처럼 나의 허리를 온전하게 치유해 주는 계기와 버팀목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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