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에 다녀오기로 한 설악산 등반이 취소되었다. 강원북부산지에 호우예비특보가 발효된 날씨 때문이다. 다행히 서울은 쾌청하여 인수봉 동면에서 악우들과 함께 토요일 등반을 즐길 수 있었다. 먼저 '교대'길을 끝까지 오르기로 했다. 오늘의 캐리(CARI, Climbing of All Routes in Insu-peak)를 '교대'길로 정한 것이다. 기범씨가 선등하고 은경, 정길, 대섭 순으로 올랐다. 나는 라스트를 맡았다. '교대'길은 첫 피치부터 매우 까다로운 페이스였다. 비교적 쉬운 슬랩인 마지막 피치를 제외하면 지금의 내 실력으로 온전히 자유등반 방식으로 오를 수 있는 '교대'길의 피치는 하나도 없었다. 내 난이도를 초과한 수준의 어려운 구간들에서는 추락을 하거나 볼트와 장비의 도움을 받으면서 등반하는 수 밖에 없었다. 다들 어려운 루트에서의 긴장감이 높았던 탓인지 라스트인 내가 소형 배낭에 가지고 간 물과 행동식을 나눠 먹을 여유조차 없었다.
귀바위 아래의 테라스 우측에 있는 '교대'길 종착점에 내가 도착했을 때에 우리팀은 이미 하강을 서두르고 있었다. 여러 등반팀들이 얽히기 쉬운 주말의 인수봉 바윗길에서는 신속한 등반이 여러모로 효율적이라는 건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바쁜 일상을 살다가 주말을 즐기러 온 클라이머들이 바윗길에서 단 몇 분 정도의 여유마저 갖지 못한다는 건 분명 문제가 있다. 마지막으로 홀로 하강하면서 바쁘게 일을 하고 등반까지 바쁘게 하는 인생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베이스캠프인 '취나드A'길 2피치 주변의 테라스에 돌아오니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늦은 점심 후에는 '벗'길 두 피치와 '심우'길 한 피치에서 톱로핑 방식으로 등반연습을 했다. 가을날처럼 시원한 바람이 불어주고 확 트인 시야도 좋아서 하루종일 더운줄 모르고 등반에 열중하다 보니 설악에 가지 못한 아쉬움일랑 까마득히 잊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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